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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馬史], 마사단[馬社壇], 마사동적[摩挲銅狄], 마사서사[麻沙書肆], 마사영[馬士英]


마사[馬史]  마사(馬史)는 사마천(司馬遷)이 지은 사기(史記)를 이른다. 사마천(司馬遷)이 부친 사마담(司馬談)의 유지(遺旨)를 받들어 사기(史記)를 완성했다. 사마천이 죽은 이후 선제(宣帝) 때에 이르러 그의 외손(外孫)인 평통후(平通侯) 양운(楊惲)이 비로소 그 글을 천양(闡揚)하여 선포하였다.

마사[摩挲]  매만지다. 문지르다. 비벼대다. 주무르다. 탁마하다. 주무름. 어루만짐. 흐릿함. 오래되거나 희귀한 옛 문물을 애호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마사[馬社]  마사(馬社)는 처음으로 말을 탔다고 하는, 마구간에 산다는 신이다.

마사단[馬社壇]  승마술을 처음으로 시작하였다는 마사(馬社)를 위하여 제사지내던 단(壇)이다.

마사도[馬司徒]  당나라 때 명장인 마수(馬燧)로 자는 순미(洵美)이다.

마사동적[摩挲銅狄]  동한(東漢) 헌제(獻帝) 건안(建安) 연간에 선인(仙人) 계자훈(薊子訓)이 진시황(秦始皇) 때 주조(鑄造)했다는 적인(狄人) 형상의 동인(銅人)을 매만지며 “내가 이것을 만드는 것을 본 뒤로 벌써 오백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렸다.”고 하면서 당시의 일을 회상했다는 얘기가 전하는데, 후한서(後漢書) 방술열전(方術列傳) 계자훈(薊子訓)에 “그때 백 살 된 한 노인이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 회계의 시장에서 약을 팔고 있는 계자훈을 본 적 있는데 얼굴이 지금과 같았다.’라고 하였다. 계자훈은 낙양에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은거하였다. 위제왕(魏齊王) 정시(正始) 연간에 어떤 사람이 장안 동쪽 패성에서 그가 다른 노인과 함께 동인을 만지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동인을 만지며 ‘이 동인을 주조할 때 봤는데 어느새 오백 년이 지났구려.’라고 하였다. 그를 본 사람이 불렀으나 두 사람은 함께 그곳을 떠났고 수레를 타고 쫓아도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時有百歲翁, 自說童兒時見子訓賣藥於會稽市, 顔色不異於今. 後人復於長安東霸城見之, 與一老公共摩挲銅人, 相謂曰: 適見鑄此, 已近五百歲矣. 顧視見人而去, 猶駕昔所乘驢車也.]”라고 하였다. <後漢書 卷82下 方術列傳 薊子訓>

마사서사[麻沙書肆]  복건성(福建省) 건양현(建陽縣)에 있던 책방이다.

마사영[馬士英]  자는 요초(瑤草), 명(明)나라 말에 봉양총독(鳳陽總督)과 남명(南明) 홍광조내각(弘光朝內閣)의 수보(首輔)를 지냈다. 본성(本姓)은 이씨(李氏)인데 마씨(馬氏)의 뒤를 이었다. 명나라 말에 완대성(阮大鋮)과 결탁하여 권력을 다투다가 명나라가 망한 후 남명(南明) 정권을 수립하는데 적극 가담하였다.

마사영완대성[馬士英阮大鋮]  마사영(馬士英)과 완대성(阮大鋮). 마사영(馬士英)은 만력(萬曆) 44년(1616)에 완대성(阮大鋮)과 함께 회시(會試)에 급제한 인연이 있다. 숭정(崇禎) 말에 복관(復官)되어 봉양 총독(鳳陽摠督)이 되었으며, 이자성(李自成)이 경사(京師)를 함락하자, 남경(南京)에서 복왕(福王)을 세우고는 국정을 전횡하였다. 청병(淸兵)을 막을 계책을 세우지 않다가 남경이 함락된 뒤에 군대가 패하여 포로로 잡혀 죽었다. 완대성(阮大鋮)은 홍광(弘光) 때에 마사영이 집정(執政)하자 병부 상서(兵部尙書)에 임명되어 동림(東林)과 복사(復社)의 제인(諸人)에게 혹독하게 보복하였으며, 뒤에 청(淸)나라에 항복하여 선하령(仙霞嶺)의 공격에 참여했다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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