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에서는 인연을 따르라 하고
유가에서는 처지와 분수를 따르라 하니
수연소위 네 글자는 바다를 건너는 부낭이다.
대체로 세상길은 아득하여
오로지 완전하기만을 갈구하게 되면
오만가지 말썽거리가 뒤얽혀 일어나니
경우에 따라 편안히 여겨야만이
어떤 상황에서든 자득하지 않음이 없으리라.
釋氏隨緣, 吾儒素位, 四字是渡海的浮囊.
석씨수연, 오유소위, 사자시도해적부낭.
蓋世路茫茫, 一念求全則萬緖紛起, 隨遇而安則無入不得矣.
개세로망망, 일념구전즉만서분기, 수우이안즉무입부득의.
<菜根譚채근담/明刻本명각본(萬曆本만력본)/後集후집>
- 수연[隨緣] 인연을 따르다. 인연(因緣)에 따라 사물이 일어남. 인연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것. 인연에 따라서 현상을 일으킴. 어떤 영향을 받아서 사물이 생김. 인연에 따라 나타남. 인연에 따라 변화함. 인연에 따라 드러나는 청정한 본래의 성품. 외연에 따라 행동하다. 기회와 인연을 따르다. 불가의 인연법(因緣法). 세상 모든 것은 인연법에 의하여 이루어졌음을 강조하는 것임. 수순연업(隨順緣業), 즉 착한 일을 해서 불도로 들어가는 순연(順緣)의 업을 따르는 것을 이르는 것이다. 수연행(隨緣行)은 보리달마(菩提達磨)의 입도사행(入道四行)에 나오는 네 가지 실행법 중의 하나이다.
- 소위[素位] 본 지위를 지킴. 현재의 지위와 환경. 그 당시의 환경. 그때그때의 지위 또는 환경. 아무런 벼슬이 없음. 벼슬을 가지지 아니한 채로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는 것. 소위(素位)는 자신이 처한 환경을 순리대로 받아들여 처해 있는 위치에 알맞게 행한다는 뜻이다. 소기위이행(素其位而行)의 줄임말로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4장에 “군자는 현재 처한 위치에 알맞게 행동할 뿐이요, 그 이외의 것은 바라지 않는다. 현재 부귀하면 부귀한 처지에 알맞게 행동하고, 현재 빈천하면 빈천한 처지에 알맞게 행동하며, 현재 이적의 가운데에 있으면 그 상황에 알맞게 처신하고, 현재 환난의 가운데에 있으면 그 상황에 알맞게 처신한다. 따라서 군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는 것이다.[君子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 素富貴, 行乎富貴. 素貧賤, 行乎貧賤. 素夷狄, 行乎夷狄. 素患難, 行乎患難. 君子無入而不自得焉.]”라고 한 데서 보인다.
- 부낭[浮囊] 물에 뜨는 주머니. 물을 건널 때 사용하는 공기주머니. 헤엄을 치거나 물에 빠졌을 때 몸이 잘 뜨게 하는 물건. 헤엄칠 때 인체의 부력을 돕기 위하여 쓰이는 것. 물을 건널 때 빠지지 않을 생명구제의 도구. 물 위에 떠서 사람이 잡고 험한 물을 건널 수 있도록 하는 부물(浮物). 방수포나 고무로 만들어 공기를 넣어서 씀. 선박에 비치하는 구명구(救命具). 구명대(救命帶). 구명동의(胴衣). 등에 지는 구명대(救命袋). 둥근 구명부환(浮環) 따위가 있음. 부대(浮袋·浮帶). 부포(浮包).
- 세로[世路] 세상을 살아 나가는 길. 세상 경험. 처세의 길. 벼슬길. 세상을 겪어나가는 길. 세상 사람들의 인정. 인생행로(人生行路). 과거·현재·미래의 삼세(三世)에 걸쳐 변해 가는 과정을 나타내는 말. 참고로, 도잠(陶潛)의 시 음주(飮酒) 20수 가운데 제19수에 “세상길 광활하고 아득하니, 양주는 이 때문에 가던 길 멈추었지.[世路廓悠悠, 楊朱所以止.]”라고 한 데서 보인다.
