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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견[馬趼], 마경[馬經], 마경[魔鏡], 마경구[磨鏡具], 마경능운[馬卿凌雲]


마견[馬趼]  노래기를 가리킨다. 마육(馬陸), 마현(馬蚿)이라고도 한다. 모양은 원통형으로 길며 발이 많다.

마경[馬經]  말을 고르고 기르는 법을 적은 책을 가리킨다. 진(秦)나라의 말에 대해 조예가 깊었던 백락(伯樂)이 쓴 책이다. 상마경(上馬經)이라고도 한다.

마경[魔鏡]  조마경(照魔鏡). 요마(妖魔)를 환히 비추어 낸다는 거울을 이른다. 옛날 산에 들어가는 도사(道士)는 모두 이 거울을 등 뒤에 달고 다녔는데, 그렇게 하면 모든 요마들이 감히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고 한다. <抱朴子 登涉> 또, 진 시황(秦始皇) 때에 큰 거울이 하나 있었는데, 그 거울은 물건의 본색을 밝혀 주는 것이므로 아무리 변형하여도 본색 그대로 나타난다고 하여 조마경(照魔鏡)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마경[魔鏡]  투광경(透光鏡). 거울을 강한 빛에서 비쳐볼 때 얼굴 이외에 특수한 무늬의 상(像)이 희미하게 보이는 동경(銅鏡). 참고로, 조선 헌종 때의 학자 이규경(李圭景)은 “세상에서는 햇빛에서 거울을 보면 그 뒷면에 새긴 용무늬가 보이고, 실내에서 보면 그 무늬가 숨어 보이지 않는 동경이 있다고들 한다. 그 동경은 오래 두면 경배(鏡背)에 꽃 같은 푸른 얼룩이 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이유를 알아내지 못하고 이상한 보물로만 여기고 있다. 이제 그 제법(製法)을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약간의 정동(精銅)으로 거울을 주조하는데 용의 무늬나 꽃무늬 같은 무늬를 거울 뒷면에 새겨 넣고, 주석을 배량(倍量)으로 넣어 만든 동제(銅劑: 지금의 합금)를 녹여 무늬를 새긴 곳에 부어 채운다. 다음에는 그것을 잘 갈고 닦아서 매끈하게 하고 그 위를 납으로 덮는다. 그것을 햇빛에 비추면 용의 무늬가 잘 드러난다.”고 하였다.

마경[馬卿]  한(漢)나라 때의 사부가(詞賦家)인 사마상여(司馬相如)를 이른다. 사마상여의 자(字)가 장경(長卿)이므로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그는 중국 전한(前漢)의 성도(成都) 사람으로, 자는 장경(長卿), 아명은 견자(犬子)였으며, 인상여(藺相如)의 사람됨을 흠모하여 상여(相如)라고 개명하였다. 경제(景帝) 때 무기상시(武騎常侍)가 되었다. 사부(辭賦)에 능하여 한(漢), 위(魏), 육조(六朝) 문인들의 모범이 되었는데, 특히 자허부(子虛賦)와 상림부(上林賦)가 유명하다. 그가 일찍이 실의에 잠겨 촉(蜀) 땅으로 돌아왔을 때 임공 영(臨邛令)으로부터 환대를 받았던 고사가 전한다. 그는 소갈병(消渴病)을 앓아 벼슬을 그만두고 은퇴하여 무릉(茂陵)에 살다가 죽었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마경[馬卿]  마경(馬卿)은 한(漢)나라의 문장가 사마상여(司馬相如)를 가리킨다. 촉(蜀)의 성도(成都) 사람으로 자(字)가 장경(長卿)이다. 성에서 마(馬) 자를 따고 자에서 경(卿) 자를 따서 합하여 부른 것이다. 한 무제(漢武帝)에게 부(賦)를 지어 바쳐 벼슬을 받을 정도로 문장에 능하였다. 사마상여(司馬相如)는 20세에 남쪽의 장강, 회수 일대를 노닐어 회계산(會稽山)에 올라 우혈(禹穴)을 찾는 등 견문을 넓히는 여행을 했다고 한다. 그는 소갈병(消渴病)이 있어 언제나 병을 칭탁하고 한가히 살았다. 그가 일찍이 실의에 잠겨 촉(蜀) 땅으로 돌아왔을 때 임공 영(臨邛令)으로부터 환대를 받았던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57 司馬相如傳>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마경가[馬卿家]  마경(馬卿)은 한(漢)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를 말한다. 그는 중국 전한(前漢)의 성도(成都) 사람으로, 자는 장경(長卿), 아명은 견자(犬子)였으며, 인상여(藺相如)의 사람됨을 흠모하여 성에서 마(馬) 자를 따고 자에서 경(卿) 자를 따서 상여(相如)라고 개명하였다. 경제(景帝) 때 무기상시(武騎常侍)가 되었다. 사부(辭賦)에 능하여 한(漢), 위(魏), 육조(六朝) 문인들의 모범이 되었는데, 특히 자허부(子虛賦)와 상림부(上林賦)가 유명하다. 그는 소갈병(消渴病)이 있어 언제나 병을 칭탁하고 한가히 살았다. <漢書 卷五十七 司馬相如傳>

마경구[磨鏡具]  평생을 포의(布衣)로 살았던 후한(後漢)의 고사(高士) 서치(徐穉)가 일찍이 태위(太尉) 황경(黃瓊)을 섬긴 적이 있었는데 황경이 벼슬살이를 하자 그와 교제를 끊었다. 그 뒤 황경이 죽었을 때에 조문을 갔는데, 가난하여 경비가 없자 ‘거울 닦는 도구[磨鏡具]’를 가지고 다니며 거울을 닦아 주고 비용을 마련하여 조문을 갔다고 한다. 이 내용은 후한서(後漢書) 권53 서치열전(徐穉列傳), 고금사문유취(古今事文類聚), 태평어람(太平御覽) 등에 실려 있다.

마경능운[馬卿凌雲]  마경(馬卿)은 한(漢)나라 때 문호(文豪) 사마상여(司馬相如)로, 그의 자(字)가 장경(長卿)이므로 이렇게 부른다. 효문원 영(孝文園令)을 지냈으며 능운부(凌雲賦)를 지었다. 능운(凌雲)은 구름 위에 치솟는다는 뜻으로, 지취가 고상하고 기상이 드높은 것 또는 지기(志氣)가 초월하거나 필력(筆力)이 굳센 것을 비유한다. 사마상여가 일찍이 한 무제(武帝)가 신선(神仙)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는 대인부(大人賦)를 지어 올렸는데, 사기(史記) 권117 사마상여열전(司馬相如列傳)에 “사마상여가 지어 올린 대인송(大人頌)을 천자가 보고 매우 기뻐하여 ‘날아서 구름 위로 올라가는 듯한 기운이 있고, 천지의 사이에서 노니는 뜻이 있다.’고 하였다.[相如既奏大人之頌, 天子大說, 飄飄有凌雲之氣, 似游天地之閒意.]”라고 하였다. 대인부를 능운부(凌雲賦)라고 하기도 하고, 사마상여(司馬相如)의 문장을 능운건필(凌雲健筆)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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