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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건(屯蹇], 둔경[屯耕], 둔고불하[屯膏不下], 둔곡[遯谷], 둔골우번[屯骨虞翻]


둔거[砘車]  둔거(砘車)는 씨앗을 뿌리고 나서 땅을 다지는 가구이다.

둔건(屯蹇]  세상이 험악하여 처세하기 어려움. 주역(周易) 둔괘(屯卦)와 건괘(蹇卦)의 병칭으로서, 어렵고 힘든 상황을 만나 곤고(困苦)한 처지에 놓인 것을 가리킨다.

둔경[屯耕]  군사가 변방에 주둔하여 농사를 지으며 적을 방어하는 것을 이른다.

둔고[屯膏]  은혜가 막힘. 위의 혜택이 아래로 내려가지 않음. 임금의 은택이 아래에까지 미치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주역(周易) 둔괘(屯卦) 구오(九五)에 “구오는 은택을 베풀기가 어려우니, 조금씩 바로잡으면 길하고 크게 바로잡으면 흉하리라.[九五, 屯其膏, 小貞, 吉; 大貞, 凶.]”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둔고불하[屯膏不下]  주역(周易) 둔괘(屯卦) 구오(九五)의 “은택을 베풀기 어렵다.[屯其膏]”에 대한 정전(程傳)에 “정령이 시행되지 못하여 덕택이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니 이것이 둔기고이다. 인군의 어려움이다.[唯其施爲有所不行 德澤有所不下 是屯其膏 人君之屯也]”라고 하였다. 정령이 시행되지 못해 임금의 은택이 아래로 미치지 못함을 뜻한다.

둔고비입[屯固比入]  둔(屯)은 험난(險難)의 상(象)이므로 견고(堅固)가 되고, 비(比)는 친밀(親密)의 상(象)이므로 진입(進入)이 된다.

둔곡[遯谷]  둔곡은 은둔자가 살기에 합당한 골짜기라는 말이다. 주역(周易) 택풍대과괘(澤風大過卦)의 상사(象辭)에 “못의 물이 나무 위에까지 차오르는 것이 대과괘의 상이니, 군자는 이 점괘를 보고서 홀로 우뚝 서서 두려워하지 않으며 세상을 피해 살면서도 후회하지 않는다.[澤滅木 大過 君子 以 獨立不懼 遯世無悶]”라고 하였다.

둔곡[屯穀]  둔전(屯田)에서 수확한 곡식을 이른다.

둔곡촌[芚谷村]  현재 신안군 지도읍 내양리에 속한 마을이다. 운양이 살았던 집의 위치는 내양리 918번지인데, 지금은 주택이 아니라 채소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 지역이다. 그 마을 뒤편에 부엉바위가 있고, 그 아래 석축에 운양의 필적으로 시암(示巖)이라 새겨져 있다.

둔골우번[屯骨虞翻]  삼국 시대 오(吳)의 경학자(經學者)인 우번(虞翻)이 기절(氣節)을 숭상한 나머지, 직간(直諫)과 주실(酒失) 등으로 인하여 오주(吳主) 손권(孫權)의 비위에 자주 거슬려 여러 지방으로 쫓겨났다가 최후에 교주(交州)로 쫓겨나서는 수백 인의 문도(門徒)를 거느리고 강학(講學)에 전념했던 데서 온 말이다. 이때 그는 스스로 한탄하기를 “고고한 절조로 인해 몸뚱이를 굽실거리지 못하고, 윗사람을 범하여 죄를 얻어 바다 한쪽 구석에서 영원히 생을 마치게 되니, 살아서는 더불어 말할 사람이 없고, 죽어서는 오직 파리 떼를 조객으로 맞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은 스스로 한스러우나, 천하에 한 사람이라도 나를 알아줄 이만 있다면 족히 한 될 것이 없겠다.[自恨疏節 骨體不媚 犯上獲罪 當長沒海隅 生無可與語 死以靑蠅爲弔客 使天下一人知己者 足以不恨]”라고 하였다 한다. <三國志 卷57 吳書 虞翻傳> 한유(韓愈)의 소주유별장단공사군(韶州留別張端公使君) 시에 “강총의 뛰어난 문재는 오래전부터 흠모했거니와, 우번의 골상 불운함을 스스로 한탄하노라.[久欽江總文才妙 自歎虞翻骨相屯]”라고 하였다. <韓昌黎集 卷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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