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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멱[馬羃], 마면[麻冕], 마명대사[馬鳴大士], 마명생[馬明生], 마명용수[馬明龍樹]


마멱[馬羃]  말에게 먹이를 줄 때 사용하는 멱서리 종류. 멱서리는 짚으로 날을 촘촘히 결어서 만든 그릇의 하나. 주로 곡식을 담는 데 쓰인다.

마면[麻冕]  삼베의 면류관. 치포관(緇布冠) 30새[升] 베로 만든 것임. 논어(論語) 자한(子罕)에, 공자가 “삼베로 만든 치포관(緇布冠)을 쓰는 것이 예법에 맞기는 하지만 지금 사람들은 실로 만든 관을 사용하고 있으니 이는 검소한 것이다. 나는 시속을 따르겠다.[麻冕禮也 今也純 儉 吾從衆]”라고 말한 것에 대해, 정자(程子)가 “군자가 처세를 함에 있어 일이 의에 위배되지 않는 경우에는 시속을 따라도 괜찮지만 의에 위배되는 경우에는 시속을 따라서는 안 된다.[君子處世 事之無害於義者 從俗可也 害於義 則不可從也]”라고 설명하였다. <論語集註 子罕>

마면[麻冕]  자루 없는 도끼 모양을 수(繡)놓는 상(裳). 소식(蘇軾)의 서전(書傳)에 “마면(麻冕)은 30새[升] 삼베로 만든 면복(冕服)이니 아마 곤면(衮冕)일 것이다. 곤면(衮冕)의 상(裳: 하의)은 네 가지 무늬인데, 여기에 유독 보(黼)의 무늬를 사용한 것은 상복(喪服)을 벗고 길복(吉服)을 입어 변례(變禮)함을 보이기 위한 것이다. 왕(王)이 바야흐로 밖에서 들어와 고명(顧命)을 받게 되므로 고명(顧命)을 전할 자가 조계(阼階)로 올라가면 王은 당연히 빈계(賓階)로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麻冕 三十升麻爲冕 蓋衮冕也 衮冕之裳四章 此獨用黼者 以釋喪服吉示變也 王方自外入受命 傳命者自阼階升 則王當從賓階也]”라고 하였다.

마명[馬鳴]  인도 중천축국(中天竺國) 보살로 대략 1세기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마명(馬鳴)은 보살(菩薩)의 이름으로, 부처가 죽은 지 5, 6세기 뒤에 태어나 중인도(中印度)에 살았다. 처음에는 바라문교(婆羅門敎)를 받들다가 불교로 귀의(歸依)하였으며, 대승불교(大乘佛敎)를 일으켰다. 저서에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이 있어 세간에 전한다.

마명대사[馬鳴大士]  인도의 고승. 중인도(中印度) 마갈타국 사람으로, 부처 부처 해탈 후 6백 여년 뒤에 세상에 나온 대승(大乘)의 논사(論師)이다. 북쪽으로 월지국(月支國)에 들어가서 대승 불교(大乘佛敎)를 전하였으므로 대승 불교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저서로는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대장엄론경(大莊嚴論經), 불소행찬(佛所行讚) 등이 있다.

마명동[馬鳴洞]  두루마을이라 불리는 두솔원 마명을 가리킨다. 지금의 안동시 서후면(西後面)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 상산(商山)에 있는 용소(龍沼)에서 용마(龍馬)가 탄생하여 이개동(耳開洞)에서 귀를 열고 이곳에 와서 말이 울었다 하여 말우리 또는 마명동이라고 하였다. 지금은 명리(鳴里)라고 부른다.

마명생[馬明生]  후한 때의 방사(方士)이다. 마명생은 신선전(神仙傳)에는 馬鳴生(마명생)으로 나온다. 제(齊)나라 사람으로, 본래의 성은 화(和)이다. 현(縣)의 관리로 있을 때 도적에게 당하여 죽었다가 한 도사의 도움으로 살아나자, 관직을 버리고 도사를 따라가서 신선술을 익혀 500여 년을 살다가 대낮에 승천하였다고 한다. <神仙傳 陰長生, 馬鳴生>

마명용수[馬明龍樹]  인도의 마명(馬明) 보살과 용수(龍樹) 보살로 의술에 밝았다. 동양의 오래된 안과 전문서인 용수보살안론(龍樹菩薩眼論)이 후대에 용수(龍樹)의 이름을 빌려서 서명을 붙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용수는 안과 의술에 특히 뛰어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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