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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왕각서[滕王閣序], 등왕각장천[滕王閣長天], 등왕도[滕王圖], 등왕협접도[滕王蛺蝶圖]


등왕각서[滕王閣序]  당(唐)대의 왕발(王勃)이 지은 사륙변려문(四六騈儷文)이다. 원 제목은 추일등홍부등왕각전별서(秋日登洪符滕王閣錢別序), 등왕각시서(滕王閣詩序)라고도 한다. 홍주 목사(洪州牧使) 염백서(閻伯嶼)가 등왕각(滕王閣)에서 빈객들을 초청하여 연회를 베풀 때에 소년 시절의 왕발이 우연히 연회에 참석하여 지은 것으로, 고금에 회자되는 명작으로 꼽힌다. 초당사걸(初唐四傑) 중의 한 명인 왕발(王勃)은 명문가 출신으로 재능이 뛰어나 성년이 되기도 전에 벼슬을 하였다. 하지만 곧 남들의 시기를 사게 되어 일찍 관직에서 물러났으며, 그로부터 사방으로 떠돌아다니며 도처를 유랑하기 시작하였다. 당 고종(高宗) 때인 676년 중양절(9월 9일)에 홍주도독 염공(閻公)이 등왕각에서 주연을 열고 손님들을 청했는데 마침 왕발이 아버지를 뵈러 가는 길에 난창을 지나다가 이 연회에 참석하여 즉석에서 이 시와 서를 지었다. 전반부는 홍주 일대의 “번화하고 풍요로우며 인물은 뛰어나고 지세는 신령스러운” 형세와 등왕각의 수려하고 웅장한 아름다움 및 연회의 성황을 그렸다. 후반부에서는 타향에서 객으로 지내며 품은 뜻을 펼쳐 볼 수 없음을 탄식한다. 경치 묘사와 서정적 묘사를 결합시켜 단숨에 지어내어 흠잡을 데 없이 매끄럽다. 형식은 사륙변려체(四六騈儷體)이며, 대구가 뛰어나고 음운도 잘 맞는다. 사조가 화려하고 우아하며, 전고(典故)를 많이 인용하였다. 풍격은 소탈하면서도 원숙하고 힘이 있으며 “저녁노을 외로운 따오기와 가지런히 날고, 가을 물은 긴 하늘과 한 빛이다.[落霞與孤鶩齊飛, 秋水共長天一色.]” 등과 같이 사람들 입에 회자되는 명구도 있어 오래도록 널리 전해지는 명작이 되었다. <類說 卷34 摭遺 滕王閣記> <新唐書 卷201 王勃列傳> <古文眞寶 後集>

등왕각서[滕王閣序]  등왕각(滕王閣)은 등왕(滕王)에 봉해진 당고조(唐高祖)의 아들 이원영(李元嬰)이 홍주(洪州)의 도독(都督)으로 있을 때에 세운 누각이다. 당나라 문인 왕발(王㪍)이 교지령(交趾令)으로 있는 아버지 복치(福畤)를 보러 가는 길에, 꿈에 강신(江神)이 와서 말하기를 “내일 9월 9일에 남창(南昌)의 등왕각(滕王閣)을 중수(重修)한 낙성식(落成式)이 있으니 참석하여 글을 지어 이름을 내라.”라고 하였다. 왕발이 대답하기를 “여기서 남창까지 7백 리인데 하룻밤 사이에 당도할 수가 있습니까.”라고 하니, 강신(江神)은 “배에 오르기만 하면 내가 바람을 빌려 주리라.”라고 하므로, 왕발은 과연 하룻밤 사이에 남창에 도착하니 홍주 자사(洪州刺史)가 등왕각에 낙성식을 크게 열고 여러 손들에게 필묵(筆墨)과 종이를 돌려 글을 짓게 하였다. 사실은 자사(刺史)가 자기의 사위를 시켜 미리 글을 지어 두고 여러 손들이 사양하기를 기다려 사위의 글을 자랑하려 하였던 것이다. 다른 손은 모두 사양하는데 왕발이 사양하지 않고 붓을 드니 자사는 불쾌하여 사람을 시켜 왕발의 글을 쓰는 대로 엿보고 와서 보고하도록 하였다. 중간에 가서 “떨어진 놀은 외로운 따오기와 가지런히 날고, 가을 물은 긴 하늘과 한 빛이다.[落霞與孤鶩齊飛 秋水共長天一色]”라는 구절을 쓰니, 자사가 듣고 “참으로 기이한 재주로다.”라고 하였다. 왕발은 끝에 다시 시(詩)를 쓰기를 “그림 그린 기둥은 아침에 남포의 구름에 날고 주렴은 저녁에 서산 비에 걷는다.[畵棟朝飛南浦雲 珠簾暮捲西山雨]”라 하였다.

등왕각장천[滕王閣長天]  왕발(王勃)의 등왕각서(滕王閣序)에 “저녁노을 외로운 따오기와 가지런히 날고, 가을 물은 긴 하늘과 한 빛이다.[落霞與孤鶩齊飛, 秋水共長天一色.]”란 말이 있다.

등왕도[滕王圖]  당대(唐代)의 명화(名畫) 호접도(蝴蝶圖)를 말함인데, 등왕(滕王) 원영(元嬰)의 그림이라 한다. 등왕(滕王)은 당나라 이원영(李元嬰)의 봉호인데, 당 고조(唐高祖) 이연(李淵)의 22번째 아들이다. 당 태종(唐太宗) 이세민(李世民)의 아우로, 서화(書畫)·음률(音律)에 뛰어났고, 특히 나비를 잘 그렸는데 등왕협접도(滕王蛺蝶圖)가 전한다.

등왕협접도[滕王蛺蝶圖]  등왕(滕王)은 당(唐)나라 이원영(李元嬰)의 봉호이며, 등왕의 나비는 그가 그린 등왕협접도(滕王蛺蝶圖)를 가리킨다. 선화화보(宣和畵譜)에 “등왕 이원영은 당나라의 종실(宗室)이다. 단청(그림)을 잘하였고 벌과 나비를 그리기 좋아하였다. 주경원(朱景元)이 일찍이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 칭찬하기를 ‘공교롭게 잘 그리는 외에 정묘한 이치를 남김없이 다하였으니, 그 품격을 감히 평가하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당나라 왕건(王建)이 지은 궁사(宮詞)에 ‘등왕협접도를 전하여 얻었다.[傳得滕王蛺蝶圖]’거 하였으니, 바로 이것을 이른 것이다.”라고 하였다. 협접도(蛺蝶圖)는 나비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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