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굳이 좋은 것만 구하지 않으면
차 주전자 또한 마를 일이 없고
술을 굳이 맑은 것만 구하지 않으면
술 단지 또한 비어있을 일이 없다.
소박한 거문고는 줄 없이도 항상 격조 있고
짧은 피리는 구멍 없이도 절로 즐거우니
복희씨를 넘보기야 어렵겠지만
혜강이나 완적과는 짝해볼만하리라.
茶不求精而壺亦不燥, 酒不求冽而樽亦不空.
다불구정이호역부조, 주불구례이준역불공.
素琴無絃而常調, 短笛無腔而自適.
소금무현이상조, 단적무강이자적.
縱難超越羲皇, 亦可匹儔嵇阮.
종난초월희황, 역가필주혜완.
<菜根譚채근담/明刻本명각본(萬曆本만력본)/後集후집>
- 정다[精茶] 잘 만들어진 좋은 차. 제대로 된 차. 정제된 차. 진다(眞茶). 정차. 진차.
- 정제[精製] 정성을 들여 정밀하게 잘 만듦. 불순물을 제거하여 순수하게 함. 물질에 섞인 불순물을 없애 그 물질을 더 순수하게 함.
- 다호[茶壺] 찻주전자. 차를 담아 두는 단지 모양의 그릇. 차를 끓이거나 담아 두는 손잡이가 달린 주전자 모양의 사기그릇.
- 열주[冽酒] 찬술. 강한 술. 신열(辛冽). 농열청순(濃烈淸醇).
- 농열[濃烈] 농후하다. 강렬하다. 자극적이다. 격하다. 강하다. 짙다. 농열청순(濃烈淸醇)
- 청순[淸醇] 맑고 그윽한 맛이 있다. 깊은 맛이 있다. 농열청순(濃烈淸醇).
- 소금[素琴] 아무 장식도 없는 수수한 거문고. 줄이 없는 거문고. 아무런 장식도 없고 현도 걸지 않은 거문고로, 은자(隱者)의 거문고를 뜻한다. 참고로, 도연명(陶淵明)은 현(弦)과 휘(徽)를 갖추지 않은 소금을 벽에 걸어두었다고 하는데, 송서(宋書) 권93 은일열전(隱逸列傳) 도잠(陶潛)에 “도잠(陶潛)은 음률(音律)을 모르면서 소금 한 벌을 집안에 두었는데 줄이 없었으니, 술기운이 얼큰하면 손으로 어루만져 뜻만 부쳤다.[潛不解音聲, 而畜素琴一張, 無弦, 每有酒適, 輒撫弄以寄其意.]”고 하였다. 즉 마음으로 음악을 느끼는 것이 손으로 거문고를 연주하는 것보다 낫기 때문에 연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백(李白)이 이 고사를 차용하여 지은 시 희증정율양(戱贈鄭溧陽)에 “도령은 날마다 취하여, 다섯 버드나무에 봄 온 줄 몰랐네. 소금(素琴)은 본래 줄이 없고, 술 거를 때에는 갈건 사용하였다오. 시원한 바람 불어오는 북쪽 창문 아래에, 스스로 희황(羲皇)의 사람이라 말하였네. 언제나 율리에 이르러, 평소의 친한 벗 한 번 만나볼지.[陶令日日醉, 不知五柳春. 素琴本無絃, 漉酒用葛巾. 淸風北窓下, 自謂羲皇人. 何時到栗里, 一見平生親.]”라고 하였다. 또, 이백(李白)이 술을 마시려 하지 않는 친구에 대해 괜히 도잠의 겉모습만 흉내 내려고 한다면서 희롱한 시 조왕역양불긍음주(嘲王歷陽不肯飮酒)에 “우습도다, 도연명을 자처하는 우리 벗이, 술잔 속에 채워진 술 마시지를 않는다니. 공연히 거문고만 어루만지고, 쓸데없이 다섯 그루 버드나무 심었구나. 술 거르던 두건을 괜히 쓰고만 있으니, 내가 이젠 그대를 상관하지 않으리라.[笑殺陶淵明 不飮杯中酒 浪撫一張琴 虛栽五株柳 空負頭上巾 吾於爾何有]”라고 하였다. 또, 이백(李白)의 고풍(古風)에 “어떻게 자하객을 알겠는가? 요대에서 소금을 울리네.[安識紫霞客 瑤臺鳴素琴]”라고 했다. 장식을 가하지 않은 금(琴)으로, 상례(喪禮)의 복제(服制)가 끝났음을 뜻하는 말로 쓰이기도 하는데, 예기(禮記) 상복사제(喪服四制)에 이르기를 “대상(大祥) 날에는 소금을 울려서 백성들에게 끝이 있음을 고하여 슬픔을 절제하게 한다.[祥之日, 鼓素琴, 告民有終也.]”라고 하였다.