- 망망[茫茫] 넓고 멀어 아득한 모양(模樣). 요원하다. 희미하다. 어둡고 아득함. 아득해 알지 못하는 것. 아득하다. 까마득하다. 망망하다. 아득히 멀고 광활한 모양. 한없이 넓고 아득함. 분명하지 않음. 헤아릴 수 없음. 끝이 보이지 않게 광활한 것을 가리킨다. 참고로, 왕안석(王安石)의 시 화성각(化城閣)에 “굽어보니 큰 강이 흘러가는데, 끝도 없이 하늘과 맞닿아 있네.[俯視大江奔, 茫茫與天平.]”라고 하였고, 이백(李白)의 시 초서가행(草書歌行)에 “회오리바람 소낙비 쏴 소리에 놀라니, 떨어지는 꽃 나는 눈 어찌나 망망한지.[飄風驟雨驚颯颯, 落花飛雪何茫茫.]”라고 하였고, 상청보정시(上淸寶鼎詩)에 “아침에 운몽택의 구름을 헤치고, 삿갓 차림 낚시질에 푸른 물이 아득하네.[朝披夢澤雲, 笠釣靑茫茫.]”라고 하였고, 도잠(陶潛)의 의만가사(擬挽歌辭)에 “무성한 풀은 어찌 그리 아득한가, 백양나무 또한 쓸쓸하기만 하네.[荒草何茫茫, 白楊亦蕭蕭.]”라고 하였고,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에 “위에는 하늘이 푸르러 끝이 없고 아래는 황천이니, 두 곳이 아득하여 모두 보이지 않는구나.[上窮碧落下黃泉, 兩處茫茫皆不見.]”라고 하였고, 두보(杜甫)의 시 증위팔처사(贈衛八處士)에 “내일 산악으로 가로막히면, 세상일 양쪽 모두 아득하여라.[明日隔山岳, 世事兩茫茫.]”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일념[一念] 한 가지만을 생각하는 한결같은 마음. 오직 한 가지 생각. 전심으로 염불함. 아주 짧은 순간. 또는 순간의 마음. 하나의 생각. 한 순간의 생각. 극히 짧은 시간. 전심(專心)으로 염불(念佛)함. 참고로, 화엄경(華嚴經) 권13에 “한 생각에 무량겁을 두루 살펴보니,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고 또한 현재의 머묾도 없네. 이와 같이 삼세를 다 알고 나면, 모든 방편을 초월하여 부처와 같은 능력을 이룰 것이다.[一念普觀無量劫, 無去無來亦無住. 如是了知三世事, 超諸方便成十力.]”라고 하였고, 송명신언행록(宋名臣言行錄) 외집(外集) 권13 장식(張栻)에, 송 효종(宋孝宗)이 장식(張栻)에게 천공(天公)에 대해 묻자, 장식이 진언(進言)하기를 “임금은 저 짙푸른 하늘을 하늘로 여겨서는 안 되고 마땅히 자신의 시청언동 사이에서 구해야 합니다. 한 가지 생각이 옳으면 바로 즉시 상제께서 굽어살피고 상제께서 임금에게 임하시어 상제의 마음에 간택되고, 한 가지 생각이 옳지 않으면 바로 즉시 상제께서 진노합니다.[人主不可以蒼蒼者便爲天, 當求諸視聽言動之間. 一念纔是, 便是上帝鑑觀, 上帝臨女, 簡在帝心; 一念纔不是, 便是上帝震怒.]”라고 한 데서 보이고, 소식(蘇軾)의 시 백보홍(百步洪)에 “나의 삶 역시 자연의 변화 따라 밤낮으로 물처럼 흘러가나니, 찰나(刹那)의 한 생각이 신라를 이미 지나간 것을 앉아서 깨닫겠노라.[我生乘化日夜逝 坐覺一念逾新羅]”라고 한 데서 보인다.
- 구전[求全] 완전무결을 추구하다. 일을 성사시키려고 하다. 일이 성사되기를 바라다. 완벽을 기하다. 생명의 안전을 구하다. 참고로, 맹자(孟子) 이루 상(離婁上)에 “생각지도 않았는데 얻어지는 명예가 있고, 완전하게 하려다가 비방을 받는 수도 있다.[有不虞之譽 有求全之毁]”라고 하였다.
- 구전사상[求全思想] 부정적 모두 완벽하게 행하려는 생각.
- 구연구전[苟延求全] 구차하게 생명의 안전을 구하다.
- 만서[萬緖] 여러 가지 얼크러진 일의 실마리.
- 분기[紛起] 말썽이 여기저기서 어지럽게 자꾸 일어남. 여기저기서 말썽이 생김.
- 경우[境遇] 어떤 조건 아래에 놓인 그때의 상황이나 형편. 놓여 있는 조건이나 놓이게 되는 형편 또는 사정. 상황(狀況). 지경(地境). 사리나 도리. 어떤 일의 이치나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
- 자득[自得] 스스로 만족함. 스스로 얻음. 스스로 깨달아 알아냄. 스스로 터득함. 스스로 뽐내어 우쭐거림. 자기가 자기의 한 일에 대하여 갚음을 받는 일. 득의하다. 스스로 느끼다. 체득하다. 스스로 만족하다. 마음에서 도리를 깨닫다. 참고로, 중용장구(中庸章句) 14장에 “부귀에 처해서는 부귀대로 행하고, 빈천에 처해서는 빈천대로 행하며, 이적에 처해서는 이적대로 행하며, 환난에 처해서는 환난대로 행하니, 군자는 들어가는 곳마다 스스로 만족하지 않음이 없다.[素富貴, 行乎富貴, 素貧賤, 行乎貧賤, 素夷狄, 行乎夷狄, 素患難, 行乎患難. 君子無入而不自得焉.]”라고 하였고, 맹자(孟子) 이루 하(離婁下)에 “군자가 깊이 나아가기를 도로써 함은 자득하고자 해서이니, 자득하면 처(處)하는 것이 편안하고 처하는 것이 편안하면 자뢰(資賴)함이 깊게 되고 자뢰함이 깊으면 좌우에서 취함에 그 근원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君子深造之以道 欲其自得之也 自得之則居之安 居之安則資之深 資之深則取之左右 逢其原 故君子欲其自得之也]”라고 하였다.
【譯文】 萬事皆緣, 隨遇而安.
佛家主張順應機緣任其自然, 儒家主張所居之位行其所行, 這 “隨緣素位” 四個字是渡過大海的飄浮氣囊. 因爲世間道路遙遠渺茫, 一個念頭要求完美無缺, 就會千頭萬緒紛至遝來, 反之隨著境遇安分知足, 就沒有人不是悠然自得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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