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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탈포주[滕脫布誅], 등태산이소천하[登太山而小天下], 등태소천[登泰小天], 등태후[鄧太后]


등탈포주[滕脫布誅]  등(滕公)이 계포(季布)를 죽음에서 벗어나게 해줌. 계포(季布)는 초(楚)나라 항우(項羽)의 부장(部將)으로 여러 번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을 곤경에 몰아넣었다. 항우(項羽)가 패망한 다음 고조가 계포(季布)를 잡기 위해 천금(千金)의 현상금을 걸고 그를 숨겨 주는 자는 삼족을 멸할 것이라는 명을 내렸다. 계포(季布)는 복양(濮陽)의 주씨(周氏) 집에 은거(隱居)하였다. 복양(濮陽)의 주씨(周氏)는 발각될 것을 염려한 나머지 계포의 머리를 깎고 목에 사슬을 채우고 갈포 옷을 입혀 노예처럼 보이게 한 다음, 광류거(廣柳車)에 실어 협객(俠客)인 노(魯)의 주가(朱家)에게 값을 받고 파는 형식으로 넘겨주었다. 주가(朱家)는 집안 사람들에게 새로 산 종이 계포(季布)임을 숨기고 낙양(洛陽)으로 가서 유방(劉邦)의 친구인 등공(滕公) 하후영(夏侯嬰)을 만나 “계포의 현명함으로 볼 때 한(漢)나라에서 그를 급하게 잡으려 하면, 북쪽의 호(胡)로 달아나지 않으면 남쪽의 월(越)나라로 달아날 것입니다. 대저 장사(壯士)를 꺼려하여 적국에게 주는 것은 오자서(伍子胥)가 초 평왕(楚平王)의 묘에 매질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季布之賢而漢求之急如此, 此不北走胡即南走越耳. 夫忌壯士以資敵國, 此伍子胥所以鞭荊平王之墓也.]”라고 하며, 계포(季布)를 사면(赦免)하여 등용(登庸)하도록 고조(高祖)에게 말해달라고 설득하였다. 여음후(汝陰侯)인 등공(滕公) 하후영(夏侯嬰)은 주가(朱家)가 계포(季布)를 자기 집에 숨겨준 뜻과 내심 계포(季布)가 대협(大俠)으로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이를 받아들였다. 얼마 후(後) 주가(朱家)의 말을 전해들은 한(漢)나라 고조(高祖) 유방(劉邦)은 이윽고 계포(季布)를 사면(赦免)하였다. 이후(以後) 계포(季布)는 황제(皇帝) 유방(劉邦)을 알현(謁見)하여 한(漢)나라를 섬겨 낭중(郎中)의 벼슬을 받았으며 다음 혜제(惠帝) 때에는 중랑장(中郞將)에 올랐습니다. <史記 卷100 季布欒布列傳>

등태산이소천하[登太山而小天下]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공자는 노나라 동산(東山)에 올라 노나라를 작게 여겼고, 태산(太山)에 올라 천하를 작게 여겼다. 그러므로 바다를 본 사람에게는 큰물로 인정받기 어렵고, 성인의 문하에서 유학한 사람에게는 훌륭한 말로 인정받기 어렵다.[孔子登東山而小魯 登太山而小天下 故觀於海者 難爲水 遊於聖人之門者 難爲言]”라는 내용이 보인다.

등태소천[登泰小天]  등태산이소천하(登泰山而小天下). 태산에 오르면 천하가 조그맣게 보인다. 높은 지위에 오르면 세상 사람들을 우습게 본다는 뜻이다. 식견이 많을수록 큰 문제를 쉽게 해결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등태후[鄧太后]  후한(後漢) 제4대 황제인 화제(和帝)의 비인 화희 등황후(和熹鄧皇后)이다. 이름은 유(紐), 시호는 희(熹)이다. 우(禹)의 손녀, 훈(訓)의 딸. 귀인(貴人)으로서 공순하고 근신하여 행동에 법도가 있었으며, 용모가 아름다웠다. 음후(陰后)가 폐위(廢位)된 뒤에 황후(皇后)로 책봉(册封)되었다. 화제가 죽은 뒤에 생후 100일 된 상제(殤帝)를 즉위시키고 자신이 대리청정(代理聽政)하였다. 상제(殤帝)·안제(安帝)를 세우고 태후(太后)로서 조정에 임어한 지 10여 년 동안 덕정(德政)이 많았다. <後漢書 卷10上 皇后紀 和熹鄧皇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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