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자로서
움직이고 가만히 있을 때의 몸가짐이 다르고
시끄럽고 조용한 곳에서의 취향이 다르다면
아직 단련이 덜되고 심신이 혼란하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마음을 다잡아 함양해야
멈춘 구름과 흐름이 그친 물속에서도
솔개 날고 물고기 뛰어오르는 경치가 있고
바람이 미친 듯 불고 비가 퍼붓는 곳에서도
파도 잠잠하고 물결 잔잔한 풍광이 있게 되어
비로소 한결같은 변화의 신묘한 작용을 볼 수 있다.
學者動靜殊操, 喧寂異趣, 還是鍛煉未熟, 心神混淆故耳.
학자동정수조, 훤적이취, 환시단련미숙, 심신혼효고이.
須是操存涵養, 定雲止水中, 有鳶飛魚躍的景象.
수시조존함양, 정운지수중, 유연비어약적경상.
風狂雨驟處, 有波恬浪靜的風光, 纔見處一化齊之妙.
풍광우취처, 유파염랑정적풍광, 재견처일화제지묘.
<菜根譚채근담/淸刻本청각본(乾隆本건륭본)/修身수신>
<醉古堂劍掃취고당검소/小窓幽記소창유기 : 醒성>
※ 취고당검소(醉古堂劍掃: 소창유기小窓幽記)에는 “定雲止水中, 有鳶飛魚躍的景象 ; 風狂雨驟處, 有波恬浪靜的風光.”라고만 되어 있다.
- 동정[動靜] 물질의 운동과 정지. 인간이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일체의 행위. 일이나 현상이 움직이거나 벌어지는 낌새. 태극(太極)이 타는 틀. 우주의 근원적 실체를 운동과 정지라는 측면에서 규정한 말이다. 변동(變動), 이동(移動), 운동(運動) 등을 동(動)이라 하고, 정지(停止), 불변(不變), 정지(靜止) 등을 정(靜)이라 한다. 동과 정은 본래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의 진리에 대한 양면의 관점이다. 다만 그 진리를 체(體)와 용(用)으로 구별하여 볼 때 그 체를 정이라 하고, 그 용을 동이라 한다. 체용과 동정 등은 하나의 진리를 양면으로 말한 것이다.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 “무극이면서 태극이니, 태극이 동하여 양을 낳고 동이 극에 달하면 정해지며 정하여 음을 낳고 정이 극에 달하면 다시 동한다.[無極而太極. 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靜極復動.]”라고 하였다.
- 수조[殊操] 조행(操行)이 다름. 태도와 행실이 다름. 절조가 남달리 뛰어남. 지조와 행실이 뛰어남. 조행부동(操行不同). 탁이절조(卓異節操).
- 훤적[喧寂] 떠듦과 고요함. 시끄러움과 고요함. 훤적은 시끄럽고 적막한 것으로, 속세와 부처의 세계를 말한다.
- 훤적불수도[喧寂不殊塗] 시끄러움과 고요함이 사실은 둘이 아닌 것을 안다면, 굳이 한쪽만을 좋아해서 추구할 필요가 없으리라는 말이다. 적(寂)과 훤(喧)은 불교 선종(禪宗)의 이른바 ‘수파불리(水波不離)의 수와 파에 해당하고, 천태종(天台宗)의 이른바 ‘본적상섭(本迹相攝)의 본과 적에 해당한다. 예컨대 정지해 있는 물과 움직이는 물결이 현상의 측면에서는 다르지만 본체의 측면에서는 같으니 불일불이(不一不異)라고 할 수 있는 것과 같다는 식의 불교 이론이다.
- 이취[異趣] 색다른 정취. 보통과는 다른 정취. 괴상한 취미. 가는 길을 달리함. 법령과 다른 뜻을 밝힘.
- 의취[意趣] 의지(意志)와 취향(趣向)을 아울러 이르는 말. 어떠한 가르침을 설하는 목적이나 의도. 의견. 식견. 지취(志趣).
- 취향[趣向]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 하고 싶은 마음이나 욕구 따위가 기우는 방향. 하고 싶은 마음이 쏠리는 방향. 개인의 취미나 선호하는 바에 따라 국면 운영의 구상을 펴나가는 방향.
- 환시[還是] 아직도. 여전히. ~하는 편이 더 좋다. 또는. 아니면. 이처럼. 그렇게도. 그래도 ~이다.
