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려[磨勵] 단속하다.
마려[磨礪] 쇠붙이나 돌 따위를 숫돌 따위에 문질러서 갊. 윤기를 냄. 사람을 연마시킴. 갈아서 날카롭게 함. 강절(康節) 소옹(邵雍)의 하사음(何事吟)에 “천 균의 쇠뇌처럼 신중하게 움직이려면, 마땅히 백련금처럼 갈고 닦아야 한다.[施爲欲似千鈞弩, 磨勵(礪)當如百鍊金.]”라고 한 데서 보인다.
마려[磨驢] 맷돌 끄는 나귀[磨驢]는 나귀가 연자방아의 맷돌을 끌 때에 다른 데로 나아가지 못하고 한 자리에서만 빙글빙글 도는 데에서, 발전 없이 늘 제자리만 맴도는 상태를 비유할 때 쓰이는 말이다. 소식(蘇軾)의 시 송지상인유여산(送芝上人游廬山)에 “돌고 도는 게 맷돌 끄는 소와 같아, 걸음마다 묵은 자국만 밟노라.[團團如磨牛, 步步踏陳跡.]”라고 하였고, 또 백부송선인하제귀촉시운운(伯父送先人下第歸蜀詩云…) 열네 번째 시에 “만리 밖에 오는 날을 피하여, 초막 하나에 여전히 홀로 사니. 응당 웃으리 생계 영위 졸렬하여, 돌고 도는 게 마려와 같은 것을.[萬里卻來日, 一庵仍獨居. 應笑謀生拙, 團團如磨驢.]”이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변화가 없이 항상 제자리에 맴도는 것을 의미한다.
마려[馬呂] 송나라 사마광(司馬光)과 여공저(呂公著)의 병칭이다. 철종(哲宗)이 즉위하여 사마광을 문하시랑(門下侍郞)에 임명하고 여공저를 상서우복야 겸 중서시랑(尙書右僕射兼中書侍郞)에 임명하자, 이 두 재상이 힘을 합쳐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을 폐지하고 국정을 주도하였다. 송사(宋史) 권18 철종본기(哲宗本紀) 찬(贊)에 “즉위 초년에 마려 등 제현을 불러 임용하였다. 이에 청묘법을 폐지하고 상평법을 회복하며 인재를 등용하고 언로를 열자, 천하의 인심이 흡연히 치세를 기대하였다.[初年召用馬呂諸賢 罷靑苗 復常平 登俊良 闢言路 天下人心 翕然向治]”라는 말이 나온다.
마려답적[磨驢踏跡] 전혀 진취됨이 없이 항상 제자리에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마려(磨驢)는 연자방아를 돌리는 나귀를 가리키는데, 이 나귀는 조금도 다른 데로 나가지 못하고 계속 한 길만을 빙빙 돌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마려지적[磨驢之迹] 마려(磨驢)는 빙글빙글 돌면서 맷돌을 끄는 나귀라는 뜻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답습만 하는 상태를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소식(蘇軾)의 시에 “나의 생계가 졸렬하기 그지없어서, 맷돌 끄는 나귀처럼 돌기만 하는 것을 비웃겠지.[應笑謀生拙, 團團如磨驢.]”라고 하였고, 또 “돌고 도는 것이 맷돌 끄는 소와 같아서, 걸음걸음마다 묵은 자국만 밟노라.[團團如磨牛, 步步踏陳跡.]”라고 하였다. <蘇東坡詩集 卷21 伯父送先人下第歸蜀詩云人稀野店休安枕路入靈關穩跨驢安節將去為誦此句因以為韻作小詩十四首送之, 卷35 送芝上人游廬山>
마려행적[磨驢行跡] 마려(磨驢)는 맷돌 끄는 당나귀라는 뜻인데, 소식(蘇軾)의 시 송지상인(送芝上人)에 “돌고 도는 게 맷돌 끄는 소와 같아, 걸음마다 묵은 자국만 밟으노라.[團團如磨牛, 步步踏陳跡.]”라고 하였고, 또 백부송선인하제귀촉시운운(伯父送先人下第歸蜀詩云…) 시에서는 “응당 웃으리 생계 영위 졸렬하여, 돌고 도는 게 마려와 같은 것을.[應笑謀生拙, 團團如磨驢.]”이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변화가 없이 항상 제자리에 맴도는 것을 의미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