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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복파누사덕[馬伏波婁師德], 마복파동주[馬伏波銅柱], 마복파두계량[馬伏波杜季良], 마복파의이[馬伏波薏苡],


마복파[馬伏波]  후한 광무제(後漢光武帝) 때의 명장인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을 가리킨다. 자는 문연(文淵)이고 복파장군(伏波將軍)이었으므로 마복파(馬伏波)라고 한다. 지금의 월남(越南)에 해당하는 교지국(交趾國)을 평정하고 동주(銅柱)를 세워 공을 기록하고 돌아오는 등 한나라의 영토를 확장하는 데 막대한 공을 세웠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말안장을 잡고 돌아보면서 아직 자신이 쓰일 만함을 보이자, 광무제(光武帝)가 웃으며 “확삭하구나, 이 노인이여.[矍鑠哉! 是翁也.]”라고 감탄한 일이 있다. 확삭은 노인의 안광(眼光)이 빛나고 기력이 왕성하여 몸이 날랜 것을 형용하는 말이다. <後漢書 卷24 馬援傳>

마복파견비연타수[馬伏波見飛鳶墮水]  마복파(馬伏波)는 중국 후한(後漢) 때의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을 이른다. 마원이 젊어서부터 큰 뜻을 품은 것을 보고, 그의 종제(從弟) 마소유(馬少游)가 ‘선비가 일생에 옷과 먹을 것만 적당히 취하고…… 마을에서 착한 사람이라 일컬어지면 된다.’고 하였었는데, 마원이 교지(交趾)에 출정(出征)하였을 때에, 아래는 큰 물이 있고 위에는 안개가 끼어 우러러보니, 날던 솔개가 푸득푸득 물에 떨어지므로 자못 마소유가 평소에 하던 말이 생각났다는 고사가 있다.

마복파계형자서[馬伏波戒兄子書]  후한(後漢) 때 복파장군(伏波將軍)을 지낸 마원(馬援)이 남을 비평하기를 좋아하고 경박한 유협(遊俠)들과 사귀던 조카 마엄(馬嚴)과 마돈(馬敦)에게 호협(豪俠)한 두보(杜保)를 본받지 말고 신중(愼重)한 용술(龍述)을 본받으며 입을 조심하라고 간절한 어조로 경계한 편지를 말한다. 그 편지에 “용술(龍述)은 신중하고 위엄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그를 본받으면 행검(行檢) 있는 선비는 될 수 있으니, 이른바 ‘고니를 새기다가 완성을 못하더라도 집오리처럼은 될 수 있다.[刻鵠不成, 尙類鶩.]’라는 것이다. 하지만 두보(杜甫)는 호협(豪俠)한 사람이다. 따라서 그를 본받다가는 천하의 경박한 사람이 될 것이니, 이른바 ‘범을 그리다가 완성하지 못하면 도리어 개처럼 되어 버린다.[畫虎不成, 反類狗.]’는 것이다.”라고 경계하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卷54 馬援列傳> <小學集註 卷5 嘉言>

마복파누사덕[馬伏波婁師德]  마복파(馬伏波)와 누사덕(婁師德). 마복파는 후한(後漢) 때의 명장 마원(馬援)으로, 남을 비평하길 좋아하고 경박한 유협(遊俠)들과 사귀던 그의 조카 엄돈(嚴敦)을 경계한 편지에, “남의 과실을 말하지 말고 남의 장단점이나 정치의 시비를 논하지 말라.”고 하면서, 돈후(敦厚)하고 신중한 용백고(龍伯高)란 사람을 전범(典範)으로 제시하며 본받으라고 하였다. <小學 嘉言> 누사덕(婁師德)은 당(唐) 나라 때의 재상으로, 그 아우가 자급(資級)이 높아 대주 도독(代州都督)으로 제수되어 부임하려 하자, 말하기를 “내가 어린 나이에 재능이 부족한 사람으로 재상의 자리에 앉아 있는데, 네가 또 주(州)의 수령이 되어 가니, 분수에 넘치는 자리를 맡았다고 사람들이 질시할 것이다. 너는 장차 어떻게 소임을 마치겠느냐?”라고 하였다. 이에 그 아우가 “이제부터는 남이 저의 뺨에 침을 뱉더라도 감히 대꾸하지 않고 스스로 닦음으로써 형님께 근심을 끼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자 그는 말하기를 “그렇게 해서는 나의 근심거리가 되기에 알맞다. 대저 사람이 침을 뱉는 것은 노여움에서 나온 행동인데, 네가 그것을 닦는다면 이는 그 사람의 노여움을 거스르는 행동이 될 것이다. 침은 닦지 않아[不拭唾]도 절로 마를 터이니, 차라리 웃으며 감수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라고 하니, 그 아우가 “삼가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한다. <新唐書 列傳 卷108>