- 혼효[混淆] 뒤섞여 분간할 수 없게 됨. 뒤섞여 정리되지 않은 상태. 여러 가지 것이 갈피를 잡을 수 없게 어지러이 뒤섞임. 뒤섞이다. 뒤섞다. 섞갈리다. 헛갈리게 하다. 참고로, 포박자(抱朴子) 백가(百家)에 “진실과 허위가 뒤바뀌고, 보옥과 막돌이 뒤섞였다. 그래서 이 점을 슬퍼하는 것이다.[眞僞顚倒, 玉石混淆, 故是以悲.]”라고 한 데서 보인다.
- 혼효[渾殽] 뒤섞여 분간할 수 없게 됨. 뒤섞이는 것. 섞이다. 분간이 서지 않음. 혼효(混淆)한 모양. 여러 가지 것이 갈피를 잡을 수 없게 어지러이 뒤섞임.
- 수시[須是] 모름지기. 반드시. 반드시 ~해야 한다. 꼭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마[대개] ~일 것이다. 是는 須에 붙는 조사. 따라서 須是는 부사로 ‘모름지기’라는 뜻이다.
- 조행[操行] 품행. 몸가짐. 지조와 행실. 생활에서 나타나는 온갖 태도(態度)와 행실(行實). 지조나 정조 등을 굳게 지키다. 참고로, 한유(韓愈)의 시 견학귀(遣虐鬼)에 “품행이나 지조 등을 닦지 않았으니, 너처럼 천박한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不修其操行, 淺薄似汝稀.]”라고 하였고, 구당서(舊唐書) 한유전(韓愈傳)에 “한유는 말하는 것이 진실하고 솔직하여 회피하는 바가 없으며, 지조가 굳고 행실이 단정하였으나 세상일에는 졸렬하였다.[愈發言眞率, 無所畏避, 操行堅正, 拙於世務.]”라고 하였다.
- 조존[操存] 마음을 다잡아 가짐. 흐트러지는 마음을 붙잡는 일. 마음을 굳게 가져 보존하는 것. 조즉존(操則存)의 준말로 심지(心志)를 유지 간직하여 잃어버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맹자(孟子) 고자 상(告子上)에 “잡고 있으면 보존되고, 놓아 버리면 없어지며,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일정한 때가 없고, 어디로 향할지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은 오직 사람의 마음을 두고 말한 것이다.[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라고 한 공자(孔子)의 말에서 나왔다.
- 조존함양[操存涵養] 조존(操存)은 심지(心志)를 지닌다는 말이니, 마음을 다스려 올바른 방향으로 길러 나가는 것을 말한다. 맹자(孟子) 고자 상(告子上)에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달아나서 출입이 일정한 때가 없어 그것이 향할 곳을 알 수 없는 것은 오직 마음을 두고 말한 것일 것이다.[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라고 한 공자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 함양[涵養] 능력이나 품성 따위를 기르고 닦음. 서서히 양성(養成)함. 차차 길러 냄. 학문(學問)과 식견(識見)을 넓혀서 심성(心性)을 닦음. 자연적으로 교화시켜 양성함. 깊이 잠겨서 심성을 닦아 기름. 경(敬)의 태도를 유지함으로써 마음을 수렴하여 바르게 하는 것. 도덕을 깊이 연구하여 기욕(嗜欲)을 제거하고 심성(心性)을 수련(修鍊)하는 것. 물건을 물속에 담가서[涵] 기르는 것[養]과 같으니, 의리(義理) 가운데에 침잠(沈潛)하여 깊이 완미(玩味)하고 충분히 기르는 것. 학문을 하는 데에 있어 물에 젖듯이 차츰차츰 공부가 양성(養成)되어 감을 말한다. 주자전서(朱子全書)에 “평상시에도 반드시 공경하고 성실하여 함양하는 데에 바탕을 두어야만이 바야흐로 이렇게 할 수 있다.[蓋必平日 莊敬誠實 涵養有素 方能如此]”라고 하였다.
- 함양함영[涵養涵泳] 함양(涵養)은 깊이 잠겨서 심성을 닦아 기른다는 뜻이고, 함영(涵泳)은 푹 젖어서 헤엄친다는 말이니 깊이 무젖는다는 뜻이다.
- 정운지수[定雲止水] 한 곳에 머물러 움직이지 않는 구름과 머물러 흐르지 않는 물. 머물러 있는 구름과 흐르지 않는 물. 정운지수(停雲止水).
