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삼[登三] 덕(德)이 삼왕(三王)을 넘음을 말한다. 삼왕(三王)은 하(夏)나라 우왕(禹王), 은(殷)나라 탕왕(湯王), 주(周)나라 문왕(文王)을 이른다.
등삼매오[登三邁五] 삼 황(三皇)·오제(五帝)보다 월등하다는 말로, 임금의 훌륭함을 일컫는 말이다.
등상[登牀] 橙牀(등상)으로도 표기한다. 발돋움하는 데 쓰거나 걸상으로 쓰기 위해 간단하게 만든 가구이다. 등상(登床).
등상[等像] 쇠·돌·풀·나무·흙 등(等)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形像)의 뜻으로 어리석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림없는 사람.
등상[騰傷] 등상(騰傷)은 호랑이가 날뛰어 이광에게 상처를 입혔다[虎騰傷廣]는 데서 온 말이다. 한(漢) 나라 때의 대장군 이광(李廣)은 특히 활을 잘 쏘고 용맹이 절륜하여 흉노(匈奴)를 누차 대패시켰으므로, 그가 북평태수(北平太守)로 있을 적에 흉노들이 그를 일러 비장군(飛將軍)이라 호칭하며 감히 그 곳을 침범하지 못하였는데, 이광이 한번은 호랑이 사냥을 나갔다가 호랑이가 날뛰어 이광에게 상처를 입혔으나, 이광이 끝내 그 호랑이를 쏘아 잡았었다. <漢書 卷五十四>
등상[登庠] 성균관에 오르다. 성균진사가 되어 성균관 유생이 되다.
등상새[鄧尙璽] 자는 수지(守之), 호는 소백(少伯), 안휘(安徽) 회령(懷寧) 사람. 청나라의 저명한 서법가인 등염(鄧琰: 자는 석여石如)의 아들로, 뒤에 이름을 전밀(傳密)로 고쳤다. 당대에 전서와 예서의 일인자로 평가되었다.
등상와침[藤床瓦枕] 등나무 침상과 기와 베개. 등나무로 만든 침상[藤床]과 흙을 구워서 만든 베개[瓦枕]이다. 여름에 더위를 피하던 침구이다.
등생[鄧生] 동한(東漢)의 명장 등우(鄧禹)를 가리킨다. 남양(南陽) 출신이며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를 따르며 동한을 건국하는 데 공을 세웠다. 광무제 즉위 후에 대사도(大司徒)에 임명되고 고밀후(高密侯)에 봉해졌다.
등생[鄧甥] 등생(鄧甥)은 누이동생의 아들이나 외손자를 가리킨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장공(莊公) 6년 조에 “초 문왕(楚文王)이 신(申)나라를 정벌하기 위하여 등(鄧)나라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등나라의 기후(祁侯)가 말하기를 ‘신나라는 나의 생(甥)이다.’라고 하였다.”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정의(正義)에 “자매의 아들을 생이라 한다.[姊妹之子曰甥]”라고 하였다.
등생구절군[滕生求浙郡] 늙음을 이유로 외임(外任)을 자원함. 송(宋)나라 때 등원발(滕元發)이 강직한 성품 명쾌한 안목으로 신종(神宗)때 많은 치적(治績)을 내외에 남기고는 뒤에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에 반대하여 늙음을 이유로 회남(淮南)을 맡아 나갈 것을 강력히 요구한 고사가 있다. <宋史 卷三百三十二> 참고로, 소식(蘇軾)의 시 차운등원발허중도진소유(次韻滕元發許仲塗秦少游)에 “청구의 택개를 삼키는 걸 앉아서 보니, 도랑의 부평초 올리기가 스스로 부끄럽네.[坐看靑邱呑澤芥, 自慙黃潦薦溪蘋.]”라고 하였다.
등서[滕序] 등왕각서(滕王閣序)를 지칭한 것이다. 당(唐)나라 왕발(王勃)이 지었는데, 천하의 명문(名文)으로 알려졌다. 등왕각서(滕王閣序)에 “저녁노을은 짝 잃은 따오기와 나란히 떠서 날고, 가을 강물은 드넓은 하늘과 한 가지 빛이로다.[落霞與孤鶩齊飛, 秋水共長天一色.]”라는 구절과, “채색 기둥 위에는 아침마다 남포의 구름이 날고, 붉은 주렴을 저녁에 걷어올리면 서산의 비가 내린다.[畫棟朝飛南浦雲, 朱簾暮捲西山雨.]”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등서[登書] 등서는 등현서(登賢書)의 약칭으로, 옛날 향시(鄕試)에 합격한 사람을 일컫던 말이다.
등서구을사[登書丘乙巳] 등서(登書)는 등현서(登賢書)의 약칭으로, 옛날 향시(鄕試)에 합격한 사람을 일컫던 말이고, 구을사(丘乙巳)는 옛날 학동(學童)이 막 입학(入學)했을 때 선생이 “상대인 구을사 화삼천 칠십이(上大人丘乙巳化三千七十二)” 등의 글자를 습자용(習字用)으로 써서 학동을 가르쳤던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아주 간단(簡單)하고도 천근(淺近)한 문자만 겨우 익힌 초학자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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