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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자[鐙子], 등자[鄧子], 등자금[鐙子金], 등장[等狀], 등장오십리[滕將五十里]


등자[鐙子]  말등자나 사갈’또는 발걸이로도 부른다. 말을 탔을 때 두 발로 디딜 수 있게 만든 물건으로, 말안장에 달아 양쪽 옆구리로 늘어뜨려서 말을 탈 때 두 발로 딛는 제구(製具)를 이른다.

등자[登字]  배[船]의 이름이다.

등자[鄧子]  춘추 시대 말기 정(鄭)나라 사상가인 등석(鄧析)으로 자산(子産)과 동시대 인물이다.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서는 윤문자(尹文子)와 공손룡(公孫龍)과 함께 명가(名家)의 학자로 올려놓았지만, 법가(法家)의 학설을 주로 다룬 것으로 보인다. 열자(列子)에는 그가 정나라 사람들을 선동해서 송사를 일으키는 것을 일삼아 국정을 문란하게 했고, 또한 자주 자산(子産)을 비난해서 처벌을 받았다고 했으며, 회남자(淮南子)에는 능변으로 법을 어지럽혔다는 등 행적을 부정적으로 기록하였다. 저서에 등석자(鄧析子)가 있는데 주로 법가의 학설을 담았다.

등자경[滕子京]  이름은 종량(宗諒), 하남(河南) 사람이고 범중엄(范仲淹: 범희문范希文)과 함께 진사가 되었다. 범중엄이 재상 여이간(呂夷簡)에게 미움을 당하여 요주지주(饒州知州)로 쫓겨났을 때 좌천을 자청하여 파릉군 태수로 나갔는데, 파릉군에 악양현(岳陽縣)이 있었다. 1044년에 등자경(滕子京)이 파릉군(巴陵郡)으로 좌천되어, 이듬해에 악양루(岳陽樓記)를 중수하고 범희문(范希文)에게 기문을 짓게 하자, 악양루기(岳陽樓記)를 지었다.

등자금[鐙子金]  등자쇠. ‘ㅁ’자 형의 고리가 달린 들쇠 종류의 철물로 분합문, 창문을 을 올려 거는 연결고리 등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혹은 걸쇠라고도 한다.

등자룡[鄧子龍]  자는 무교(武橋), 강서(江西) 풍성(豐城) 사람으로 명(明)나라 무장이다. 묘족(苗族)의 소란을 평정하여 부총병(副總兵)이 되었고,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70이 넘은 나이로 진린(陳璘)의 부장(副將)으로 참전하여 노량해전(露梁海戰)에서 혼전 중에 전사하였다.

등장[等狀]  등소(等訴). 여러 사람이 연명(聯名)하고 연서(連署)하여 관부(官府)에 올리는 소장(訴狀)이나 청원서·진정서. 소지(所志)의 일종으로 소지는 한 사람의 이름으로 올리지만, 등장은 여러 사람의 이름으로 올리는 점이 다르다.

등장[等狀]  연명(連名)으로 관청에 어떤 일을 하소연하기 위해 내는 서면(書面). 여러 사람들이 이름을 연달아 쓰고 도장을 찍어서 억울한 사정을 관청에 호소하던 진정서. 조선조 때의 진정서(陳情書)의 일종으로, 억울한 일이 있을 때 여러 사람이 이름을 잇대어 써서 관가에 어떠한 요구를 하소연하던 일. 등장이라고 하게 된 연유는 소장의 머리에 “누구누구 등은 아룁니다.”라고 한 데서 나온 듯하다.

등장[登場]  곡식이 잘 익은 밭. 곡물을 수확한 뒤에 마당에 운반함. 수확이 완전히 끝났음을 가리킨다.

등장[藤杖]  등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가리킨다.

등장민[滕章敏]  장민(章敏)은 시호, 자는 달도(達道). 송 신종(宋神宗)의 신하 등원발(滕元發)을 이른다.

등장오십리[滕將五十里]  등(滕)나라는 전국 시대의 소국(小國)으로, 맹자(孟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세자이던 등나라 문공을 만난 맹자가 그에게 “지금 등나라를 국토의 긴 곳을 잘라 짧은 곳에 보태면 거의 50리쯤 되는 작은 나라입니다만 그래도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今滕 絶長補短 將五十里也 猶可以爲善國]”라고 하였다. 50리에 차지 못하는 나라는 천자의 조정에 회합하지 못하고 제후에게 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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