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마애비[磨崖碑], 마애절벽[磨崖絶壁], 마야불가사수려[馬也不可使守閭], 마양[馬楊]


마애[磨崖]  석벽에 불상이나 글자, 그림 따위를 새긴 것을 이른다.

마애비[磨崖碑]  중국 호남성에 오계(浯溪)라는 냇물이 있는데 당나라 시인 원결(元結)이 은거해 살던 곳이다. 당나라가 안녹산의 반란을 평정하고 장안(長安)과 낙양(洛陽)을 수복한 뒤에 원결이 대당중흥송(大唐中興頌)을 지어 숙종(肅宗)의 공덕을 칭송하고 오계(浯溪)의 석벽(石壁)에 새겼는데, 그 글씨를 안진경(顔眞卿)이 썼다. 이것을 마애비(磨崖碑)라 한다. 참고로, 송(宋)나라 장뢰(張耒)의 마애비후(磨崖碑後) 시에 “수부(水部) 원결(元結)의 흉중엔 별처럼 찬란한 문장이 있고, 태사(太師) 안진경(顔眞卿)의 붓 밑엔 용사 같은 글자를 이루었네.[水部胸中星斗文, 太師筆下龍蛇字.]”라고 하였다.

마애비[磨崖碑]  안녹산(安祿山)의 난을 평정하여 당나라를 중흥시킨 숙종(肅宗)의 공적을 찬양하기 위해 원결(元結)이 대당중흥송(大唐中興頌)을 지었다. 노래의 대략은 “훌륭한 임금의 명성과 모습이 길이 전해짐은 이 글에 있지 않겠는가. 상강(湘江)의 동쪽과 서쪽 한가운데 오계(浯溪) 가에 돌 절벽이 높이 솟았는지라, 이 절벽을 다듬고 새길 만하여 이 찬송을 새기노니, 어찌 천만년만 전할 뿐이겠는가.[能令大君, 聲容沄沄, 不在斯文. 湘江東西, 中直浯溪, 石崖天齊. 可磨可鐫, 刊此頌焉, 何千萬年.]”라는 내용이다. 오계(浯溪)는 호남성 기양현(祁陽縣) 서남쪽 5리 지점에 있는 시내이다. 뒤에 황정견(黃庭堅)이 이 마애비(磨崖碑)를 두고 “불어오는 봄바람 배를 오계에 대고, 가시덤불 잡고 올라 중흥비를 읽노라.[春風吹船著浯溪, 扶藜上讀中興碑.]”라고 하였다.

마애비[磨崖碑]  오계(五溪)는 호남성(湖南省) 기양현(祁陽縣) 서남쪽 5리 거리에 있는 시내이다. 당(唐)나라 때 안녹산의 난리가 일어나 현종(玄宗)은 촉(蜀)으로 몽진하고 숙종(肅宗)이 즉위하였다. 숙종이 곽자의(郭子儀)와 이광필(李光弼)에게 명하여 양경(兩京)을 수복하고 현종을 환도(還都)하게 하였다. 그곳의 경치를 좋아하여 살고 있던 원결(元結)을 시켜 대당중흥송(大唐中興頌)을 짓게 하고 명필 안진경(顔眞卿)을 시켜 글씨를 쓰게 하여 오계 가 바위 벼랑에 새기게 하였다. 이 비석을 마애비(磨崖碑)라 부른다. <古文眞寶 大唐中興頌>

마애절벽[磨崖絶壁]  마애 절벽은 현재 풍산읍 마애리(麻厓里) 낙동강 가에 있는 절벽이다. 일명 마라(碼羅)라고 하고, 또 망천절벽(輞川絶壁)이라고도 한다. 원래 이 동네 경관이 중국의 망천(輞川)과 같다 하여 망천이라 불렀다가 낙동강 가에 바위를 쪼아 만든 부처가 있어서 마애(磨崖)로 바꾸어 불렀다. 마을을 감싸 도는 낙동강과 절벽의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영가지(永嘉誌)에서 “남쪽에 적벽(赤壁), 삼봉(三峰)이 있는데 동쪽 봉은 준엄(峻嚴)·단정하고 서쪽 봉은 구불구불 고절(高截)하며 중간의 한 봉은 작으나 초립경직(峭立勁直)하여 옥동봉(玉童峯)이라 불렀다. 봉우리 서쪽에 간곡(澗谷)이 있고 골짜기 가운데 정사 몇 칸이 있는데 곧 박사 이돈(李燉)이 구축하였다. 삼봉 아래에 깊은 못이 있고 백사(白沙)를 금대(襟帶)같이 두르고 울창한 장림(長林)이 둘렀으며, 그 경치가 기절(奇絶)하다. 융경(隆慶) 무진년(1568)에 진사 이숙인(李淑仁), 생원 권경전(權景絟), 교수 이령(李苓) 등이 배를 타고 적벽의 아래에서 유람하는데 송암 권호문이 이를 바라보고 시를 지었다.”라고 하였다.

마애초벽[馬崖峭壁]  오늘날 풍산읍 마애리 낙동강 가에 있는 삼귀정(三龜亭) 앞의 마라(馬螺)라는 못 위에 만 길 높이로 솟은 절벽이다.

마야[摩耶]  석가모니 붓다의 생모. 마하마야(摩訶摩耶)라고도 하는데, 석가의 어머니이다.

마야불가사수려[馬也不可使守閭]  문을 지키는 것은 개의 일이지 말의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인재(人才)를 적소(適所)에 써야 함을 은유한 말이다. 한유(韓愈)가 왕적(王適)의 묘지명에 “솥은 수레를 괼 수 없고 말은 마을을 지키게 할 수 없다.[鼎也不可以拄車, 馬也不可使守閭.]”라고 하였는데, 이는 회남자(淮南子)의 “기둥으로 이를 쑤실 수 없고 말에게 중책을 맡길 수 없다.[柱不可以摘齒, 馬不可以服重.]”라는 글을 변환한 것으로, 천하의 사물은 각기 다 마땅한 쓰임이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마양[馬揚]  사마상여(司馬相如)와 양웅(揚雄)의 병칭이다.

마양[馬楊]  한대(漢代)의 문장가(文章家)인 사마상여(司馬相如)와 양웅(楊雄)을 합칭한 말이다. 양웅의 양은 본래 양(揚)인데, 혹은 양(楊)으로 쓰기도 한다.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