- 지수[止水] 흐르지 않고 괴어 있는 물. 마음이 고요하고 움직이지 않음의 비유. 지수(止水)는 파란(波瀾)이 일지 않고 고요하게 멈추어 있는 물로, 외물에 동요되지 않는 고요한 마음을 비유한다. 장자(莊子) 덕충부(德充符)에 공자(孔子)의 말을 인용하여 “사람은 흐르는 물에서는 자신을 비추어 보지 못하고, 멈춰 있는 물에서 비추어 볼 수 있다. 오직 고요한 것만이 고요하기를 바라는 모든 것을 고요하게 할 수 있다.[人莫鑑於流水, 而鑑於止水. 唯止能止衆止.]”라고 하였다. 이는 당시 죄를 지어 다리가 잘린 노(魯)나라의 왕태(王駘)라는 사람에게 많은 제자들이 모여들자 공자의 제자가 그 이유를 물은 가운데 나온 이야기이다. 참고로 당나라 백거이(白居易)의 제이시랑문(祭李侍郞文)에 “치아가 서로 삐걱거리고, 파란이 사방에서 일어났는데, 공은 유독 어떤 사람이었나. 마음이 지수와도 같았다오.[齒牙相軋, 波瀾四起. 公獨何人? 心如止水.]”라고 하였고, 자각(自覺)이라는 시에서는 “마음은 명경지수처럼 깨끗이 가지고, 육신은 뜬 구름같이 부질없게 본다네.[置心爲止水, 視身如浮雲.]”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연비어약[鳶飛魚躍]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뛴다는 뜻으로, 만물이 생을 즐김. 만물이 모두 제자리를 얻고 즐거워함. 천하가 태평함. 세상 모든 것이 각자 열심히 움직임. 시경(詩經) 대아(大雅) 한록(旱麓)에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고기는 연못에서 뛰어오르네.[鳶飛戾天, 魚躍于淵.]”라고 하였다. 시경(詩經)의 본 뜻은 숨어 있던 솔개가 하늘로 솟아오르고 잠겨 있던 물고기가 뛰어오르듯이 문왕(文王)의 치세에 인재들이 나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2장에 자사(子思)가 이 구절을 인용하여 “군자의 도는 쓰임이 광대하고 은미하다.[君子之道 費而隱]”라고 하면서,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솔개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물고기는 못 속에서 뛰어논다.’라고 하였으니, 천지조화가 위아래에 나타난 것을 말한 것이다.[詩云:鳶飛戾天, 魚躍于淵, 言其上下察也.]”라고 하여, 군자의 도(道)의 용(用)이 상하(上下)로 드러난 것으로 설명하였다. 또, 주희(朱熹)는 주에서 “화육(化育)이 유행하여 상하에 밝게 드러남이 이 이치의 작용이 아님이 없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라고 하였고, 정자(程子)가 이를 두고 “이 1절은 끽긴(喫緊)하게 사람을 위한 것으로 활발발(活潑潑)한 곳이다.”라고 하였다.
- 연비어약[鳶飛魚躍] 하늘에는 솔개가 날고 연못에는 물고기가 뜀. 만물이 각자 제 살 곳을 얻어 잘 살아간다는 뜻이다. 현상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다르지만 관통하는 원리는 하나인 자연 만물의 이치를 가리킨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한록(旱麓)에 “솔개는 날아 하늘에 이르는데,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논다.[鳶飛戾天 魚躍于淵]”는 구절이 있다. 하늘에 솔개가 날고 물 속에 고기가 뛰어노는 것이 자연스럽고 조화로운데, 이는 솔개와 물고기가 저마다 나름대로의 타고난 길을 가기 때문이라는 뜻으로, 만물이 저마다의 법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살아가면, 전체적으로 천지의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 자연의 오묘한 도임을 말한 것이다. 참고로 명(明)나라 왕세정(王世貞)의 엄주속고(弇州續稿) 권154 제섭교수문(祭葉教授文)에 “옹의 풍골은, 학처럼 청수하고 솔처럼 꼿꼿하며, 옹의 흉금은, 뛰노는 물고기와 높이 나는 솔개라오.[翁之風骨, 鶴癯松堅. 翁之襟懐, 躍魚戾鳶.]”라고 하였다.
