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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렝이와 메꾸리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기억을 떠올리려 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어젯밤 형제 단톡방에 올렸다.

“삼태기는 짚으로 짠 거쥬? 싸리로 짠 게 있었는디… 그리고 광주리처럼 짚으로 둥그렇고 높게 짠 것도 있었는디, 이름이 생각이 안 나요.”

띠 동갑 누님이 알려주셨다.

“삼태기는 짚, 싸리는 어랭이, 광주리 짚으로 짠 것 메꾸리.”

아침에 사전을 찾아보았다.

  • 어렝이 : 광산에서 쓰는 삼태기. 보통의 삼태기보다 작으며 통 싸리로 얼멍얼멍하게 엮어 만든다.
  • 메꾸리 : 멱둥구미의 방언(충남). 짚을 엮어서 속이 깊고 둥글게 만든 곡식을 담는 그릇.

아주 어릴 적 느마지기 논이 산사태로 덮인 날이 있었다.

큰물에 물꼬 트러 가신 큰형님 큰누님 뒤로 낌새가 안 좋아 아버지가 소리쳐도 듣지 못하여 손사래발사래 치셨더니 어찌 알아채고 자리를 비켰는데 조금 뒤 산사태가 그 자리에 떨어졌다고 가슴을 쓸어내리시던, 그런 날이 있었다.

그해 겨울 온 가족이 등걸불 피워 놓고 그 논의 흙이며 돌을 어렝이로 추어내던 기억은 어렴풋한데, 흙더미 속에 죽은 산토끼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기억나는데, 그 ‘어렝이’라는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가을이면 턴 콩을 메꾸리에 담아 뜰팡에 놓아두었었는데, 아버지는 늘 소 잘 챙기라시며, 어느 집에선가 주인 모르게 풀려난 소가 콩을 퍼먹고 그 콩이 배에서 불어 죽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 ‘메꾸리’라는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가족을 먹여 살리던 그 어렝이와 메꾸리가 생각나지 않았다.

잊어진다는 것, 잊혀진다는 것…

쓸쓸하고 씁쓸한 일이나 그 또한 어찌 못할 삶의 한 과정이 아니겠는가.


다랑채논 느마지기 / 김송하

어른 손톱만한 청개구리 가족들과
착한 물뱀이
함께 살았지
밤톨만한 우렁이 가족들과
흰 두루마기 입은
백로들이
함께 살았지

왕거미
거미줄 치는 저녁나절엔
맥곱모자
구부정한
울아버지 사셨지
이슬밭 논두렁에
핏줄같은
가늘고 긴 길을 내시고
안개처럼 사셨지

어린 새끼들
양식이라고
끼고 사셨지


이런 시가 눈에 들어온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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