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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수묘상유[馬燧猫相乳], 마수시첨[馬首是瞻], 마수욕동[馬首欲東], 마승불[麻蠅拂]


마수[馬燧]  당 현종(唐玄宗)의 장수. 이영요(李靈耀)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북평왕(北平王)에 봉해졌다. 마수가 장춘궁(長春宮)을 지키고 있던 반란군들 앞으로 나아가, 항복하면 부귀를 누릴 수 있다고 설득하였는데 성 위의 반란군들이 믿지 못하였다. 그래서 자신의 옷깃을 풀어 헤치며 “믿지 못하겠으면 활로 쏘라.”라고 하였더니, 모두 엎드려 눈물을 흘렸다. <資治通鑑綱目 卷47>

마수[馬燧]  당(唐)나라 대종(代宗)과 덕종(德宗) 연간의 평장사(平章事)로, 당시 강성한 무장 출신인 이회광(李懷光)의 발호를 저지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대종(代宗) 때 하동절도사(河東節度使)가 되었는데, 병력이 피폐해지자 시역(廝役)을 모집하여 수천 명을 얻어 모두 기사(騎士)로 보임하고 전법을 가르쳐 몇 달이 되지 않아 정예로운 군졸로 만들었다. <新唐書 卷155 馬燧列傳>

마수묘상유[馬燧猫相乳]  마수(馬燧)는 당(唐) 나라 사람으로 북평왕(北平王)에 봉해졌다. 한유(韓愈)의 묘상유설(猫相乳說)에 “사도(司徒) 북평왕 집에 같은 날 새끼를 낳은 어미 고양이가 있었는데, 한 어미 고양이가 죽고 새끼 두 마리가 남았다. 새끼들이 죽은 어미 고양이의 젖을 빨며 우는 소리를 들은 다른 어미 고양이가 그 새끼 고양이를 자기 새끼처럼 젖을 먹여주었다.[司徒北平王家, 貓有生子同日者, 其一死焉. 有二子飲於死母, 母且死, 其鳴咿咿. 其一方乳其子.]”고 하였다.

마수시첨[馬首是瞻]  옛날 전쟁터에서 병사들이 장수의 말머리를 따라 이리저리 움직였듯이 한사람의 의사를 좇아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행동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고대에 작전할 때 군사들이 주장(主將)의 말 머리가 어디를 향하는지 보고서 진퇴를 결정한다는 말이다. 춘추 시대 진(晉)나라 원수(元帥) 순언(荀偃)이 군사들에게 “내일 새벽에 닭이 울면 전차에 말을 메고, 우물을 파묻고, 밥 짓는 부뚜막을 다 헐어 없애고서, 오직 나의 말 머리가 향하는 곳을 보아라.[雞鳴而駕 塞井夷竈 唯余馬首是瞻]”라고 명령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春秋左氏傳 襄公14年>

마수욕동[馬首欲東]  노 양공(魯襄公) 11년에 진(秦)나라 군대가 진(晉)나라를 침략하자, 진(晉)나라는 복수를 위해 양공 14년에 순언(荀偃)을 주장(主將)으로 삼아 노나라 등 12개국 군대와 연합하여 진(秦)나라를 토벌하러 갔다. 순언이 “내일 닭이 울면 전거(戰車)에 말을 매고 우물을 메우며 부뚜막을 허물고서 오직 나의 말 머리가 향하는 쪽을 보라.”는 명령을 내리자, 난염(欒黶)은 ‘내 말 머리는 동쪽으로 가고자 한다.[余馬首欲東]’라고 말하고 말 머리를 돌려 진(晉)나라가 있는 동쪽으로 돌아갔고, 순언은 할 수 없이 전군(全軍)에 퇴각을 명하였다고 한다. 진(晉)나라 사람들이 이를 일러 ‘시일만 끌다가 퇴각한 전쟁[遷延之役]’이라고 하였다 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14년(기원전 559) 조에 보인다.

마수원[馬首院]  황강이 낙동강과 합쳐지는 곳이다. 지금의 창녕군 유어면 부곡리에 있었다.

마수질[麻首絰]  삼으로 꼰 수질을 말한다.

마순상[馬舜裳]  임진왜란 때 원병(援兵)을 이끌고 왔던 명(明)나라 장수 마귀(麻貴)의 손자로, 부친이 심하(深河)의 전투에서 사망한 뒤 6년간 포로로 잡혀 있다가 탈출하여 1657년(효종8) 우리나라로 왔다. 특히 양잠(養蠶)에 해박하여 전라도 광주(光州)에 살면서 그 지역에 양잠술을 전파하였다. <硏經齋全集 卷43 皇明遺民傳7, 韓國文集叢刊 274輯>

마승[馬乘]  마승은 말 네 필로, 고대에 대부(大夫)가 되면 말 네 필이 끄는 수레를 탔던 데서 즉 대부를 뜻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마승불[麻蠅拂]  마승불(麻蠅拂)은 마(麻)로 만든 승불(蠅拂)인데 승불(蠅拂)은 파리를 쫓고 먼지를 터는 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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