마복파동주[馬伏波銅柱]  마복파(馬伏波)는 후한(後漢)의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을 가리키고, 동주(銅柱)는 구리 기둥이라는 말로, 후한(後漢)의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지금의 월남(越南)에 해당하는 교지국(交趾國)을 원정(遠征)한 뒤에, 두 개의 동주를 세워서 한(漢)나라와 남방 외국의 경계선을 표시한 것을 말한다. 후한서(後漢書) 권24 마원열전(馬援列傳)에 “마원이 교남(嶠南)을 모두 평정하였다.[嶠南悉平]”라고 한 대목의 주에 “마원이 교지에 이르러 동주를 세워 한(漢)나라의 국경으로 삼았다.[援到交阯, 立銅柱, 爲漢之極界.]”라고 하였다.

마복파두계량[馬伏波杜季良]  마복파(馬伏波)는 복파장군 마원(馬援)을 이르고, 두계량(杜季良)은 후한(後漢)의 두보(杜保)를 이른다. 마원이 형의 아들인 마엄(馬嚴)·마돈(馬敦)에게 후덕하고 치밀한 용백고(龍伯高)를 본받고 호협한 두계량(杜季良)을 본받지 말라고 경계하기를 “용백고를 배우다가 제대로 안 되면 그래도 언행을 삼가는 사람은 될 것이니 이는 고니를 새기다가 오리 정도는 되는 격이어서 괜찮지만, 두계량을 배우려다 제대로 안 되면 천하에 경박한 자가 될 것이니 이는 범을 그리다가 개 모양이 되는 꼴이다.[効伯高不得, 猶爲謹勅之士, 所謂刻鵠不成, 尙類鶩者也; 効季良不得, 陷爲天下輕薄子, 所謂畫虎不成, 反類狗者也.]”라고 하였다. 하지만 마원은 그 후에 두보(杜保)와 교분이 있던 양송(梁松)의 모함을 받아 봉호가 환수되기도 하고, 죽은 뒤에는 어떤 사람의 참소를 받아 선산에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성 서쪽에 박장(薄葬)했다가 주발(朱勃)의 간언으로 마침내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 이 때문에 범엽(范曄)이 논찬하기를 “남의 화를 경계한 것은 지혜로웠지만 자신은 참소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니, 공명의 장(場)에서는 이치가 진실로 그러한 것인가.[其戒人之禍, 智矣, 而不能自免於讒隙, 豈功名之際, 理固然乎?]”라고 하였다. <後漢書 卷54 馬援列傳>

마복파의이[馬伏波薏苡]  마복파(馬伏波)의 의이(薏苡). 마복파(馬伏波)는 중국 후한(後漢)때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을 이르고, 의이(薏苡)는 율무이다. 마원이 교지(交趾)를 정벌(征伐)할 때에, 상시 율무 열매를 먹고 열대지방의 장기(瘴氣)를 이겨내었으므로, 교지를 평정하고 환군(還軍)할 적에 율무 열매를 수레에 싣고 돌아왔더니, 그가 죽은 후에 어느 사람이 글을 올려 참소하기를 ‘전에 싣고 돌아온 것이 모두 명주(明珠: 아름다운 구슬)와 문서(文犀: 무늬 있는 물소 뿔)이다.’라고 한 사실이 있다.

마복파정법시비[馬伏波政法是非]  마복파(馬伏波)가 이른 정법(政法)의 시비(是非). 조정의 시비득실에 대해서 함부로 떠들어 대는 것을 말한다. 복파는 한(漢)나라 때의 장수인 마원(馬援)이다. 마원이 일찍이 형의 아들들이 다른 사람을 기롱하고 조정의 시비득실에 대해 떠들어 대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는 편지를 보내 이르기를, “다른 사람의 장단점에 대해서 의논하기를 좋아하고 조정의 정사에 대해서 함부로 옳으니 그르니 하는 것은 내가 아주 싫어하는 바로, 차라리 죽을지언정 우리 집안의 자손들이 그런 행실이 있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하였다. <後漢書 卷24 馬援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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