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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시무태[得時無怠], 득식계제[得食階除], 득신기정[得伸其情], 득신유재[得臣猶在]


득시무태[得時無怠]  좋은 때를 얻으면 태만(怠慢)함이 없이 근면(勤勉)하여 기회(機會)를 놓치지 말라는 말이다. 국어(國語) 21권 월어 하(越語下)에 “때가 이르면 게으를 수가 없으니 때가 다시 오지 않기 때문이며, 하늘이 내려 주는데 받지 않으면 도리어 재앙이 된다.[得時無怠, 時不再來, 天予不取, 反爲之灾.]”라고 한 데서 보인다.

득식계제[得食階除]  사람들이 주는 먹이를 얻어먹는다는 말이다. 두보(杜甫)가 은거한 금리(錦里) 선생의 집을 찾아가서 지은 칠언율시 남린(南隣) 함련(頷聯)에 “손님을 봄이 익숙하여 아이들이 반가워하고, 뜰에서 먹이 얻어먹어 새들이 길들여졌네.[慣看賓客兒童喜, 得食階除鳥雀馴.]”라고 하였는데, 이를 인용한 표현이다. <杜詩詳註 卷9 南隣>

득식계제조작순[得食階除鳥雀馴]  두보(杜甫)가 금리(錦里)에 있을 때 남촌(南村)의 주 산인(朱山人)과 왕래하면서 지은 시인 남린(南隣)에 “금리 선생은 오각건을 쓰고서, 토란과 밤 거두워라 전혀 가난치만은 않네. 빈객을 익히 본 아동들은 반가워하고, 뜰에서 먹이 쪼는 새들은 길이 들었네.[錦里先生烏角巾 園收芋栗不全貧 慣看賓客兒童喜 得食堦除鳥雀馴]”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은자의 생활을 의미한다.

득신[得臣]  노(魯) 나라 대부 숙손득신(叔孫得臣)을 이른다. 환공(桓公)의 증손이고 시호는 장숙(莊叔)이다. 문공(文公)의 장례에 제 나라에서 와 준 것에 대해 사례하기 위하여 제 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그는, 장군으로 큰 사건이 일어나기를 기다려 자신의 세 아들 이름을 짓기로 하였는데, 수만국(鄋瞞國)이 당시 노나라를 쳐들어왔는데 그 임금이 바로 장적교여(長狄僑如)이었다. 득신이 그를 생포한 것을 기념하여 자신의 아들 선백(宣伯)의 이름을 교여(僑如)라고 지었다고 한다. <春秋左氏傳 文公 11年>

득신[得伸]  뜻을 펴게 됨. 소송에 이김. 승소(勝訴).

득신기정[得伸其情]  그 뜻을 펼 수가 있음. 그 뜻을 펴게 됨.

득신유재[得臣猶在]  춘추 시대에 진(晉) 나라 문공이 초(楚) 나라 장수 득신(得臣)과 싸워 크게 이기고 나서도 “득신이 아직 살아 있으니 걱정이 된다.”라고 하였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선공(宣公) 12년 조의 “문공께서 말씀하시기를 ‘초(楚)에 득신(得臣)이 아직도 살아 있으니, 근심이 끝나지 않았다. 짐승도 궁지에 몰리면 덤비는데, 하물며 일국의 재상이겠는가.’라고 하셨습니다. 초(楚)가 자옥(子玉 득신(得臣))을 죽임에 문공(文公)께서 기뻐하는 빛을 얼굴에 드러내며, ‘이제 다시는 나를 해칠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公曰, 得臣猶在, 憂未歇也. 困獸猶鬪, 況國相乎. 及楚殺子玉, 公喜而後可知也. 曰, 莫余毒也已]”라는 구절에서 보인다. ‘喜而後可知也’에 대해 두예(杜預) 소(疏)에서는 ‘기쁨이 안색에 드러난 것이다.[喜見於顔色]’라고 풀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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