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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공마발영[滕公馬發塋], 등공마벽[鄧公馬癖], 등공석곽[滕公石槨], 등공신천[滕公新阡]


등공마발영[滕公馬發塋]  등공의 말이 무덤 자리 발로 팜. 등공(滕公)은 한 고조(漢高祖)의 명신인 하후영(夏侯嬰)의 봉호이다. 등공이 일찍이 말을 타고 동도문(東都門)에 이르렀을 때 말이 가지 않고 발로 땅을 허비적거리기에 그곳을 파 본 결과 석곽(石槨) 하나가 나왔다. 이를 깨끗이 씻어서 보니, “답답하던 가성이 3000년 만에 태양을 보았도다. 아, 등공이 이곳에 거처하리라.[佳城鬱鬱 三千年見白日 吁嗟滕公居此室]”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하여 등공의 유명(遺命)에 의해서 등공이 죽은 뒤에 그곳에 장사 지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西京雜記 卷4>

등공마벽[鄧公馬癖]  등공(鄧公)의 호마벽(好馬癖). 등공(鄧公)은 당나라 때 등(鄧)에 봉해진 사람으로 이씨(李氏)이다. 그는 양경(梁卿)이 천자로부터 하사받은 총마(驄馬)를 가지고 있었다. 두보(杜甫)의 총마행(驄馬行)에 “등공의 마벽은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으니, 처음 대완종에서 화총마를 얻었네.[鄧公馬癖人共知, 初得花驄大宛種.]”라고 한 시구가 있다.

등공석곽[滕公石槨]  한 고조(漢高祖)의 신하 등공(滕公) 하후 영(夏侯嬰)이 수레를 타고 동도문(東都門)에 이르렀을 때 수레를 끌던 말이 무릎을 꿇고 슬피 울면서 네 굽으로 땅을 팠다. 이를 본 등공은 사졸을 시켜 그곳을 파게 하니, 3척을 파자 석곽(石槨)이 나왔는데, 그 석곽에 “가성의 울울함이여, 3천 년을 햇볕을 보지 못했도다. 아! 등공이 이 석실(石室)에 살게 될 것이다.”고 새겨져 있었다. 이를 본 등공은 “아! 하늘이 주신 것이다. 내가 죽으면 곧 여기서 편히 지낼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뒤 등공이 죽자 드디어 그 석곽에 장사지냈다 한다. <西京雜記 四>

등공신천[滕公新阡]  등공은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과 같은 고향 사람으로, 유방을 도와 한 나라를 세운 하후영(夏侯嬰)의 별칭이다. 그가 죽어 장사를 지낼 때 공경들이 상여를 따라 도성의 동문 밖에 당도하자 말이 더 이상 가지 않고 땅바닥에 쓰러져 슬피 울었다. 그곳을 파보니 석곽(石槨)이 나왔는데 거기에 “암울했던 가성(佳城)이 삼천 년만에 태양을 보았도다. 아, 등공이여 이 집에서 살지어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어 마침내 거기에다 묻었다 한다. <史記 卷九十三 夏侯嬰傳注>

등공장[滕公葬]  등공은 한 고조(漢高祖)의 명신인 하후영(夏侯嬰)의 봉호이다. 등공이 일찍이 말을 타고 동도문(東都門)에 이르렀을 때 말이 가지 않고 발로 땅을 허비적거리므로, 그곳을 파 본 결과 석곽(石곽) 하나가 나오자, 이를 깨끗이 씻어서 보니 “답답하던 가성(佳城)이 삼천 년 만에 태양을 보았도다. 아, 등공이 이곳에 거처하리라.[佳城鬱鬱 三千年見白日 吁嗟滕公居此室]”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하여 등공의 유명(遺命)에 의해서 등공이 죽은 뒤에 그곳에 장사지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등공탈계포지주[滕公脫季布之誅]  등공(滕公)이 계포(季布)의 죽음을 면하게 해줌. 계포(季布)가 초(楚) 나라 항적(項籍)의 장수가 되어 자주 한 고조(漢高祖)를 괴롭혔는데, 항적이 멸망하자, 고조는 계포를 잡기 위해 천금(千金)을 현상금으로 내걸고서, ‘만약 집에 숨기는 이가 있으면 3족(族)을 죄하리라.’라고 하였다. 등공(滕公)이 계포를 숨겨 두고 있는 주씨(朱氏)의 말대로 한 고조에게 계포의 사면을 말하니, 고조가 계포를 사면하고 불러서 낭중(郞中) 벼슬을 제수하였다. <通鑑節要 卷5>

등공탈계포지주[滕公脫季布之誅]  등공(滕公)이 계포(季布)를 죽음에서 빠져 나오게 해 줌. 항우가 패망한 다음 고조가 계포(季布)를 잡기 위해 천금(千金)의 현상금을 걸었는데, 대협(大俠)인 주가(朱家)의 부탁을 받은 등공이 주선하여 사면을 내리게 하였던 고사이다. <史記 卷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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