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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우구순[鄧禹寇恂], 등우봉찬[鄧禹封酇], 등우승제[鄧禹承制], 등우조빈[鄧禹曹彬]


등우[鄧禹]  등우(鄧禹)는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를 보필하여 많은 전공(戰功)을 세우고 한(漢)나라를 중흥(中興)한 논공제일(論功第一)의 개국공신이다. 24세 때 광무제(光武帝)가 즉위하자 삼공(三公)의 하나인 대사도(大司徒)에 임명되고 고밀후(高密侯)에 봉해졌다. 그러나 건무(建武) 2년 장안(長安)을 수비하여 적미병(赤眉兵)과 두 차례 싸웠지만 모두 패전하고 군량이 다하여 곤경에 처하자, 광무제는 등우를 소환하고 풍이(馮異)를 대신 보내 장안(長安)에 있는 적미병을 토벌하게 하였다. 의양(宜陽)으로 돌아온 뒤에 대사도(大司徒)의 관직을 내놓았다.

등우[鄧禹]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와 가깝게 지내어 유수를 따라서 동마군(銅馬軍)을 진압하였다. 유수에게 하북(河北)을 근거지로 하여 민심을 수습하고 기회를 기다려 천하를 취하라고 조언해 신임을 얻었으며, 또 전장군(前將軍)으로 유현(劉玄)의 장군 왕광(王匡)과 성단(成丹) 등을 격파하였다. 광무제가 즉위한 뒤에는 대사도(大司徒)에 오르고 찬후(酇侯)에 봉해졌으며, 여러 지역을 다니며 항복을 유도해 부대가 백방(百方)이라고 불렸다. 명제(明帝) 때 태부(太傅)에 올랐다. 명제(明帝)가 전대의 공신(功臣)을 추념하여 등우 등 28인의 장수의 초상을 운대(雲臺)에 그리게 하였는데, 등우가 운대 28장(雲臺二十八將)의 제1위(第一位)였다. 등우의 아들들도 모두 봉작되었고, 손녀(孫女)는 화제(和帝)의 후비인 화희등황후(和熹鄧皇后)가 되었다.

등우구순[鄧禹寇恂]  등우(鄧禹)는 후한(後漢)의 개국공신(開國功臣)으로 자는 중화(仲華)이며 신야(新野) 사람이다. 광무제(光武帝)를 도와 큰 공을 세워 24세에 대사도(大司徒)에 임명되고 고밀후(高密侯)에 봉해졌으며 사후(死後)에 원후(元侯)라는 시호(諡號)가 내려졌다. 구순(寇恂) 또한 광무제(光武帝)의 명장(名將)으로 자가 자익(子翼)이며 상곡(上谷) 사람이다. 편장군(偏將軍)이 되어 큰 공을 세우고 옹노후(雍奴侯)에 봉해졌으며, 여남태수(汝南太守), 집금오(執金吾) 등을 역임하고 사후(死後)에 위후(威侯)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두 사람 모두 후한서(後漢書)에 전(傳)이 있다.

등우봉찬[鄧禹封酇]  등우(鄧禹)를 찬후(酇封)에 봉함. 자치통감(資治通鑑) 광무제(光武帝) 조에, 건무(建武) 원년(25) 7월 5일 신미일에 광무제가 등우를 찬후(酇侯)에 봉하고 식읍으로 만 호(戶)를 주었다는 내용이 보이는데, 호삼성(胡三省)의 주에 이르기를 “등우의 공이 소하에 비견되었기 때문에 찬(酇)에 봉한 것이다. ‘酇’은 음이 ‘찬’이다.[余謂蓋以禹功比蕭何 故封之酇 酇音贊]”라고 하였다. <資治通鑑 卷40 漢紀32 光武帝 上之上 建武 元年>

등우소지[鄧禹所志]  등우(鄧禹)는 동한(東漢) 남양(南陽) 신야(新野) 사람으로 자(字)는 중화(仲華)이다. 동한(東漢)의 개국명장(開國名將)인 운대이십팔장(雲臺二十八將)의 우두머리였다. 그는 13세에 장안(長安)에 유학(遊學)할 때부터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를 만나 서로 절친하게 지냈다. 그후 광무제가 거병(擧兵)하여 하북(河北)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자 광무제가 매우 기뻐하여 말하기를 “나는 마음대로 관직을 줄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대가 멀리서 나를 찾아온 것은 벼슬을 하고 싶어서인가?”라고 하니, 등우가 대답하기를 “벼슬은 원치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광무제가 묻기를 “그렇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고 하니, 등우가 대답하기를 “단지 명공(明公)의 위덕(威德)이 사해(四海)에 베풀어지기를 바라고, 제가 작은 힘이나마 다하여 공명(功名)을 죽백(竹帛)에 남기고 싶을 따름입니다.”라고 하였다. <後漢書 卷16 鄧禹列傳> 등우지범(鄧禹之範).

등우승제[鄧禹承制]  승제(承制)는 대신(大臣)이 지방에서 특별히 황제 이름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등우(鄧禹)는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의 개국공신(開國功臣)인데, 광무제의 이름으로 농서(隴西)의 군벌 외효(隗囂)를 서주대장군(西州大將軍)으로 임명하였다.

등우조빈[鄧禹曹彬]  등우(鄧禹)는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의 장수이고, 조빈(曹彬)은 북송(北宋)의 태조(太祖) 조광윤(趙匡胤)의 장수이다. 이들은 장수가 되어 여러 번 출전하였으나 살상을 자행하지 않았는데, 모두 복록을 누리고 자손들도 번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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