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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토수[藤吐手], 등통[鄧通], 등통연옹[鄧通吮癰], 등통지산[鄧通之山]


등토수[藤吐手] 등토시. 등(藤)을 가늘게 오려서 엮어 만든 토시. 여름에 땀이 옷에 배지 않도록 낀다.

등통[鄧通]  등통(鄧通)은 한 문제(漢文帝) 때 태중 대부(太中大夫)를 지냈으며 문제의 총애를 받았다. 승상 신도가(申屠嘉)가 조정에 들어갔을 적에 등통이 문제의 곁에서 오만한 짓을 하자, 물러 나와서는 즉시 승상부(丞相府)로 불러 목을 베려고 하였다. 그래서 문제가 지절(持節)을 보내 등통을 부르고는 신도가에게 사죄하게 하였다. <漢書 卷42 申屠嘉傳>

등통[鄧通]  등통(鄧通)은 한 문제(漢文帝) 때 행신(幸臣)이다. 승상 신도가(申屠嘉)가 조정에 갔을 때, 등통이 임금 곁에서 무례한 행동을 하자, 등통을 승상부(丞相府)로 부르면서 오지 않으면 참수(斬首)하겠다고 하였다. 등통이 겁이 나서 문제에게 아뢰었으나 문제가 가라고 명하였고, 등통은 이에 승상부에 나아가 갓을 벗고 맨발로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였다. <史記 卷96 張丞相列傳>

등통[鄧通]  등통(鄧通)은 한 문제(漢文帝) 때의 행신(幸臣)이다. 문제가 꿈을 꾸었는데, 하늘에 오르고자 갖은 애를 썼으나 되지 않다가 어떤 누런 모자를 쓰고 혁대 뒤가 해진 사내가 밀어 주어서 하늘에 오를 수 있었다. 꿈을 깬 문제가 그 사내를 찾으니 바로 등통이었다. 등통은 아무 재능이 없다가 갑자기 발탁되어 부귀를 이루었다. <大學衍義補>

등통곤박지사[鄧通困迫至死]  한서(漢書) 영행전(佞幸傳) 등통(鄧通)에 “등통(鄧通)은 문제(文帝)를 섬김에 다른 재능은 없고 오직 근신(謹身)하고 아첨하여 임금에게 총애를 받았을 뿐이다. 문제(文帝)가 관상을 잘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등통(鄧通)의 관상을 보게 하였더니 ‘가난해서 굶어죽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문제(文帝)는 ‘등통(鄧通)을 부자로 만드는 것은 나에게 달려 있는데, 왜 가난할 거라고 말하는가?’라고 하고는 이에 등통(鄧通)에게 촉(蜀) 엄도(嚴道)의 동산(銅山)을 하사하여 돈을 주조하게 하니, 등통(鄧通)의 돈이 천하에 깔릴 정도로 부자가 되었다. 문제(文帝)가 종기를 앓을 때에 등통(鄧通)은 입으로 그 고름을 빨아냈다. 하루는 문제(文帝)가 조용히 ‘천하에서 누가 가장 나를 사랑하는 사람인가?’라고 물으니, 등통(鄧通)은 ‘태자(太子)만 한 이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태자(太子)가 침전(寢殿)에 들어가서 문병하자, 문제(文帝)가 태자(太子)로 하여금 종기를 빨게 하니, 태자(太子)가 종기를 빨면서 난처한 안색이었다. 이윽고 등통(鄧通)이 항상 임금을 위하여 종기를 빤다는 말을 듣고는 태자(太子)는 부끄러워하였고, 이로 말미암아 마음속으로 등통(鄧通)을 원망하였다. 문제(文帝)가 승하하고 경제(景帝)가 즉위하자, 등통(鄧通)은 재산을 전부 몰수당하고 최후에는 동전 한 푼 없이 남의 집에 붙어살다가 죽었다.”고 한다.

등통연옹[鄧通吮癰]  등통(鄧通)은 한문제의 총신(寵臣). 그가 일찍이 문제의 종기를 입으로 빨았는데 문제가 좋지 않아 하면서 묻기를 “세상에서 누가 나를 제일 사랑하겠는가?” 하자 등통은 태자라고 말했다. 그래서 문제는 태자를 불러 종기를 빨라고 했더니, 태자는 어렵게 여겼다. 문제가 죽고 태자가 즉위하자, 이 일로 미움을 받아 굶어 죽게 되었다. <史記 卷125 佞幸列傳>

등통지산[鄧通之山]  등통(鄧通)의 산(山). 구리 광산을 뜻함. 등통은 한 문제(漢文帝)에게 발탁되어 문제로부터 농신(弄臣)이라고 총애를 받고 벼슬이 상대부(上大夫)에 이르렀는데, 당시 어느 관상가가 그의 상을 보고는 굶어 죽을 상이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문제는 일부러 그를 부자로 만들어주기 위하여 동산(銅山)을 하사하고, 그로 하여금 마음대로 구리를 캐어 동전을 만들어 쓰게 하였다. <한서(漢書) 권93 등통전(鄧通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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