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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혁[杜赫], 두현[頭眩], 두협[頭頰], 두형[杜蘅], 두호모[頭虎毛], 두홍점[杜鴻漸]


두험천[豆險川]  현재의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하천 이름으로, 역참이 있었다.

두혁[杜赫]  초(楚)나라의 신하. 유세객. 두료(杜聊).

두현[杜縣]  지금의 중국 섬서성 서안시 동남쪽의 고을로 한무제 때 두릉(杜陵)으로 개칭되었다.

두현[頭眩]  현기증. 어질어질하다.

두협[頭頰]  뺨. 볼. 검협(臉頰).

두형[杜蘅]  향초의 일종으로, 두약(杜若)이다. 아욱과 비슷한 향초(香草)인데 잎이 말발굽과 비슷하다 하여 마제향(馬蹄香)이라 칭하기도 한다. 굴원(屈原)의 초사(楚辭) 이소(離騷)에 “유이와 계차를 밭두둑으로 나누고, 두형과 방지를 섞었네.[畦留夷與揭車兮, 雜杜衡與芳芷.]”라고 하였다. 방지와 두약은 문학작품에서 주로 군자나 현인을 비유하고, 두형과 방초는 뜻이 같고 도(道)가 합한 친구를 비유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두형[豆鉶]  두(豆)는 물기가 있는 음식을 담는 도마처럼 생긴 그릇이고, 형(鉶)은 국그릇이다.

두혜도[杜慧度]  진 나라의 장수이다.

두호[斗護]  뒤덮고 보호함, 두둔함.

두호[杜鎬]  북송(北宋) 상주(常州) 무석(無錫) 사람으로 자(字)는 문주(文周)이고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경사(經史)에 정통하였고, 태종(太宗) 때 명경(明經)으로 천거되어 천승주부(千乘主簿)에 올라 비각(秘閣)에서 일했다. 진종(眞宗) 경덕(景德) 초에 도관낭중(都官郎中)이 되어 책부원귀(冊府元龜)를 편수했다. 1007년(경덕4), 우간의대부(右諫議大夫)와 용도각 직학사(龍圖閣直學士)에 올랐다. 박문강기(博聞强記)하고 역사 연구에 치중하여 매일 경사(經史) 수십 권을 검토했으며, 성격이 온화하고 청렴 소탈하여 선비들의 추중을 받았다. 칙명으로 형병(邢昺), 손석(孫奭) 등과 함께 제경정의(諸經正義)를 교정하고, 이아(爾雅)의 석문(釋文)을 참작해 정했다. 송사(宋史) 두기전(杜杞傳)에는 두기의 부친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생몰연대나 본 묘지명 등을 볼 때 송사의 기록은 오류인 듯하다. 덕종(德宗) 때 직학사(直學士)로 있으면서, 덕종이 두호에게 “‘하수에서는 그림이 나왔고 낙수에서는 글이 나왔다.’고 하니 어찌된 일인가?”라고 물으니, 두호는 예사로 왕흠약(王欽若)의 말과 같이 “성인이 신도(神道)로써 교화를 베푼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덕종이 봉선(封禪 천자가 하늘과 산천에 제사하는 것)하기로 결정하였다고 한다.

두호[斗湖]  옛날 한강(漢江)은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었으며, 특히 물길이 휘돌아 강폭이 넓고 물살이 고요한 곳은 모두 호수로 이름하였는데, 지금의 양화나루 일대를 흐르는 한강을 두호(斗湖) 혹은 서호(西湖)라고 불렀다.

두호모[頭虎毛]  용감한 장사의 거칠고 힘찬 모습을 형용한 것이다. 두보의 시 형남병마사태상경조공대식도가(荊南兵馬使太常卿趙公大食刀歌)에 “짧은 옷을 입은 장사 머리카락 범 털 같은데, 난간에 기대어서 칼을 뽑자 하늘 높네.[壯士短衣頭虎毛, 憑軒拔鞘天爲高.]”라고 하였는데, 송나라의 곽지달(郭知達)은 구가집주두시(九家集注杜詩)에서 장자(莊子) 설검(説劍)의 말을 인용하여 “풀어헤친 머리에 일어선 구레나룻이다.[蓬頭突鬢]”라고 주석하였다.

두홍점[杜鴻漸]  두홍점은 당 대종(唐代宗) 때 원재(元載), 왕진(王縉)과 함께 재상이 되었는데 모두 불교를 좋아하였다. 두홍점은 병이 깊어지자 승려에게 자기의 머리를 깎도록 하고 탑을 세워 장사 지내도록 유언으로 명하였다. <資治通鑑綱目 卷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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