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돌로 있을지언정 규장은 되지 말고
그냥 실로 있을지언정 황상은 되지 마라.
모든 일에 남에게 이익을 받지 않으면
이 마음이 문득 하늘과 더불어 노닐리라.
寧爲璞玉, 毋爲圭璋. 寧爲素絲, 毋爲黃裳.
역위박옥, 무위규장. 영위소사, 무위황상.
凡事不受人益, 此心便與天遊.
범사불수인익, 차심변여천유.
<菜根譚채근담/明刻本명각본(萬曆本만력본)/後集후집>
- 영위[寧爲] 寧爲~, 不(無)爲~ : 차라리 ~하는 것이 낫지, ~하지 않겠다. 차라리 ~할 ㅈ언정 ~하지 않겠다.
- 박옥[璞玉] 아직 가공하지 아니한 옥돌. 아직 다듬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옥 덩어리. 아직 제품으로 쪼거나 갈지 아니한 옥. 돌 속에 들어 있는 탁마(琢磨)하지 않은 옥으로, 아름다운 자질과 훌륭한 기량을 품고 있음을 비유한다. 참고로, 맹자(孟子) 양혜왕 하(梁惠王下)에 “지금 여기에 박옥(璞玉)이 있으면 비록 만일(萬鎰)이라도 반드시 옥공(玉工)으로 하여금 조탁(彫琢)하게 하실 것이니, 국가를 다스림에 있어서는 우선 네가 배운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 하신다면, 옥공으로 하여금 옥을 조탁하게 하는 것과는 왜 다르게 하십니까.[今有璞玉於此 雖萬鎰 必使玉人彫琢之 至於治國家 則曰姑舍女所學而從我 則何以異於敎玉人彫琢玉哉]”라고 한 데서 보이고, 한비자(韓非子) 화씨(和氏)에 초(楚)나라의 변화(卞和)가 박옥(璞玉)을 얻어 초 여왕(楚厲王)에게 바쳤으나 속였다 하여 왼발을 잘렸고 무왕(武王) 때에 또 바쳤다가 오른발을 잘렸는데, 문왕(文王)이 즉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그 박옥을 쪼아서 과연 보옥(寶玉)을 얻었다는 이야기에서 나온다.
- 규장[圭璋] 규장(圭璋)은 규장(珪璋)으로도 쓰인다. 규(珪)와 장(璋)은 고대 조빙(朝聘)에 사용하는 몹시 귀중한 예기(禮器)로, 규(圭)는 제후가 천자를 알현할 때 드는 옥이며 장(璋)은 알현이 끝난 뒤에 드는 옥이다. 매우 고아한 인품이나 걸출한 인재에 비유된다. 예기(禮記) 빙의(聘義)에 “옛적에 군자가 덕을 옥에 비유하였다. 온윤하면서도 광택이 남은 인이고 세밀하면서도 엄숙하게 보임은 지이고……규장 한 가지만으로 통하는 것은 덕이다.[夫昔者 君子比德於玉焉 溫潤而澤仁也 縝密以栗知也……圭璋特達德也]”라고 하였는데, 그 주(注)에 “빙례를 행할 때 규장만을 가지면 다른 폐백을 갖추지 않아도 곧바로 통할 수 있다.[行聘之時 惟執圭璋 特得通達 不加餘幣也]”라고 하였는데, 규장이 매우 귀중하기 때문에 다른 폐백을 쓸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쓰였다. 참고로, 시경(詩經) 대아(大雅) 권아(卷阿)에 “존귀하고 엄숙하며, 규와 같고 장과 같네. 아름다운 명망이 있는지라, 개제한 군자를 사방이 기강으로 삼네.[顒顒卬卬, 如圭如璋. 令聞令望, 豈弟君子, 四方爲綱.]”라고 하였는데, 주희(朱熹)의 주(注)에 “규장(圭璋)은 순수하고 깨끗함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고, 시경(詩經) 대아(大雅) 역복(棫樸)에 “의용이 엄숙한 임금이시여, 신하들이 규장을 받들고 있네. 규장 받든 의용이 거룩하거니, 준수한 선비로서 당연한지고.[濟濟辟王, 左右奉璋. 奉璋峩峩, 髦士攸宜.]”라고 하였고, 장자(莊子) 마제(馬蹄)에 “나무의 순박함을 해치지 않고서야 누가 희준을 만들며, 백옥을 깨뜨리지 않고서야 누가 규장을 만들겠는가. 도(道)와 덕(德)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어찌 인의(仁義)를 주장하겠는가.[純樸不殘, 孰爲犧樽. 白玉不毁, 孰爲珪璋. 道德不廢, 安取仁義.]”라고 하였는데, 이이(李頤)는 “모두 도구의 이름이다. 위가 좁고 뾰족하며, 밑부분이 길게 네모난 것을 규라(珪) 하고, 규의 절반 크기를 장(璋)이라 한다.[皆器名也 銳上方下曰珪 半珪曰璋]”고 풀이하였고, 적총충(赤塚忠)은 “珪(규)는 圭(규)와 같다. 공적(公的) 의식(儀式)에 참가하는 귀인이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기 위해 지니는 옥(玉)으로, 윗부분은 뾰족하고 아랫부분은 얇고 긴 장방형(長方形)으로 되어 있다. ‘장(璋)’은, 규(珪)를 세로 방향으로 절반을 자른 모양의 홀(笏)로, 용도는 규(珪)와 같다.”고 설명하였다.
