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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고원망[登高遠望], 등고이초[登高而招], 등고자비[登高自卑], 등고작부[登高作賦]


등고원망 인정소락[登高遠望 人情所樂]  춘추곡양전(春秋穀梁傳) 장공(莊公) 31년(기원전 663) 조에 “노 장공(魯莊公)은 이해 봄에 랑(郞)에 대를 쌓고[築臺于郎], 여름에는 설(薛)에 대를 쌓고[築臺于薛], 가을에는 진(秦)에 대를 쌓았다.[築臺于秦]”라고 하였고,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장공 31년 조 하휴(何休) 주(注)에 “예(禮)에 따르면 천자는 영대(靈臺)를 두어 천지를 살피고 제후는 시대(時臺)를 두어 사시를 살피되, 높은 곳에 올라가 민심이 즐거워하는 바를 멀리 살펴서 행하여도 백성들에게 유익함이 없는 것은 비록 즐겁더라도 하지 않는다.[禮 天子有靈臺以候天地 諸侯有時臺以候四時 登高遠望 人情所樂 動而無益於民者 雖樂不爲也]”라는 내용이 보이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춘추(春秋) 경문은 장공이 봄에는 민간의 부녀자들이 빨래하는 장소인 낭에 대를 쌓고, 여름에는 교외 먼 지역인 설에 대를 쌓고, 가을에는 사직과 종묘와 조정을 굽어볼 수 있는 진에 대를 쌓아 예를 어겼을 뿐 아니라, 농사에 바쁠 세 철에 모두 백성들을 동원하여 농사 시기를 뺏고 백성들의 힘을 고갈시킨 것에 대해 기롱한 것이다. 낭, 설, 진은 모두 노나라의 땅 이름이다.

등고이초[登高而招]  높은 곳에 올라가 사람을 부름. 배움에 의해 높은 깨달음을 얻음. 가장 편리(便利)한 곳을 이용(利用)함의 비유. 높은 곳에 올라 부르면 먼 곳에 있는 사람도 잘 볼 수 있으므로, 효과를 올리기 위하여 물건을 잘 이용하라는 말이다. 순자(荀子) 권학편(勸學篇)에 “나는 일찍이 하루 종일 생각만 해 본 일이 있었으나, 잠깐 동안 배운 것만도 못하였다. 나는 일찍이 발돋움을 하고 바라본 일이 있었으나, 높은 곳에 올라가서 손짓을 하면 팔이 더 길어지지 않더라도 멀리서도 보게 되며, 바람을 따라 소리치면 소리가 더 커지지 않더라도 분명히 들리게 되며, 수레와 말을 이용하는 사람은 발이 빨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천리 길을 가게 되며, 배와 노를 이용하는 사람은 물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강물을 걷는다. 군자는 나면서부터 남과 달랐던 것이 아니라 사물을 잘 이용한 것이다.[吾嘗終日而思矣, 不如須臾之所學也. 吾嘗罰而望矣, 不如登高之博見也. 登高而招, 臂非加長也, 而見者遠, 順風而呼, 聲非加疾也, 而聞者彰, 假輿馬者, 非利足也, 而致千里, 假舟?者, 非能水也, 而絶江河. 君子生非異也, 善假於物也.]”라고 한 데서 보인다.

등고자비[登高自卑]  높은 곳에 이르기 위하여는 낮은 곳부터 밟아야 한다.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올라야 한다. 일을 하는 데는 반드시 차례를 밟아야 한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고, 지위가 높아질수록 스스로를 낮춘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5장 1절에서 “군자의 도는 비유컨대 먼 곳을 갈 때 반드시 가까운 곳으로부터 하며, 높은 곳을 오를 때 반드시 낮은 곳으로부터 함과 같다.[君子之道 辟如行遠必自邇 辟如登高必自卑]”라고 하였다.

등고작부[登高作賦]  높은 데 올라가서 부를 지음. 등고작부(登高作賦)는 이른바 등고능부(登高能賦)를 뜻하는 말로, 이는 원래 옛날에 대부(大夫)가 구비해야 할 아홉 가지 재능 가운데 하나이다. 한서(漢書) 권30 예문지(藝文志)에 “전에 이르기를 ‘노래하지 않고 읊는 것을 부라고 한다. 높은 데에 올라가서는 시를 읊을 줄 알아야 대부라 할 수 있다.’고 하였다.[傳曰 : 不歌而誦謂之賦, 登高能賦, 可以爲大夫.]”라고 하였다. 또, 한시외전(韓詩外傳) 권7에 의거하면, 공자(孔子)가 일찍이 경산(景山)에 올라가 노닐 적에 자로(子路)와 자공(子貢), 안연(顔淵)이 시종(侍從)하였는데, 공자가 “군자는 높은 데 올라가면 반드시 시를 읊는 법이다. 너희들은 바라는 바가 무엇인고?[君子登高必賦, 小子願者何?]”라고 하였다. 또, 왕발(王勃)의 등왕각서(滕王閣序)에 “아아! 명승지는 영원하지 않고, 성대한 잔치는 다시 참석하기 어렵다. 난정(蘭亭)은 허물어지고 재택(梓澤)은 이미 폐허가 되었다. 이별에 임하여 이 글을 지어 올리게 된 것은 요행히 이 성대한 송별잔치에 참석하는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다. 등고(登高)하였으면 부(賦)를 지으라고 여러 공들에게 부탁하니, 보잘것없지만 감히 정성을 다하여 삼가 짧은 서문을 짓고, 한 마디 부(賦)를 지어서 사운(四韻)으로 완성하였다.[嗚呼! 勝地不常, 盛筵難再 ; 蘭亭已矣, 梓澤邱墟. 臨別贈言, 幸承恩於偉餞 ; 登高作賦, 是所望於群公. 敢竭鄙誠, 恭疏短引 ; 一言均賦, 四韻俱成.]”라고 한 데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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