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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음취몽[藤陰醉夢], 등이[謄移], 등이[等夷], 등인[等因], 등인[等人]


등윤보[鄧潤甫]  북송(北宋)의 대신으로 자는 온백(溫伯)이고 건창(建昌: 현재는 강서江西 여천黎川에 속함) 사람이다. 고로왕(高魯王)의 이름을 기휘(忌諱)하여 자를 이름으로 하고 성구(聖求)를 별자로 삼았다가 나중에 원래의 이름과 자를 회복하였다. 어려서 이구(李覯)를 사사하였다. 황우(皇祐) 원년에 진사가 된 뒤에 상요위(上饒尉), 무창령(武昌令)을 지냈고, 희녕(熙寧) 연간에 왕안석에 의해 편수중서조례(編修中書條例)·검정중서호방사(檢正中書戶房事)가 되었다. 그의 문장을 읽고 찬탄한 신종(神宗)의 총애 속에 집현교리·직사인원, 지간원·지제고를 비롯한 여러 직을 거친 뒤에 한림학사 겸 황자각전기가 되었다. 철종 때 하룻밤에 초제문고(草制文告) 22건을 올렸고 신종실록(神宗實錄)을 편수하였다. 이부와 예부, 병부 등의 상서(尙書)를 지낸 뒤에 상서좌승(尙書左丞)이 되었다. 사후 산관(散官)의 최고 단계인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가 추증되었다. 시호는 안혜(安惠)이다.

등음취몽[藤陰醉夢]  송(宋)나라 진관(秦觀)은 자가 소유(少游)이다. 그가 처주(處州)에 좌천되어 있을 때 꿈속에서 지은 장단구(長短句)에 “술 취해 등나무 그늘 아래 누웠노라니, 동서남북 방위를 도무지 모를레라.[醉臥古藤陰下, 了不知南北.]”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그 후 등주(藤州)에 머물 때 광화정(光華亭)에서 취해 자다가 일어나 옥사발로 샘물을 떠서 마시고는 웃으면서 죽었다 한다. 즉 꿈속의 등나무가 등주를 뜻했던 것이다. <冷齋夜話> 덧없는 인생살이가 미리 운명으로 정해져 있음을 뜻한다.

등이[謄移]  감영(監營)·병영(兵營)·수영(水營)의 장관이 자신이 관할하는 각 지역에서 올린 첩정(牒呈)의 내용을 베껴 해당 조(曹)에 이관(移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세 및 대동미에 관련한 내용 등은 호조(戶曹)로 올려 졌고, 국방·군사와 관련된 내용 등은 병조(兵曹)로 올려졌다.

등이[等夷]  같은 무리.

등이응지문[登李膺之門]  이응(李膺)의 접대를 받은 자를 용문(龍門)에 올랐다고 하였다. 후한서(後漢書) 권67 이응열전(李膺列傳)에 “이응이 자신의 기풍을 홀로 간직하고 명성으로 자신을 높였으므로 그의 접대를 받은 사람을 용문(龍門)에 올랐다[登龍門]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등인[等因]  사유. 서면으로 알려 준 사실에 기인하였다는 뜻으로 회답하는 공문(公文)에 쓰이는 문투(文套). 서면(書面)으로 알려 준 사실에 바탕하였다는 뜻으로, 회답하는 공문(公文)의 첫머리에 쓰는 말이다. 인용의 종결을 나타내는 표지 어구이다. 이하 같은 단어에 대해서는 따로 표기하지 않고 인용 부호를 닫는 것으로 반영하였다.

등인[等人]  동년배. 사람을 기다리다. 참고로, 원(元)나라 왕유학(王幼學)의 자치통감강목집람(資治通鑑綱目集覽)에는 “중인(衆人)이라고 말한 것과 같다.[猶言衆人]”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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