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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답불고[騰踏不顧], 등당입실[登堂入室], 등대부자조[燈臺不自照], 등대황[登大皇]


등달[滕達]  생몰년 미상. 자는 계달(季達)이고, 호는 북해(北海)이다. 중국 명(明) 나라의 문인으로, 1572년(선조5) 명나라 사신 한세능(韓世能)과 함께 조선에 와서, 정유일(鄭惟一)·유성룡(柳成龍)·한호(韓濩)·양대박(梁大樸) 등과 교유하였다.

등달[騰達]  위로 올라감. 입신출세를 함.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거나 유명하게 됨.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나 신분에 오르거나 유명하게 됨.

등답불고[騰踏不顧]  한유(韓愈)의 시 부독서성남(符讀書城南)에 “조금 자라 함께 모여 뛰어놀 때에는, 물고기 떼와 다름없이 어울리지만……나이 서른이 되고 뼈대가 굵어지면, 하나는 용 하나는 돼지가 되어, 용마처럼 쏜살같이 달려가 두꺼비 따위는 돌아보지도 않는단다.[少長取嬉戱 不殊同隊魚……三十骨骼成 乃一龍一猪 飛黃騰踏去 不能顧蟾蜍]”라고 한 것에 근거를 둔 표현이다. 좋은 집 자제인 동료들은 관직 진출 이후 이내 내각에 선발되고, 그 후로는 하늘을 오르는 용처럼 출세 가도를 달리느라 두꺼비처럼 한미한 자신과 같은 친구는 안중에도 없다는 뜻이다.

등당입실[登堂入室]  승당입실(升堂入室). 당(堂)은 대청마루이고, 실(室)은 방이니 마루를 거쳐 방에 들어간다는 뜻으로, 순서를 밟아 학문을 닦으면 깊은 경지에 이르게 됨을 비유한 말이다. 당(堂)은 사람을 맞이하는 사랑방, 실(室)은 타인에게 보이지 않는 안방이다. ‘당에 오른다.[登堂]’는 학문이나 기예가 상당한 기술에 달하는 것 ‘실에 들다.[入室]’는 이 기술에 능통하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논어(論語) 선진(先進)에 “유는 대청에는 올랐지만 아직 방 안으로 들어서진 못했다.[由也升堂矣, 未入於室也.]”라고 하였고, 양웅(揚雄)은 법언(法言) 오자(吾子)에서 “시인의 글은 아름다워도 풍자의 정신이 있지만, 문인의 글은 꾸밈이 많으면 풍자의 정신을 잃어버리는데, 공부자의 문하 중에 가의는 대청에 오르고 상여는 방에 들어간 것과 같다.[詩人之賦麗以則, 辭人之賦麗以淫. 如孔氏之門用賦也. 則賈誼升堂, 相如入室矣.]”라고 하였다.

등대[登對]  어전에 나아가 임금을 알현하는 것. 조정(朝廷)에 나아가 임금의 물음에 대답하는 것. 임금의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조정으로 들어가는 것.

등대[等待]  대기하다. 기다리다. 미리 기다리고 있음. 물건을 미리 갖추어 두고 기다림. 웃어른이나 관원의 부름에 응하여 불러다 대기시킴. 지시나 명령을 미리 준비하고 기다림. 등후(等候). 대령(待令).

등대[等對]  동등한 자격으로 마주 대함. 대등(對等)함.

등대[登臺]  대에 오르다.

등대[燈坮]  등대(燈臺)와 같다. 본래 등잔 받침대를 의미한다.

등대부자조[燈臺不自照]  등잔대는 등잔불이 먼 곳을 밝게 비추게 하지만 등잔대 자신(自身)은 비추지 못한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일은 잘 살펴보면서 자기(自己) 자신(自身)의 일에는 어두움을 비유(比喩)해 이르는 말이다.

등대자미[登臺子美]  자미(子美)는 두보(杜甫)의 자이다. 그의 9월 9일 등고(登高) 시 세째 연(聯)에 “만 리에 가을을 슬퍼하니 늘 나그네의 신세, 백 년에 병이 많아 홀로 대에 올랐네.[萬里悲秋常作客, 百年多病獨登臺.]”라고 하였다.

등대황[登大皇]  하늘 끝 대황(大皇)까지 오름. 장자(莊子) 제17편 추수(秋水)에 “또한 저 장자(莊子)는 이제 땅속의 황천(黃泉)에까지 발을 들여놓고 하늘 끝 대황(大皇)에까지 오르려 하고 있네.[且彼方跐黃泉而登大皇.]”라고 한 데서 보인다. 대황(大皇)은 천공(天空), 대공(大空). 대(大)는 경전석문(經典釋文)에 의해 음(音)은 태(泰)로, 대황(大皇)은 음(音)이 태황이다. 마서륜(馬叙倫)은 태황이 천공(天空)을 의미함은 황(皇)이 광(光)과 통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으며, 성현영(成玄英)은 대황(大皇)을 하늘[天也]이라고 주해하였다.

등덕수[滕德粹]  덕수(德粹)는 주희(朱熹)의 문인인 등린(滕璘)의 자이다. 주희가 등린에게 “어제 와운암(臥雲庵)에서 무엇을 하였느냐?”라고 묻자 “돌아갔을 때에 날이 이미 저물어 책을 보지는 않고 정좌하기만 하였습니다.”라고 답하였다. 이에 주희가 장재(張載)의 육유설(六有說)을 들어 “말하는 데에는 법도가 있고, 행동하는 데에는 가르침이 있고, 낮에는 하는 일이 있고, 밤에는 얻음이 있고, 숨 쉴 때에는 기름이 있고, 눈을 깜빡이는 때에는 보존함이 있어야 한다.[言有法 動有敎 晝有爲 宵有得 息有養 瞬有存] 비록 정좌하는 때라도 마음속에 보존하여 주장하는 바가 있어야 하니, 그렇지 않으면 시간을 보낼 뿐이다.[以爲雖靜坐, 亦有所存主, 不然. 兀兀而已.]”라고 하였다. <朱子語類 卷118 訓門人6> <臥雲庵裏存心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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