- 규장[圭璋] 이는 모두 고대에 천자나 제후가 조빙(朝聘), 제사(祭祀), 상장(喪葬) 등 의식을 거행하거나 군사(軍事)를 다스릴 때에 사용하던 옥으로 만든 예기(禮器)인바, 일종의 신표(信標)였다. ‘규(圭)’는 전체적으로 길쭉한 형태인데 위는 삼각형으로 뾰족하고 아래는 네모나며, 가장 긴 것은 1척 2촌, 가장 짧은 것은 7촌이고, 넓이는 3촌, 두께는 반촌이다. 그 이름과 크기는 작위 및 용도에 따라서 다르다. 반규(半圭)를 ‘장(璋)’이라고 하는데, 긴 것은 9촌 짧은 것은 7촌이며, 두께는 1촌이다. 예기(禮記) 빙의(聘義) 소(疏)에 의하면 예(禮)를 중(重)히 여기고 재물(財物)을 가벼이 여기는 뜻에서, 사신(使臣)이 돌아가려 할 때 주국(主國)의 임금이 경(卿)을 빈관(賓館)으로 보내어 빙례(聘禮) 때 올린 규장(圭璋)을 도로 돌려준다고 하였다.
- 소사[素絲] 흰 실. 흰 명주실. 흰 비단실. 절약하고 검소하게 생활함. 시경(詩經) 소남(召南) 고양(羔羊)에 “염소 가죽 갖옷이여! 흰 실로 다섯 군데 장식했도다.[羔羊之皮 素絲五紽]”라고 하였고, 시경(詩經) 용풍(鄘風) 간모(干旄)에 “우뚝 솟은 간모여, 준읍(浚邑)의 교외에 있도다. 흰 실 짜서 매달고 양마 네 필을 멍에 하였구나. 저 아름다운 그대는 무엇으로써 보답해 주려는고.[孑孑干旄, 在浚之郊. 素絲紕之, 良馬四之. 彼姝者子, 何以畀之?]”라고 한 데서 보이고, 남조(南朝) 제(齊)나라 왕융(王融)의 위왕검양국자좨주표(爲王儉讓國子祭酒表)에 “나 자신이 주사와 쪽이 아닌데, 어떻게 흰 실을 아름답게 물들이겠는가.[不自朱藍, 何遷素絲之質.]”라고 한 데서 보인다. 참고로, 소사(素絲)는 흰색 실로, 사람의 성품이나 지취(志趣) 등이 환경과 습속의 영향을 받아 변하기 쉬움을 뜻하는 말로도 쓰이는데, 묵자(墨子) 권1 소염(所染)에, 묵자(墨子)가 실을 물들이는 사람을 보고 탄식하기를 “푸른색으로 물들이면 푸르게 되고, 노란 색으로 물들이면 노랗게 되니, 들어가는 곳의 변화에 따라 그 색 또한 변하는구나. 오색을 물들이면 오색이 되니, 물들이는 것을 삼가지 않아서는 안 된다.[染於蒼則蒼, 染於黃則黃. 所入者變, 其色亦變. 五入必而已, 則為五色矣. 故染不可不慎也.]”라고 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 황상[黃裳] 노랗게 물들인 치마. 노란 빛깔의 치마. 좋은 의복. 누런색의 아랫도리. 일반적으로 상사(上士)는 현상을 입고, 중사(中士)는 황상을, 하사(下士)는 잡상을 입는다. 참고로, 주역(周易) 곤괘(坤卦) 육오(六五)에 “누런 치마라면 크게 길하리라.[黃裳元吉]”라고 하였고, 정전(程傳)에 “황색은 중색(中色)이며 치마는 아래에 있는 옷이다. 중도를 지키고 아래에 거하면 크게 길할 것이니 분수를 지키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참고로, 시경(詩經) 패풍편(邶風篇) 녹의장(錄衣章)에 “푸른 상의를 입음이여! 누른 치마로다.[綠兮衣兮綠衣黃裳]”라고 한 데서 보인다.
- 황상[黃裳] 음(陰)의 극귀(極貴)한 자. 왕후의 정복(正服)으로 왕후(王后)의 정위(正位)를 가리킨다. 존귀하고 길한 사물로서 내면의 덕을 비유하며, 적처(嫡妻)를 가리키기도 한다. 주역(周易) 곤괘(坤卦) 육오(六五)에 “황색 치마처럼 하면 크게 선하여 길하리라.[黃裳元吉]”라고 하였는데, 정이(程頤)의 전(傳)에 “황색[黃]은 중색(中色)이고, 치마[裳]는 아래에 입는 옷이다. 중도(中道)를 지키면서 아래에 거하면 크게 선하여 길할 것이니, 분수를 지킴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여자로서 높은 신분에 있으면서 중도를 지키고 아래에 거처하면 크게 길하다는 뜻이다.
- 천유[天遊] 마음에 아무런 걸림이 없이 자연스러운 상태로 노니는 것. 정신이 세속을 초탈하여 자연 속에 노니는 것. 마음이 외물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움. 마음이 몸의 주인이 되어 천리(天理)로써 스스로 즐거워함. 사물(事物)에 구애(拘礙)되지 아니하고 마음에 막힌 데 없이 자연(自然) 그대로 자유로운 일. 천연 그대로의 소요유(逍遙遊). 참고로, 장자(莊子) 외물(外物)에 “뱃속의 태 안에도 넓은 공간이 있고, 마음에도 자연스럽게 노닐 공간이 있다. 집안에 빈 공간이 없으면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서로 반목하게 되고, 마음에 자연스럽게 노닐 공간이 없으면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서로 다투게 된다.[胞有重閬, 心有天遊. 室無空虛, 則婦姑勃豀 ; 心無天遊, 則六鑿相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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