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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영록[登瀛錄], 등영주[登瀛洲], 등영지선[登瀛之選], 등영지소[登瀛之所]


등어[等於]  ~와 같다. ~이나 매한가지다. 맞먹다. ~이나 다름없다. ~에 해당하다.

등연[登筵]  중신(重臣)이나 대신(大臣)이 용무(用務)로 말미암아 국왕(國王)에게 나가 뵙는 것. 관원이 일을 위해 임금에게 나가 뵙는 것을 말한다.

등열[等列]  지위(地位).

등영[燈影]  등불의 그림자. 등잔 빛.

등영[登瀛]  영주산(瀛洲山)에 오름. 영주산(瀛洲山)은 바다 가운데 신선이 살고 있다는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여기에 오르면 영광스럽다 하여 영예로운 지위에 오름을 비유한다. 당 태종(唐太宗)이 개설한 문학관(文學館)에 들어가는 학사들을 당시에 영주(瀛洲) 즉 선계(仙界)에 올라갔다고 부러워했던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 태종(唐太宗)이 문학관(文學館)을 개설하고, 방현령(房玄齡), 두여회(杜如晦) 등 18인의 학사를 뽑은 뒤, 3번(番)으로 나누어 직숙(直宿)케 하면서 5품(品)의 진선(珍膳)을 지급케 했던 고사가 있다. <翰林志>

등영[登瀛]  등영주(登瀛洲)의 준말이다. 선비가 영예를 얻은 것을 신선이 산다는 전설상의 산인 영주에 오르는 것에다 비긴 것이다. 당 태종(唐太宗)이 문학관(文學館)을 열어 방현령(房玄齡), 두여회(杜如晦) 등 열여덟 명을 뽑아 특별히 우대하고 번(番)을 셋으로 나누어 교대로 숙직하며 경전을 토론하게 하였는데, 이를 세상 사람들이 등영주라 하여 전설상 신선이 산다는 산인 영주(瀛洲)에 오르는 것에다 비겨 영광으로 여겼다. <資治通鑑 唐高祖武德4年>

등영[登瀛]  영예스러운 지위에 오름. 신선들이 사는 산인 영주(瀛洲)에 올라갔다는 뜻으로, 임금으로부터 총애를 받는 것을 말한다. 당나라 태종(太宗)이 인재들을 모두 끌어모으고는 문학관(文學館)을 설치하여 두여회(杜如晦), 방현령(房玄齡) 등 18명의 문관을 임명하고 학사로 삼았다. 그런 다음 이들을 돌아가면서 관중에 머물게 하고 한가한 날이면 그들과 더불어서 정사를 논의하고 학문을 토론하였다. 그리고 또 염입본(閻立本)에게 명하여 이들의 화상(畫像)을 그리게 하고 저량(褚亮)에게 찬(贊)을 짓게 해서 이를 관 안에다가 걸어 놓고는 이들을 ‘십팔학사(十八學士)’라고 불렀는데, 당시 사람들이 몹시 흠모하여 등영주(登瀛洲)라고 하였다. <新唐書 卷102 褚亮列傳>

등영구[登瀛邱]  제주시 오라동 한천계곡에 있는 방선문(訪仙門)을 가리키는데, 큰 바위가 문처럼 들려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들엉이·들렁귀라고도 한다. 4월 중순 영산홍이 활짝 필 때는 영주 10경의 하나로 영구춘화(瀛邱春花)로 일컬어진다.

등영록[登瀛錄]  홍문관의 관직에 오른 사람에 관한 인적 사항을 적은 기록. 홍문관의 옥당직(玉堂職)인 교리(校理), 부교리(副校理), 수찬(修撰), 부수찬(副修撰)을 선발하기 위한 1차 권점(圈點) 결과인 본관록(本館錄)과 2차 권점 결과인 도당록(都堂錄)을 모아 정리한 책이다.

등영록[登瀛錄]  홍문록(弘文錄)과 도당록(都堂錄)을 모아 정리한 책으로, 이 명칭은 홍문관의 별칭이 영각(瀛閣)인 데서 온 것이다. 홍문록은 홍문관의 교리, 부교리, 수찬, 부수찬을 임명할 때의 제1차 선거 기록이고, 도당록은 의정부에서 홍문관 교리·수찬 등을 뽑기 위한 제2차 추천 기록이다.

