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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소[鐙宵], 등소[等訴], 등쇄[等殺], 등순령좌[登荀令坐], 등숭준량[登崇畯良]


등성배[登成拜]  함께 당상(堂上)으로 올라와서 배례(拜禮)를 이룬 것이다.

등세자[滕世子]  전국(戰國) 시대의 등 문공(滕文公)을 가리킨다. 부왕(父王)인 정공(定公)이 죽자 맹자(孟子)에게 상례(喪禮)를 물었는데, 맹자는 삼년상(三年喪)을 하라고 말하였으나, 당시에는 삼년상을 제대로 행하지 않았으므로 종친과 백관들이 모두 반대하였다. 등 문공이 이에 다시 맹자에게 물은 뒤 마침내 삼년상을 행하면서 예를 준수하고 슬피 통곡하니, 이것을 본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였다. <孟子 滕文公上>

등소[鐙宵]  사월 팔일의 관등(觀鐙)을 이른다.

등소[等訴]  등장(等狀). 여러 사람이 연명(聯名)하고 연서(連署)하여 관부(官府)에 올리는 소장(訴狀)이나 진정(陳情)하는 글이다. 소지(所志)의 일종으로 소지는 한 사람의 이름으로 올리지만, 등장은 여러 사람의 이름으로 올리는 점이 다르다.

등쇄[等殺]  등급을 낮춤. 등(等)은 존현지등(尊賢之等)의 등을 말하는 것이니 등급(等級)의 뜻이요, 쇄(殺)는 친친지쇄(親親之殺)의 쇄를 말하는 것이니 감쇄(減殺)의 뜻이다. 상례(喪禮)에 있어서 촌수(寸數)가 멀어질수록 복상(服喪) 기간이 줄어들어 삼년상·기년(朞年)·대공(大功)·소공(小功)으로 되는 것이 다 쇄의 원칙에 따른 것이다. 등차(等差).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환공(桓公) 2년에 “천자(天子)는 나라를 세우고, 제후(諸侯)는 가(家)를 세우고, 경(卿)은 측실(側室)을 두고, 대부는 이종(貳宗)을 두고, 사(士)는 자제(子弟)를 복례(僕隷)로 삼고, 서인(庶人)·공(工)·상(商)은 각각 친척이 있어 모두 친소(親疏)의 등차(等差)가 있다.[天子建國, 諸侯立家, 卿置側室, 大夫有貳宗, 士有隷子弟, 庶人工商, 各有分親, 皆有等衰.]”라고 하였는데, 그 주에 “衰(쇠)는 殺(쇄)다.[衰, 殺也.]”라고 하였다.

등수[鄧綏]  등수(鄧綏)는 진(晉)나라 때 우복야(右僕射)를 지낸 등유(鄧攸)의 조카이다. 영가(永嘉) 말년에 등유가 석륵(石勒)의 난을 피해 도망가다가 도적을 만나 소와 말을 빼앗기고 그의 아들과 죽은 아우의 아들인 등수를 등에 업고 걸어서 도망하였으나 두 아이를 모두 안전하게 지킬 수 없다고 판단되자, 죽은 아우의 후사를 끊을 수 없다고 여겨 마침내 자신의 자식을 버리고 떠났는데, 끝내 그에게 후사가 없었다. 이에 등수(鄧綏)가 등유를 위해 삼년복을 입었다. <晉書 卷90 鄧攸列傳>

등수[滕脩]  진(晉)나라의 장군(將軍)이다.

등숙[登熟]  곡식이 잘 익음. 오곡이 풍성하게 여묾.

등순령좌[登荀令坐]  순령(荀令)은 후한(後漢)의 명사인 순숙(荀淑)으로, 그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은 황헌(黃憲)을 가리킨다. 순숙이 일찍이 황헌을 여관방에서 만나니, 황헌의 나이가 14세였다. 순숙은 그의 인품에 감동되어 읍(揖)하고 말하기를 “그대는 나의 사표이다.[子吾之師表]”라고 하였다.

등숭준량[登崇畯良]  등숭(登崇)은 등용해 존숭(尊崇)함이고, 준량(畯良)은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니, 곧 재능이 뛰어난 사람을 등용해 존경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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