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도[磴道] 돌이 많은 비탈진 길. 산의 돌계단 길. 돌로 쌓아 올려서 만든 길로 석단(石段)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산으로 오르는 돌길을 말한다. 참고로, 잠참(岑參)의 시 여고적설거등자은사부도(與高適薛据登慈恩寺浮圖)에 “탑의 기세 땅 위에서 불쑥 솟은 듯, 홀로 우뚝 하늘까지 높이 서있네. 탑 위로 오르니 세상 떠나온 것 같고, 돌계단 따라 오르는 길 하늘 가는 듯하네.[塔勢如涌出, 孤高聳天宮. 登臨出世界, 蹬道盤虛空.]”라고 한 데서 보인다.
등도[等到] ~때에는. ~때에 이르러. ~까지 기다리다,
등도[登途] 길을 떠남.
등도[登徒] 등도자(登徒子). 복성(複姓). 이름은 알려지지 않음. 문선(文選)에 송옥(宋玉)의 등도자호색부(登徒子好色賦)가 있는데, 이선(李善)의 주(註)에 등도는 성(姓)이요, 자(子)는 남자(男子)의 칭호라 하였으며, 포표(鮑彪)의 주(註)에는 초(楚)나라의 관직(官職) 이름이라 하였다. 송옥(宋玉)의 등도자호색부(登徒子好色賦)에 의하면 그의 부인이 봉두난발에 언청이요 이가 드문드문 빠지고 피부에 종기까지 난 박색이었는데도 등도자는 그 부인을 사랑하였다고 한다. <古今事文類聚後集 卷21>
등도사[鄧道士] 송(宋)나라 나부(羅浮)의 도사인 등수안(鄧守安)을 가리킨다. 소식(蘇軾)의 <동파지림(東坡志林)> <기조두(記朝斗)>에 “소성(紹聖) 2년 5월 16일에 삼가 진일법주(眞一法酒)을 빚어서, 나부 도사 등수안에게 요청하여 북두진군(北斗眞君)에게 절하고 올리도록 하였다.”라는 말이 나온다.
등도자[登徒子] 등도자(登徒子)와 송옥(宋玉)은 모두 초(楚)나라 대부(大夫)이다. 등도자는 여색을 좋아하여 미추(美醜)를 가리지 않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송옥이 지은 등도자호색부(登徒子好色賦)에 “대부 등도자가 초 양왕(楚襄王)을 모시고 있다가 송옥에 대해 헐뜯기를 ‘송옥의 위인이 체모가 아름답고 은미한 말을 많이 하는데다가 성품이 여색을 좋아하니, 왕께서는 그와 같이 후궁을 출입하지 마소서.’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등도자[登徒子] 여색(女色)을 좋아한 사람. 송옥(宋玉)의 등도자호색부(登徒子好色賦)에서 나온 말로 예쁘고 밉고를 따지지 않고 여자라면 다 좋아하는 색골을 말한다.
등도직[登徒直] 전국 시대 제(齊)나라 맹상군(孟嘗君)이 초(楚)나라에 갔을 적에 초왕(楚王)이 그에게 상아(象牙)로 만든 걸상을 전하게 하였는데, 초나라 등도직(登徒直)이 그 선물을 받지 않게 해 주면 보검을 주겠다고 공손수(公孫戍)에게 청탁하자, 공손수가 맹상군을 설득하여 거절하게 하였으며, 그 뒤에 맹상군이 뇌물과 관련된 사실을 알고서도 공손수를 오히려 격려했다는 기록이 자치통감(資治通鑑) 권2 주기(周紀)2 현왕(顯王) 48년 조에 보인다. 사마공(司馬公)은 사마온공(司馬溫公) 즉 자치통감(資治通鑑)을 편찬한 사마광(司馬光)을 가리키는데, 위의 고사 바로 뒤에 그의 평이 붙어 있다.
등도직[登徒直] 사정전훈의(思政殿訓義) 자치통감(資治通鑑)에 “등도(登徒)는 성명이니 초(楚)나라 대부(大夫)이다. 혹자가 이르길 ‘등도(登徒)는 초(楚)나라 관명이고 직(直)은 당(當)과 같으니 상상(象牀)을 운송하는 일을 담당하는 것이다.’라 하고, 일설(一說)에 ‘등도(登徒)는 성이고 직(直)은 이름이다.’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사정전훈의(思政殿訓義)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서는 앞의 혹자의 설을 따랐으며, 중화서국(中華書局) 자치통감(資治通鑑)과 상해고적(上海古籍)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서는 일설의 설을 따라 등도직(登徒直)을 인명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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