등영주[登瀛洲]  당 태종(唐太宗)이 즉위하기 전 진왕(秦王)으로 있을 때 천책상장군(天策上將軍)에 책봉되어 천책부(天策府)에 문학관(文學館)을 열어서 방현령(房玄齡), 두여회(杜如晦) 등 18명을 뽑아 십팔학사(十八學士)라 부르며 특별히 우대하였다. 그리고 이들로 하여금 번(番)을 셋으로 나누어 교대로 숙직하며 경전을 토론하게 하였는데, 이를 세상 사람들이 등영주(登瀛州)라 하여, 전설상 신선이 산다는 산인 영주(瀛洲)에 오르는 것에 비겨 영광으로 여겼다. <資治通鑑 唐高祖 武德4年>

등영주[登瀛洲]  선경(仙境)인 영주산(瀛洲山)에 올랐다는 뜻으로, 지극히 명예로운 지위에 오름을 이른다. 당 태종(唐太宗)이 즉위하기 전 천책상장군(天策上將軍)으로 있을 때에 인재들을 망라하여 문학관(文學館)을 설치하고 두여회(杜如晦)·방현령(房玄齡) 등 18명의 문관(文官)을 학사(學士)로 임명하여 돌아가면서 학관(學館)에 숙직하게 하고는 이들에게 정사(政事)를 자문하기도 하고 함께 전적(典籍)을 토론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염립본(閻立本)에게 명하여 이들의 화상(畫像)을 그리게 하고 저량(褚亮)에게 찬(贊)을 짓게 해서 이를 학관(學館) 안에 걸고는 이들을 18학사(十八學士)라고 불렀는데, 당시 사람들이 몹시 흠모하여 ‘영주에 올랐다.[登瀛洲]’라고 일컬은 데서 유래한 말이다. 조선조(朝鮮朝)에는 홍문관(弘文館)의 관직에 뽑힘을 지칭하기도 하였다.

등영주[登瀛洲]  영주(瀛州)는 바닷속에 있다는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신선이 사는 선계(仙界)에 오른다는 것이니, 지극히 명예로운 지위에 오르는 것을 말한다. 당 태종(唐太宗)이 천책상장군(天策上將軍)으로 있을 때 천책부(天策府)에 문학관(文學館)을 열어 놓고 두여회(杜如晦), 방현령(房玄齡), 우지령(于志寧), 소세장(蘇世長), 설수(薛收), 저량(褚亮), 요사렴(姚思廉), 육덕명(陸德明), 공영달(孔穎達), 이현도(李玄道), 이수소(李守素), 우세남(虞世南), 채윤공(蔡允恭), 안상시(顔相時), 허경종(許敬宗), 설원경(薛元敬), 개문달(蓋文達), 소욱(蘇勗) 등 18인을 학사(學士)로 삼고서 사람을 시켜 이들의 초상을 그리고 찬(贊)을 짓고 명자(名字)를 쓰게 하여 십팔학사(十八學士)라 부르고 서부(書符)에 두어 어진이를 예우(禮遇)하는 것을 밝혔는데, 천하 사람들이 이들을 부러워하여 “영주에 올랐다.[登瀛洲]”라고 하였다 한다. <舊唐書 卷72 褚亮列傳>

등영지선[登瀛之選]  당 태종(唐太宗)이 제위(帝位)에 오르기 전 천책상장군(天策上將軍)일 때 문학관(文學館)을 짓고 방현령(房玄齡), 두여회(杜如晦)를 비롯한 18학사(學士)를 불러들인 뒤 극진히 대접했는데, 사람들이 이를 ‘영주(瀛洲)에 올랐다.[登瀛洲]’라고 표현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영주는 바다 속에 있는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이다.

등영지소[登瀛之所]  등영은 등영주(登瀛洲)의 준말로, 당 태종(唐太宗)이 개설한 문학관(文學館)에 들어가는 학사들을 당시에 영주(瀛洲) 즉 선계(仙界)에 올라갔다고 부러워했던 데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 태종(唐太宗)이 문학관(文學館)을 개설하고, 방현령(房玄齡), 두여회(杜如晦) 등 18인의 학사를 뽑은 뒤, 3번(番)으로 나누어 직숙(直宿)케 하면서 5품(品)의 진선(珍膳)을 지급케 했던 고사가 있다. <翰林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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