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릉[馬陵] 전국 때인 기원전 341년 제나라의 장군 전기(田忌)와 전영(田嬰)이 군사 손빈(孫臏)의 계책에 따라 방연(龐涓)이 이끌던 위(魏)나라의 대군을 물리친 곳을 말한다. 지금의 중국 하남성 북쪽의 접경지역인 산동성(山東省) 범현(范縣)설과 산동성(山東省) 남쪽의 담성(郯城) 설 2가지 설이 있다. 위나라 대군이 이 싸움에서 전멸됨으로 인해서 위나라는 패권을 상실하고 중원의 2류국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마릉[馬陵] 중국 산동성(山東省)에 있는 요해지로서 장성(長城)이 있다. 험하기로 유명하다. 제나라의 군사(軍師) 손빈(孫臏)이 조(趙)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위(魏)나라로 쳐들어가면서 마릉에 이르러 나무를 깎아 하얀 면이 드러나게 한 다음 그 나무에 “방연(龐涓)이 이 나무 밑에서 죽을 것이다.[龐涓死此樹下]”라는 글을 써 놓고 좌우에 궁노수(弓弩手)를 매복시켜 두었다. 제나라가 위나라로 쳐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은 위나라의 장군 방연은 조나라 공격을 포기하고 급히 위나라로 달려와 저물녘에 마릉에 당도하여 나무에 글이 쓰여 있는 것을 보고 불을 비추어 읽으려 하였는데 채 읽기도 전에 매복한 궁노수들의 기습을 받아 패사(敗死)하였다. <史記 卷65 孫子吳起列傳>
마릉기[馬陵奇] 마릉(馬陵)의 기습. 전국 시대에 제(齊)나라 장수 손빈(孫臏)이 그의 원수인 위(魏)나라 장수 방연(龐涓)과 싸울 때 거짓으로 후퇴하여 방연의 군사들을 유인하였는데,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해 매일 아궁이 숫자를 줄여 군사들이 도망친 것처럼 위장하였다. 그런 다음 위나라 마릉(馬陵)의 좁은 골짜기에 군사들을 매복시키고 방연이 지나갈 곳에 있는 큰 나무를 깎아 “방연이 이 나무 아래에서 죽으리라.[龐涓死此樹下]”라고 써 놓고는 방연의 군대를 끌어들였다. 과연 방연이 밤에 그 나무 아래 와서 횃불을 켜고 글을 읽었는데, 손빈의 군사들이 일제히 쇠뇌를 발사하여 위군을 전멸시켰다. <史記 卷65 孫臏列傳>
마릉방연지금[馬陵龎涓之擒] 마릉(馬陵)에서 방연(龐涓)을 사로잡음. 제나라의 군사(軍師) 손빈(孫臏)이 조(趙)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위(魏)나라로 쳐들어가면서 마릉에 이르러 나무를 깎아 하얀 면이 드러나게 한 다음 그 나무에 “방연(龐涓)이 이 나무 밑에서 죽을 것이다.[龐涓死此樹下]”라는 글을 써 놓고 좌우에 궁노수(弓弩手)를 매복시켜 두었다. 제나라가 위나라로 쳐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은 위나라의 장군 방연은 조나라 공격을 포기하고 급히 위나라로 달려와 저물녘에 마릉에 당도하여 나무에 글이 쓰여 있는 것을 보고 불을 비추어 읽으려 하였는데 채 읽기도 전에 매복한 궁노수들의 기습을 받아 패사(敗死)하였다. <史記 卷65 孫子吳起列傳>
마릉복노[馬陵伏弩] 마릉(馬陵)은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대명현(大名縣) 동남쪽이다. 전국시대 제(齊)나라 장수 손빈(孫臏)이 계책으로 위(魏)나라 장수 방연(龐涓)을 죽이고 태자(太子) 신(申)을 사로잡은 곳이다. B.C. 341년 위(魏)나라가 한(韓)나라를 공격하자, 이를 구원하기 위해 제(齊)나라는 전기(田忌)를 장수로 삼고 손빈(孫臏)을 군사(軍師)로 삼아 위(魏)나라로 쳐들어갔다. 이에 방연(龐涓)은 위(魏)나라로 돌아와 제군(齊軍)을 추격하였는데, 손빈(孫臏)은 방연이 저녁 무렵 길이 좁고 양쪽에 험한 산이 많아 복병을 배치하기에 알맞은 마릉(馬陵)에 도착할 것으로 예측하고, 도끼로 큰 나무를 찍어 하얗게 만들고 여기에 ‘방연(龐涓)이 이 나무 아래에서 죽을 것이다.[龐涓死此樹下]’라고 써놓았다. 그런 다음, 제군(齊軍) 가운데 궁노(弓弩)를 잘 쏘는 병사 1만여 명을 뽑아 마릉(馬陵)의 길 양쪽에 매복시키면서 “해가 저물어 이곳에서 불빛이 보이거든 쇠뇌를 일제히 발사하라.”고 명하였다. 방연(龐涓)이 과연 밤중에 이곳에 이르렀는데, 나무의 흰 부분에 글씨가 쓰여 있는 것을 보고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횃불을 들어 올리자, 곧바로 매복해 있던 제(齊)나라의 노수(弩手)들이 일제히 활을 쏘니, 위군(魏軍)은 큰 혼란에 빠졌다. 손빈(孫臏)은 곧바로 공격해서 위군(魏軍)을 대파하여 방연(龐涓)을 자살하게 하였다. <史記 권65 孫子列傳>
마릉서[馬陵書] 전국 시대 제(齊) 나라 손빈(孫臏)이 위(魏) 나라 방연(龐涓)과 싸울 적에 손빈이 방연을 마릉(馬陵)의 좁은 길로 유도한 다음 그곳에 복병(伏兵)을 설치하고서 큰 나무의 껍질을 하얗게 깎아 내고 거기에 쓰기를 “방연이 이 나무 밑에서 죽을 것이다.[龐涓死于此樹之下]”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되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史記 卷六十五>
마릉손방지상박[馬陵孫龐之相迫] 마릉(馬陵)에서 손자와 방연이 맞닥뜨림. 전국 시대에 제(齊)나라 장수 손빈(孫臏)이 그의 원수인 위(魏)나라 장수 방연(龐涓)과 싸울 때 거짓으로 후퇴하여 방연의 군사들을 유인하였는데,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해 매일 아궁이 숫자를 줄여 군사들이 도망친 것처럼 위장하였다. 그런 다음 위나라 마릉이란 곳에 군사들을 매복시키고 방연이 지나갈 곳에 있는 큰 나무를 깎아 “방연이 이 나무 아래에서 죽으리라.[龐涓死于此樹之下]”라고 써 놓고는 방연의 군대를 끌어들였다. 과연 방연이 밤에 그 나무 아래 와서 횃불을 켜고 글을 읽었는데, 손빈의 군사들이 일제히 쇠뇌를 발사하여 위군을 전멸시켰다. <史記 卷65 孫臏列傳>
마릉지난[馬陵之難] 마릉(馬陵)은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복현(濮縣) 북쪽이다. B.C. 341년에 양(梁: 위魏) 혜왕(惠王)이 제 위왕(齊威王)에게 대패한 사건을 이른다. 사기(史記)에는 제 선왕(齊宣王)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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