- 경상[景象] 산과 물 따위의 자연계의 아름다운 현상(現象). 산이나 들, 강, 바다 따위의 자연이나 지역의 모습. 현상. 상태. 상황. 광경. 경치(景致).
- 풍광우취[風狂雨驟] 바람이 미친 듯 불고 비가 갑자기 세차게 내림. 곤경과 위태로운 일이 닥칠 때를 의미한다.
- 파염랑정[波恬浪靜] 파도가 잠잠하고 물결이 고요함.
- 재견[纔見] 조금 보다. 비로소 보게 되다. 잠깐 봄. 설핏 살핌. (현)비로소 드러나다.
- 화제[化齊] 변화가 한결같이 가지런함. 변화일제(變化一齊).
- 변화제일 부주고상[變化齊一 不主故常] 한결같이 변화하되 옛 법도에 구애받지 않음. 제일(齊一)은 일제히, 나란히, 똑같이의 뜻. ‘부단히’로 번역하기도 한다. 장자(莊子) 제14편 천운(天運)에 “나는 또한 음양의 조화로써 그것을 연주하고, 해와 달의 밝음으로써 그것을 밝힙니다. 그래서 그 소리는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하며, 부드럽기도 하고 억세기도 한 것입니다. 변화는 한결같이 가지런하여 옛 법도만을 위주로 하지는 않습니다. 골짜기에 있어서는 골짜기에 가득 차고, 구덩이에 있어서는 구덩이에 가득 찹니다. 마음의 빈틈을 막아주고 정신을 지켜주며 물건에 따라 양을 변화시킵니다. 그 소리는 널리 진동하고, 그 이름은 높고 맑음이라 할 만한 것입니다.[吾又奏之以陰陽之和, 燭之以日月之明. 其聲能短能長, 能柔能剛. 變化齊一, 不主故常. 在谷滿谷, 在阬滿阬. 塗却守神, 以物爲量. 其聲揮綽, 其名高明.]”라고 한 데서 보인다.
- 묘용[妙用] 묘하게 씀. 또는 묘한 용법(用法). 신묘한 효능. 신통한 효험. 불가사의한 효능. 신묘한 작용. 참고로, 주역(周易) 건괘(乾卦) 괘사(卦辭)의 정전(程傳)에 “대저 천은 전지(專指)하여 말하면 도이니, 하늘도 어기지 못한다는 것이 이것이다. 그러나 나누어 말한다면, 형체를 가지고 말할 때에는 하늘이라 하고, 주재하는 입장에서 말할 때에는 상제(上帝)라 하고, 공용의 측면에서 말할 때에는 귀신이라 하고, 묘용의 시각에서 말할 때에는 신이라 하고, 성정을 가리켜 말할 때에는 건이라 한다.[夫天, 專言之則道也, 天且弗違是也 ; 分而言之, 則以形體謂之天, 以主宰謂之帝, 以功用謂之鬼神, 以妙用謂之神, 以性情謂之乾.]”라는 정이(程頤)의 해설에서 보이고, 능엄경관섭(楞嚴經貫攝) 등에서 정종분(正宗分)의 관세음보살의 천수천안(千手千眼)의 신통을 설명한 부분에 대한 주석에 “다만 중생은 온몸이 손과 눈이라는 것을 미혹되어 알지 못하고서 모두 업용을 이룬다. 나로부터 증득하기를 마치 봄이 절기에 맞는 듯하고 달이 허공에 떠가는 듯하면 손이 가는 대로 잡히는 것이 모두 묘용을 이룰 것이다.[但衆生渾身手眼, 迷而不知, 俱成業用. 自我得之, 如春入律, 如月行空, 信手拈來, 俱成妙用.]”라고 한 데서 보이고, 유마힐경(維摩詰經) 보살품(菩薩品)에 “불성은 넓고 크고 무궁하며, 신묘한 작용이 끝이 없으니, 이를 일러 무진장이라 한다.[佛性廣大無窮, 妙用無邊, 謂之無盡藏.]”라고 한 데서 보인다.
【譯文】 操存涵養, 處一化齊.
做學問的人, 行動靜止操行不同·喧鬧寂靜意趣不同, 還是鍛造冶煉尙未成熟, 心思精力混雜淆舛的原故. 必須是執持心志滋潤培養, 安定的雲靜止的水中, 有魚躍鳶飛的景象 ; 風雨狂暴急驟的地方, 有風平浪靜的風光, 才能顯現對待萬物變化一齊的妙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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