- 상조[常調] 보통의 격식. 평소의 규정. 고정된 음조. 보통의 음조(音調). 상규(常規)를 상고해서 관리(官吏)를 뽑는 것. 일정한 기준이 있는 세금. 관리로 선용(選用)됨. 과거급제자가 연례적 승진심사에 발탁됨. 과거(科擧)를 통해 입신(立身)하여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조용(調用)되는 자. 평상(平常)의 관리로 선발됨. 평범한 관리. 참고로, 집운(集韻)에 훈위시(訓爲試)라고 하였고, 소식 상신종황제서(蘇軾上神宗皇帝書)에는 “使天下調擧生妄心恥不着人”이라고 하였다. 또, 신당서(新唐書) 선거지(選擧志)에 “낙제한 사람은 처음과 같이 학업을 하게 하고 삼 년 뒤 다시 시험을 치르게 했는데 세 번을 응시해서 급제하지 못하면 평소의 관례를 따랐다.[其不第則習業如初. 三歲而又試, 三試而不中第, 從常調.]”라고 하였다.
- 격조[格調] 시가(詩歌)의 형식(形式)과 가락. 문예 작품 따위에서 격식과 운치에 어울리는 가락. 사람의 품격(品格)과 지취(志趣), 품격(品格), 인격(人格).
- 단적[短笛] 짧은 피리. 가로로 부는 와족(佤族)의 대나무 피리.
- 자적[自適] 무엇에도 속박됨이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생활함.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제 마음 내키는 대로 편안하게 즐김. 아무런 속박을 받지 않고 마음껏 즐김. 마음이 가는 대로 유유히 생활함. 유유자적(悠悠自適). 참고로, 도잠(陶潛)의 시 귀전원(歸田園)에 “동쪽 언덕에 모 심으니, 모가 자라 두둑에 가득하네. 비록 호미 메고 다니는 수고로움 있으나, 탁주로 애오라지 스스로 즐긴다네.[種苗在東皐, 苗生滿阡陌. 雖有荷鋤倦, 濁酒聊自適.]”라고 하였고,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이러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할 일을 대신 처리하고 다른 사람의 즐거움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여겨 자기의 즐거움을 스스로 즐거워하지 못하는 자들이다.[是役人之役, 適人之適, 而不自適其適者也.]”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종연[縱然] 설령 ~일지라도. 설사 ~하더라도. 종사(縱使). 즉사(卽使). 가령. 설사.
- 초월[超越] 어떤 한계나 표준을 넘음. 인식이나 경험의 범위 밖에 존재함. 가능적(可能的) 경험의 영역 밖에 있음. 일정한 한계나 범위를 뛰어넘음.
