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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보단[馬步壇], 마보사[馬步射], 마복군[馬服君], 마복서[馬服書], 마복탑[馬福塔]


마보[馬步]  말의 걸음. 말을 해치는 신(神). 말에게 재해(災害)를 끼친다는 귀신.

마보군도부서[馬步軍都部署]  마보군도부서(馬步軍都部署)는 송대(宋代)에 요(遼)와 서하(西夏)의 접경에 설치한 군사 장관으로, 영종(英宗) 때 도총관(都摠管)으로 개명하였다.

마보단[馬步壇]  말에게 재앙을 준다는 잡신인 마보(馬步)를 제사지내던 단(壇)이다.

마보사[馬步射]  말을 타고 활을 쏘는 법과 도보(徒步)로 활을 쏘는 법을 말한다.

마복[馬服]  조(趙)나라의 공족(公族)인 마복군(馬服君) 조사(趙奢)를 이른다. 알여지전(閼與之戰)을 승리로 이끌었다. 조사(趙奢)가 진(秦)나라의 공격을 물리친 공으로 마복군(馬服君)에 봉해졌다.

마복군[馬服君]  중국 춘추전국시대 조(趙)나라의 명장(名將) 조사(趙奢)를 이른다. 조괄(趙括)의 아버지로, 한(漢) 나라와 진(秦) 나라가 알여(閼與)에서 싸울 때 진군(秦軍)을 대파하여 한 나라를 구원한 공으로 마복군(馬服君)에 봉해졌다. 조사(趙奢)는 평소에 그 아들 조괄(趙括)을 두고 말하기를 “전쟁이란 사지(死地)인데 조괄이 쉽게 말하니, 조나라에서 만약 조괄을 장수로 삼는다면 반드시 조나라 군사를 없앨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과연 장수가 되었는데 임기응변에 어두워 진(秦) 나라 장수 무안군(武安君) 백기(白起)에게 참패를 당해 죽었다.

마복군[馬服君]  조(趙)나라 장군 조사(趙奢)의 봉호인데 그의 아들 조괄(趙括)을 가리키기도 한다. 조괄(趙括)이 장평(長平) 싸움에서 진(秦)나라에게 패하여 수도 한단(邯鄲)이 포위당하였다. <史記 廉頗藺相如列傳>

마복서[馬服書]  마복(馬服)은 전국(戰國) 시대 조(趙)나라의 명장(名將) 조사(趙奢)로, 진(秦)나라가 한(韓)나라를 공격했을 때 왕명을 받고 진나라 군대를 크게 격파하여 마복군(馬服軍)에 봉해졌다. 조사에게 조괄(趙括)이라는 아들이 있어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병서를 많이 읽었으나, 사람이 융통성이 없고 꽉 막혀서 전략(戰略)을 제대로 펼 줄 몰랐다. 조사가 죽고 나서 왕이 그를 장수로 임명하자 재상 인상여(藺相如)와 조괄의 어머니까지 반대하였지만 왕은 그 명을 철회하지 않았는데, 결국 조괄이 진나라에 크게 져서 군대 수십만을 읽고 수도를 포위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史記 卷81 趙奢列傳>

마복자[馬服子]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장수인 조괄(趙括)을 가리킨다. 조괄은 마복군(馬服君)에 봉해진 조사(趙奢)의 아들로, 조사가 죽자 마복군(馬服君)이라는 봉호를 이어받아 마복자(馬服子)라고 불렸다. 조괄은 병법의 이론에만 밝았지 실제로 군사를 부릴 재능이 없었다. 조(趙)나라 효성왕(孝成王)은 진(秦)나라의 반간계(反間計)에 넘어가 그동안 잘 싸우고 있던 염파(廉頗)를 파면하고 그 자리에 조괄을 임명했다. 조괄은 조나라의 대군을 이끌고 장평(長平)에서 무모하게 진나라 진영으로 돌격했다가, 진나라의 명장 백기(白起)의 전략에 빠져 살해당했다. 그가 이끌던 40만에 달하는 조나라 군졸은 진나라에 항복했는데, 백기가 이 40만의 항졸을 구덩이에 파묻어 죽임으로써 조나라는 멸망에 이르게 되었다.

마복지자[馬服之子]  조(趙)나라 장수인 마복군(馬服君) 조사(趙奢)의 아들 조괄(趙括)을 이른다.

마복탑[馬福塔]  청(淸)나라 만주족 정황기(正黃旗) 사람으로 납라씨(納喇氏)이다. 1631년에 호부 참정에 제수되었고, 1634년에는 호부 승정 영아이대와 조선에 와 교역하였다. 이후 누차 사신으로 조선에 왔다.

마복탑[馬福塔]  청(淸)의 장수. 마부대(馬富大: 또는 馬夫大)라고도 한다. 만주 정황기인(正黃旗人)으로, 조선에 사신으로 자주 왔으며, 병자호란 때 청 태종의 막료로서 참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들 마골대(馬骨大)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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