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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득 없이 경물의 화려함만 즐겨서는 안 된다 [觀物有得 勿徒留連] <채근담>


꽃을 가꾸고 대를 심고

학과 놀고 물고기를 봄에도

일단의 자득함이 있어야 한다.

만약 헛되이 눈앞의 광경에만 빠져

경물의 화려함만을 구경하고 즐긴다면

단지 유가에서 말하는 구이지학이며

불가에서 말하는 완공일 뿐이니

어찌 고상한 풍취가 있겠는가?


栽花種竹,  玩鶴觀魚,  亦要有段自得處.
재화종죽,  완학관어,  역요유단자득처.
若徒留連光景,  玩弄物華,  亦吾儒之口耳,  釋氏之頑空而已,  何有佳趣?
약도유연광경,  완롱물화,  역오유지구이,  석씨지완공이이,  하유가취?

<菜根譚채근담/明刻本명각본(萬曆本만력본)/後集후집>


  • 완상[玩賞]  어떤 대상을 취미로 즐기며 구경함. 좋아서 구경함. 아름다움을 보고 즐기는 것.
  • 관상[觀賞]  화초(花草) 따위를 보고 즐김. 자연물이나 예술품 따위를 보고 즐김.
  • 자득[自得]  스스로 만족함. 스스로 얻음. 스스로 깨달아 알아냄. 스스로 터득함. 스스로 뽐내어 우쭐거림. 자기가 자기의 한 일에 대하여 갚음을 받는 일. 득의하다. 스스로 느끼다. 체득하다. 스스로 만족하다. 마음에서 도리를 깨닫다. 참고로, 중용장구(中庸章句) 14장에 “부귀에 처해서는 부귀대로 행하고, 빈천에 처해서는 빈천대로 행하며, 이적에 처해서는 이적대로 행하며, 환난에 처해서는 환난대로 행하니, 군자는 들어가는 곳마다 스스로 만족하지 않음이 없다.[素富貴, 行乎富貴, 素貧賤, 行乎貧賤, 素夷狄, 行乎夷狄, 素患難, 行乎患難. 君子無入而不自得焉.]”라고 하였고, 맹자(孟子) 이루 하(離婁下)에 “군자가 깊이 나아가기를 도로써 함은 자득하고자 해서이니, 자득하면 처(處)하는 것이 편안하고 처하는 것이 편안하면 자뢰(資賴)함이 깊게 되고 자뢰함이 깊으면 좌우에서 취함에 그 근원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君子深造之以道 欲其自得之也 自得之則居之安 居之安則資之深 資之深則取之左右 逢其原 故君子欲其自得之也]”라고 하였다.
  • 유연[留連]  탐닉하는 것. 마음을 정하고 있지 못하는 상태. 객지에 묵고 있음. 차마 떠나지 못함. 객지에 머물러 돌아가지 않음. 체류하다. 떠나기 아쉬워하다. 헤어지기가 섭섭해 계속 머무르다. 떠돌다. 지연하다. 버리기 아쉬워하다. 향락에 빠지다. 관심을 갖다. 탁마에 마음을 쓰다. 계속하다. 이어지다. 연결되다. 만류하다. 참고로, 양(梁)나라 소통(蕭統)의 소명태자집(昭明太子集) 권1 음마장성굴행(飮馬長城窟行)에 “우뚝 솟은 산 위의 측백나무요, 아스라이 멀리 떠나온 나그네로다. 떠나온 나그네 갈 길이 아득하니, 고향이 날로 멀어지는구나. 멀고멀어 볼 수가 없으니, 멀리 바라보며 눈물 줄줄 흘리누나. 줄줄 흘리며 홀로 서성거리니, 긴 길이 아득히 이어져 있네. 오랑캐 말은 북풍을 좋아하고 월나라 제비는 해를 보고 기뻐하네. 이러한 고향 그리는 마음에 휩싸여 깊은 근심 그치지 않아라.[亭亭山上栢, 悠悠遠行客. 行客行路遙, 故鄕日迢迢. 迢迢不可見, 長望涕如霰. 如霰獨留連, 長路邈綿綿. 胡馬愛北風, 越燕見日喜. 縕此望鄕情, 沈憂不能止.]”라고 한 데서 보인다.
  • 광경[光景]  광음(光陰), 시광(時光). 벌어진 일의 상태와 모양. 벌어진 일의 형편이나 모양. 어떤 일이나 현상이 벌어지는 장면 또는 모양. 눈에 보이는 자연의 모습이나 현상. 좋지 못한 몰골. 경치. 경색. 풍경. 시간. 세월. 상황. 경우. 광휘(光輝). 화려하고 대규모적인 장면. 참고로, 이백(李白)의 시 상봉행(相逢行)에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으니, 순식간에 흰머리가 되어버리네.[光景不待人, 須臾成髮絲.]”라고 한 데서 보이고, 소식(蘇軾)의 시 송정건용(送程建用)에 “금년에 다시 기용되었다고 하니, 사책이 광경을 회복하리로다.[今年聞起廢, 魯史復光景.]”라고 한 데서 보인다. 또, 후한서(後漢書) 공도이전(邛都夷傳)에 이르기를 “청령현(靑蛉縣) 우동산(禹同山)에 벽계(碧鷄)와 금마(金馬)가 있는데 광경이 때때로 나타난다.[光景時時出現]”고 하였다. 이에 대한 주(註)에 화양국지(華陽國志)를 인용하여 이르기를 “벽계의 광경은 사람들이 흔히 볼 수 있다.”고 하였고, 후한서음의(後漢書音義)에는 “금은 말과 같고 벽은 닭과 같다.”고 하였다. 이것으로 보면 광경(光景)은 어떤 물체의 존재하는 모양·형태 같은 것을 사람이 직접 접근해서 본 것이 아니요 멀리서 바라보며 그 모양을 이러니저러니 하면서 평가하는 것을 의미한 말이다. 그래서 완농광경(玩弄光景)이란 말도 있다. 자기가 직접 체험하고 똑바로 인식한 것이 아니라, 남의 말을 듣고 자기로서 짐작해서 이렇다 저렇다 주장해 보는 것을 ‘광경을 맞히는 장난’이라고 한다.