- 희황[羲皇] 상고(上古) 때의 제왕(帝王). 삼황(三皇)의 하나인 태호(太昊) 복희씨(伏羲氏)의 존칭이다. 주역(周易)의 팔괘(八卦)를 처음 그리고, 그물을 만들어 수렵과 어획을 가르친 인물이라고 전한다. 그 시대의 백성들이 근심 없이 순박하고 한적하게 살았으리라 하여 고인들은 그의 시대를 태평한 이상 시대로 상정하였고, 은자들이 자칭 희황상인(羲皇上人)이라 하였다. 일찍이 진(晉)나라의 시인 도잠(陶潛)의 글에 “오뉴월 여름철에 북창 아래에 누워 있다가 서늘한 바람이 잠깐 불어오면 스스로 복희씨 시대의 사람이라고 여기곤 했다.[五六月中 北窓下臥 遇涼風暫至 自謂是羲皇上人]”라는 구절이 나온다. <陶淵明集 卷7 與子儼等疏> 이백(李白)이 이를 차용하여 지은 희증정율양(戲贈鄭溧陽)에 “소금은 본래 줄이 없고, 술 거를 땐 갈건을 사용하지. 맑은 바람 부는 북창 아래 누워, 스스로 태곳적 사람이라 하네.[素琴本無絃 漉酒用葛巾 淸風北窓下 自謂羲皇人]”라고 하였다. 곧 희황상인은 순박하고 염담(恬淡)하여 아무런 세속적 영위(營爲)가 없는 태고 시절의 백성을 비유하는 말이다.
- 혜완[嵇阮] 혜완(嵆阮)은 위말진초(魏末晉初)에 죽림칠현(竹林七賢)으로 노장(老壯)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논하며 예법의 구속을 받지 않고 죽림(竹林)에 은거하여 술을 마시고 청담(淸談)으로 세월을 보낸 혜강(嵆康)과 완적(阮籍)을 이른다. 참고로, 두보(杜甫)가 정건(鄭虔)을 행각하며 지은 시인 유회태주정십팔사호(有懷台州鄭十八司戶)에 “당신은 진정 혜완의 부류, 그나마 또다시 세상의 혹평을 받았구려.[夫子嵇阮流 更被時俗惡]”라고 하였고, 진서(晉書) 권43 왕융열전(王戎列傳)에, 진(晉)의 왕융(王戎)이 상서령(尙書令)이 되어 공복(公服)을 입고 수레를 타고 황공주로 앞을 지나다가 뒷수레에 탄 사람을 돌아보면서 “내가 옛날 혜강, 완적 등과 함께 이 주점에서 술을 마시면서 죽림의 놀이에도 그 말석에 참여했었다. 혜강과 완적이 세상을 떠난 후로 시무에 묶여 지내다가 오늘 이곳을 보니, 거리는 비록 가까우나 아득하기가 산하가 가로놓인 듯하다.[吾昔與嵇叔夜阮嗣宗, 酣飲於此, 竹林之游, 亦預其末. 自嵇阮云亡, 吾便為時之所羈紲, 今日視之, 雖近邈若山河.]”라고 하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 혜금완소[嵇琴阮嘯] 위(魏)나라 혜강(嵇康)은 거문고를 잘 타고, 완적(玩籍)은 휘파람을 잘 불었다는 말이다. 혜강(嵇康)은 성이 혜(嵇)이고 이름이 강(康)인데, 본성은 해(奚)이다. 원한을 피하여 집을 초국(譙國) 질현(銍縣) 혜산(嵇山)의 곁으로 옮겨서 그것으로 해서 성(姓)을 삼았다. 금(琴)은 악기이다. 혜강은 금을 잘 타서 일찍이 낙서(洛西)에서 노닐다가 기이한 사람을 만나서 금곡(琴曲) 광릉산(廣陵散)을 배웠는데 성조(聲調)가 절륜(絶倫)하였다고 한다. 완(阮)은 성이고 이름이 적(籍)이다. 소(嘯)는 입을 오므려 소리를 내는 것이다. 완적(阮籍)은 휘파람을 잘 불었고, 진류(陳留)에 완공소대(阮公嘯臺)가 있다.
【譯文】 超越口耳之嗜欲, 得見人生之眞趣 : 口耳嗜欲, 但求眞趣.
飮茶不要求精制而且茶壺也不要燥涸 ; 喝酒不要求辛冽而且酒樽也不能罄空. 樸素的琴沒有琴弦而經常撫弄 ; 短小的笛沒有腔調而自我舒適. 縱然難以超出逾越伏羲皇帝, 也可以匹敵儔侶嵇康阮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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