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마계도가[馬契都家], 마계산[摩笄山], 마계장정강성[馬季長鄭康成], 마계지산[摩笄之山]


마계[馬契]  말을 세 주는 것을 업으로 하는 계를 이른다.

마계도가[馬契都家]  마계(馬契)는 말을 세주는 일로 업을 삼는 계. 도가(都家)는 동업자들이 모여서 상의(商議)하는 집이니, 즉 마계의 일을 처리하는 도가를 이른다.

마계산[摩笄山]  대왕(代王)의 부인인 조 양자(趙襄子)의 누이가 대왕이 조 양자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으면서 비녀를 갈아[摩笄] 자살한 곳이다. 대왕의 부인이 죽은 뒤에 대 땅 사람들이 그를 불쌍히 여겨 그가 죽은 곳을 이렇게 불렀다. 지금의 중국 하북성(河北省) 탁록현(鹿縣) 동쪽에 있던 산 이름이다. 탁록은 북경시 서북 쪽에 있다. 사기(史記) 권43 조세가(趙世家) 조양자(趙襄子) 조에 “조양자의 누이는 옛날 대왕(代王)의 부인이 되었다. 양자는 그 부친의 장례를 마치고 미처 상복을 벗기도 전에 북쪽의 하옥산(夏屋山)에 올라 잔치를 벌이고 대왕을 초청했다. 양자(襄子)가 요리사로 하여금 구리로 만든 국자를 들고 대왕과 그 시종들에게 음식을 바치며 술을 따르게 했다. 이윽고 주연이 무르익게 되자 양자가 아무로 몰래 이름이 락(犖)이라는 요리사로 하여금 구리로 만든 큰 국자로 대왕과 그 시종들을 쳐서 죽이도록 했다. 이어서 조양자는 대국(代國)의 땅을 평정하고 조씨들의 영토로 만들었다. 양자의 누이가 본국에 있다가 그 부군의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하늘에 호소를 하다가, 그녀의 비녀를 뾰쪽하게 갈아 찔러 죽었다. 대나라 사람들이 이를 가엾게 여겨 그녀가 죽은 곳의 이름을 마계산(摩笄山)이라고 불렀다.[襄子姊前為代王夫人. 簡子既葬, 未除服, 北登夏屋, 請代王. 使廚人操銅枓4)以食代王及従者, 行斟, 陰令宰人各以枓撃殺代王及従官, 遂興兵平代地. 其姊聞之, 泣而呼天, 摩笄自殺. 代人憐之, 所死地名之為摩笄之山.]”라고 하였다.

마계장녕미획초[馬季長佞媚獲誚]  마융(馬融)이 아첨하다가 비난을 받음. <顔氏家訓> 마계장(馬季長)은 후한(後漢) 때의 학자 마융(馬融)으로 그의 자(字)가 계장(季長)이다. 후한서(後漢書) 마융전(馬融傳)에 “마융(馬融)은 자(字)가 계장(季長)이고 부풍(扶風) 무릉(茂陵) 사람이다.[馬融字季長, 扶風茂陵人也.] … 마융은 재능이 뛰어나고 박학한 당시의 대학자로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수천에 이르렀다. 금 연주를 잘하고 피리 부는 것을 좋아하며 성정이 대범하고 솔직한데다가 유학자의 예절 등에 구애되지 않았다. 방안의 기물이나 복식은 사치스러운 게 많았고 장식에 신경을 썼다. 언제나 높은 자리에 앉아 붉은 휘장을 치고 앞에는 가르치는 학생들을, 뒤에는 여악사들을 세워두었는데 학생들은 순서에 따라 그의 학설을 배우기 위해 소수의 사람만이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融才高博洽, 爲世通儒, 敎養諸生, 常有千數. 善鼓琴, 好吹笛, 達生任性, 不拘儒者之節. 居宇器服, 多存侈飾. 常坐高堂, 施絳紗帳, 前授生徒, 後列女樂, 弟子以次相傳, 鮮有入其室者.] … 등씨(鄧氏)에게 혼이 나고서는 감히 세도가들을 거스르지 못하였으며, 마침내는 양기(梁冀)를 위해 이고(李固)에게 상주(上奏)하는 글을 기초하였고, 또 대장군서제송(大將軍西第頌)을 지었는데, 이로 인해 정직한 사람들의 수치가 되었다.[融懲於鄧氏, 不敢復違忤埶家, 遂為梁冀草奏李固, 又作大將軍西第頌, 以此頗為正直所羞.]”라고 하였다.

마계장정강성[馬季長鄭康成]  마계장(馬季長)은 후한 때의 학자 마융(馬融)으로 그의 자(字)가 계장(季長)이고, 정강성(鄭康成)은 마융의 제자 정현(鄭玄)으로 그의 자가 강성(康成)이다. 두 사람 모두 경서의 주해를 지었다. <後漢書 卷60 馬融傳, 卷35 鄭玄傳>

마계지산[摩笄之山]  摩(마)는 磨(마). 笄(계)는 비녀, 즉 송곳처럼 날카롭게 간 비녀처럼 생긴 산이란 뜻이다.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울현(蔚縣) 동남(東南)에 있다. 대왕(代王)의 부인인 조 양자(趙襄子)의 누이가 대왕이 조 양자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으면서 비녀를 갈아[摩笄] 자살한 곳이라고도 한다. 마계산(摩笄山). 전국책(戰國策) 연책(燕策)에 “옛날 조왕(趙王)은 그의 누이를 대왕(代王)의 아내로 삼아 주고, 그 대(代)나라를 겸병하려는 계획을 꾸몄습니다. 그래서 대왕에게 구주(句注)의 요새에서 만나자고 약속해 놓고는, 공인(工人)을 시켜 먼저 금두(金斗: 쇠로 만든 국자)를 만들되 그 자루 끝을 길게 해서 사람을 내리쳐 죽일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대왕(代王)과 술을 마시게 되자 몰래 부엌의 요리사에게 ‘술이 거나하게 오르면 너는 뜨거운 국물을 가져와 바치는 척하면서 금두(金斗)를 꺼내 대왕을 쳐 죽이거라.’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술이 거나하게 취해 즐거움에 빠져 있을 때 뜨거운 국을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요리사는 국을 올리는 척하면서 금두로 대왕(代王)의 머리를 내리치니, 대왕은 골수가 땅에 흘러내려 죽었습니다. 대왕의 처는 이 소식을 듣고 곧 비녀로 스스로 찔러 죽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곳에 마계산(摩笄山)이라는 산이 있게 되었고, 천하에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자가 없습니다.[昔趙王以其姊爲代王妻, 欲幷代, 約與代王遇於句注之塞. 乃令工人作爲金斗, 長其尾, 令之可以擊人. 與代王飮, 而陰告廚人曰: ‘卽酒酣樂, 進熱歠, 卽因反斗擊之.’ 於是酒酣樂進取熱歠. 廚人進斟羹, 因反斗而擊之, 代王腦塗地. 其姊聞之, 摩笄以自刺也. 故至今有摩笄之山, 天下莫不聞.]”라고 한 데서 보인다.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