  • 완롱[玩弄]  구경하고 희롱하는 것. 남을 장난감처럼 희롱함. 희롱하다. 가지고 놀다. 수단·재간을 쓰다. 놀리다. 우롱하다. 만지작거리다. 장난치다.
  • 물화[物華]  자연의 경치(景致). 만물의 정화(精華). 아름다운 경물(景物). 물건(物件)의 빛. 산과 물 따위의 자연계(自然界)의 아름다운 현상(現象). 자연경물. 물질의 정수. 자연경물의 아름다움. 지극히 진귀한 보물. 참고로, 왕발(王勃)의 등왕각서(滕王閣序)에 “물건의 정화(精華)는 하늘의 보물이니, 용천검(龍泉劍)의 광채가 우성(牛星)과 두성(斗星)의 자리를 쏘아 비추고, 사람이 걸출함은 땅이 영특해서이니 서유가 진번의 자리를 내려놓게 하였다.[物華天寶, 龍光射斗牛之墟; 人傑地靈, 徐孺下陳蕃之榻.]”라고 하였고, 두보(杜甫)의 시 곡강배정팔장남사음(曲江陪鄭八丈南史飮)에 “백발이 봄놀이와 맞지 않음을 스스로 알기에, 또 술동이 다 비우고 풍광이나 사모하노라.[自知白髮非春事, 且盡芳樽戀物華.]”라고 한 데서 보인다.
  • 구이[口耳]  구이(口耳)는 귀로 듣고서 입으로 곧장 내놓는다는 말로, 되새김질하여 자기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섣불리 밖으로 드러내어 과시하려 한다는 뜻이다. 구이지학(口耳之學)의 준말로, 배운 것을 그대로 남에게 옮길 뿐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천박한 학문을 이른다. 순자(荀子) 권학(勸學)에 “소인이 공부하는 것을 보면, 귀로 듣고는 곧바로 입으로 내놓는다. 입과 귀의 거리는 불과 4치일 따름이니, 7척이나 되는 이 몸을 어떻게 아름답게 할 수가 있겠는가.[小人之學也, 入乎耳, 出乎口. 口耳之間則四寸耳, 曷足以美七尺之軀哉?]”라고 하였다.
  • 구이지학[口耳之學]  속학(俗學). 보잘것없는 학문. 귀로 들은 것을 새기지 않고 그대로 남에게 전하기만 할 뿐 조금도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한 천박한 학문. 기억만 해둘 뿐 연구적 학문이 아닌 천박(淺薄)한 학문. 도청도설(道聽塗說)의 학문. 입이나 귀로만 익히는데 그치는 것. 소인들이 배움에 있어 마음속으로 깊이 체인(體認)하지 않고, 그저 귀로 들은 것을 입으로 말하는 것을 가리키는바, 배운 것을 그대로 남에게 옮길 뿐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천박한 학문을 이른다. 순자(荀子) 권학(勸學)에 “소인이 배우는 것을 보건대, 귀로 들으면 입으로 내놓는다. 입과 귀 사이는 네 치 밖에 안 되니, 어떻게 일곱 자 되는 몸을 아름답게 할 수 있겠는가.[小人之學也, 入乎耳, 出乎口. 口耳之間, 則四寸耳, 曷足以美七尺之軀哉?]”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곧 위기지학(爲己之學)이 아니라 앵무새처럼 되뇌며 자기 과시를 위해 하는 학문을 말한다. 또, 자신의 학문이 천박하여 실학(實學)이 못 된다는 뜻의 겸사(謙辭)로도 쓰인다. 주희는 불교를 비판하며 “이른바 선(禪)이라는 것은 귀로 듣고 입으로 전하는 데서 나와 근거할 만한 문자가 없다. 이 때문에 사람마다 그 설을 끌어다가 덧붙여도 상고하여 증명할 수가 없다.”라고 말하였다. <朱子大全 別集 卷8 釋氏論下>
  • 완공[頑空]  완고(頑固)하게 공(空)한 것만을 주장하는 것. 소승불교의 견해로 ‘만물은 일체의 공’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사람을 피하고 세상을 등짐. 완고하여 모든 것이 실질이 없음. 완고하고 변통이 없이 공의 사상을 고집함.
  • 가취[佳趣]  좋은 취미(趣味). 마음속으로부터 느껴지는 재미있는 흥취(興趣). 썩 좋은 취미. 고아한 취미. 고상한 정취.

【譯文】 觀物須有自得,  勿徒留連光景  :  觀物有得,  勿徒留連.
栽培花草種植竹木,  玩弄白鶴觀賞金魚,  也要有一段悠然自得的情趣.  假如僅僅留連於風光景色,  把玩擺弄自然景物,  也只是我儒家的  “口耳之學”,  佛家的  “頑空虛無” 而已,  有什麼高雅的情趣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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