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경장문부[馬卿長門賦] 마경(馬卿)은 한(漢)나라 문장가 사마상여(司馬相如)인데, 그의 자가 장경(長卿)이기 때문에 이렇게 쓴 것이다. 한 무제(漢武帝)의 황후 진 황후가 무제의 총애를 받아 10여 년간 권력을 휘두르며 살았다. 그러나 아들이 없어 총애를 잃고 장문궁(長門宮)에 따로 살면서 시름 속에 원망의 나날을 보냈다. 사마상여가 문장에 능하다는 말을 듣고 황금 100근을 보내 시름을 해소할 수 있는 부(賦)를 지어 달라고 하니, 사마상여가 진 황후를 위해 장문부(長門賦)를 지어 한 무제에게 바쳤다. 한 무제가 장문부를 읽고 가슴 아파하며 다시 진 황후를 친근히 하였다. <樂府 解題>
마경제주[馬卿題柱] 마경(馬卿)은 사마상여(司馬相如)로, 자는 장경(長卿), 촉군(蜀郡) 사람이다. 서한(西漢)의 대문장가였다. 사마상여가 고향 성도(成都)를 떠나 장안(長安)으로 갈 때 승선교(承仙橋)를 지나면서 그 기둥에 적기를 “다른 날 만일 사마의 높은 수레를 타지 못하면 이 다리를 지나지 않겠다.[他日若不乘高車駟馬, 不過此橋.]”는 13글자를 써 포부를 밝힌 일을 이른다.
마경지병[馬卿之病] 마경(馬卿)은 한대(漢代)의 문장가로 자가 장경(長卿)인 사마상여(司馬相如)를 이른다. 그는 일찍이 낭(郞)으로 무제(武帝)의 명을 받들어 서남이(西南夷)와의 외교에 큰 공을 세웠다. 사마상여는 늘 소갈병(消渴病)을 앓았는데, 경제(景帝) 때 무기상시(武騎常侍)로 있다가 병으로 인하여 그만두었고, 무제(武帝) 때 효문원 영(孝文園令)에 임명되었다가 또 병으로 그만두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소갈병은 소(消)와 갈(渴)을 주증으로 하는 병증으로 당뇨병과 같은 뜻이다. 두보(杜甫)의 시 상위좌상이십운(上韋左相二十韻)에 “장경(長卿)처럼 병이 많은 지 오래되었고, 자하(子夏)처럼 외로이 거처하며 지낸다오. 유속(流俗)을 따라다닌 신세 회고해 보니, 생애(生涯)가 중인(衆人)들과 같구나.[長卿多病久, 子夏索居頻. 回首驅流俗, 生涯似衆人.]”라고 하였다.
마경지빈[馬卿之貧] 마경(馬卿)의 가난함. 마경은 한나라 때의 문장가인 사마상여(司馬相如)를 가리킨다. 부귀한 집안의 딸인 탁문군(卓文君)이 그에게 반하였으나 집안의 반대 때문에 도망 나와 그의 집으로 갔을 때, 너무나 빈궁한 탓에 변변한 가재도구도 없이 오직 사방에 빈 벽만 있었다[家居徒四壁立]는 고사가 있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마경지오유무시[馬卿之烏有無是] 마경(馬卿)은 전한(前漢)의 관료이자 문인인 사마상여(司馬相如)를 자(字) 장경(長卿)과 성씨(姓氏) 사마(司馬)를 결합하여 부르는 칭호이다. 오유(烏有)와 무시(無是)는 그가 지은 자허부(子虛賦)에 등장하는 허구의 인물인 오유선생(烏有先生)과 망시공(亡是公)이다. 자허부(子虛賦)는 이 두 사람과 또 다른 허구의 인물 자허(子虛)가 상호 문답하며 각기 자기 나라 임금의 넓은 정원과 성대한 사냥 행사를 자랑하다가 결국은 절검(節儉)의 필요성으로 귀결되는 내용이다.
마경진교[馬卿陳嬌] 마경(馬卿)은 한(漢)나라 문장가 사마상여(司馬相如)인데, 자가 장경(長卿)이다. 진교(陳嬌)는 진 황후(陳皇后) 아교(阿嬌)이다. 한 글자만 따서 쓴 것이다. 한 무제(漢武帝)의 황후 진 황후가 무제의 총애를 받아 10여 년간 권력을 휘두르며 살았다. 그러나 아들이 없어 총애를 잃고 장문궁(長門宮)에 따로 살면서 시름 속에 원망의 나날을 보냈다. 사마상여가 문장에 능하다는 말을 듣고 황금 100근을 보내 시름을 해소할 수 있는 부(賦)를 지어 달라고 하니, 사마상여가 진 황후를 위해 장문부(長門賦)를 지어 한 무제에게 바쳤다. 한 무제가 장문부를 읽고 가슴 아파하며 다시 진 황후를 친근히 하였다. <樂府 解題>
마경천문장[馬卿擅文章] 마경은 문장으로 이름남. 마경(馬卿)은 사마상여(司馬相如)인데, 촉(蜀)의 성도(成都) 사람으로 자는 장경(長卿)이다. 한 무제(漢武帝)에게 부(賦)를 지어 바쳐 벼슬을 받을 정도로 문장에 능하였다. <史記 卷117 司馬相如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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