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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석[燈夕], 등선[騰屳], 등선[登僊], 등설대부[滕薛大夫], 등설쟁장[滕薛爭長]


등석[燈夕]  음력 4월 초파일(初八日)을 이르는 말로, 이날은 석가(釋迦)의 탄신(誕辰)이라 하여 불상(佛像)을 여러 가지 꽃으로 장식하고, 향수(香水)를 뿌리고, 연등(蓮燈)을 달며, 설법(說法)을 하는 등 석가의 탄신을 축하한다.

등석[燈夕]  등석은 관등석(觀燈夕)의 준말로, 정월 대보름 혹은 사월 초파일 밤에 등대를 세우고 온갖 등을 달아 불을 밝히는 것을 말한다.

등석[燈夕]  상원(上元). 즉 정월 대보름날 밤을 말한다. 예부터 이날은 밖에 등을 켜놓아 밤을 밝게 하였으므로 등석이라 일컫게 된 것이다. 속칭 원소절(元宵節)이라고 한다.

등석[鄧析]  춘추 시대 정(鄭) 나라 대부이며, 저서에 등석자(鄧析子)가 있다. <春秋傳 定公>

등석불유전위렵석[登席不由前爲躐席]  자리에 올라가되 앞을 따르지 않는 것은 자리를 밟음이 되기 때문임. <禮記補註>

등석연[燈夕宴]  음력 4월 초파일에 등석(燈夕)이라 하여 등을 달고 등대를 세우고, 밤에 불을 켜서 석가모니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잔치이다. 관등(觀燈) 놀이와 같다.

등선[騰屳]  날아오르다.

등선[登僊]  신선이 되다. 등선(登仙)과 같다. 이름이 널리 알려지거나 벼슬이 높아지는 것을 가리킨다.

등선[登仙]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오름.

등설[滕薛]  등과 설. 춘추 시대에 독립된 두 소국(小國)의 이름이다. 작은 나라로 대국의 틈에 끼어 어렵게 지탱하였다. 노(魯) 나라 은공(隱公) 11년 봄에 등후(滕侯)와 설후(薛侯)가 노 나라에 조현(朝見)을 왔다가 예를 행하는 데 있어 그 선후(先後)를 다투자 은공이 설후를 설득하여 등후가 먼저 예를 행하도록 하였다. <春秋左氏傳 隱公11年>

등설대부[滕薛大夫]  등설(滕薛)은 춘추전국 시대의 등(滕)나라와 설(薛)나라이다. 논어(論語) 헌문(憲問)에 공자가 “맹공작은 조(趙)나라나 위(魏)나라의 가신이 되기에는 넉넉하지만, 등(滕)나라나 설(薛)나라의 대부(大夫)가 되어서는 안 된다.[孟公綽爲趙魏老則優, 不可以爲滕薛大夫.]”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는데, 행정 업무 능력이 부족함을 말한다. 이는 맹공작(孟公綽)의 인물됨이 청렴하고 욕심이 없기는 하지만 나라를 다스리는 재주가 부족한 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등 나라나 설 나라는 약소국이라 그 나라의 대부가 되면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 고생이 막심하였다.

등설쟁장[滕薛爭長]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은공(隱公) 11년에 “등후와 설후가 노나라에 와서는 서로들 자기가 어른이라며 석차(席次)를 다투었는데, 설후는 ‘우리나라가 먼저 봉해졌소.’라고 하였고, 등후는 ‘우리는 주나라 왕실에서 복관(卜官)의 우두머리를 지냈고, 설나라는 주나라 왕실과 다른 성씨이니, 우리가 아랫자리에 있을 수 없소.’라고 하였다.[滕侯薛侯來朝 爭長 薛侯曰 我先封 滕侯曰 我周之卜正也 薛庶姓也 我不可以後之]”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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