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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완[摩玩], 마외[魔外], 마외금말[馬嵬錦襪], 마외선골[馬嵬仙骨], 마외실말[馬嵬失襪]


마완[摩玩]  갖고 놀다. 가지고 놀다.

마왕처우역왕[馬往處牛亦往]  말 가는데 소도 간다는 뜻이니, 호응이 잇는 곳에 갖추어야 할 것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이다.

마외[魔外]  불교 용어인 천마외도(天魔外道)의 준말로, 불도(佛道)를 흔들어 방애하는 마귀를 가리킨다.

마외[馬嵬]  역 이름이다. 양귀비(楊貴妃)가 고역사(高力士)에 의해 교살(絞殺)된 곳이다. 당 현종(唐玄宗)이 안녹산(安祿山)의 난리로 몽진하다가 마외파(馬嵬坡)에 이르렀을 때 호위하던 육군(六軍)이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나라를 망친 장본인들을 처결할 것을 주장하였다. 현종이 할 수 없이 허락하니 양귀비(楊貴妃)와 그 오라비 양국충(楊國忠)을 죽였다.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에 “육군이 나아가지 않으니 어이할 길 없어, 아리따운 가인이 말 앞에서 죽었어라. 꽃비녀 땅에 버려져도 거두는 사람 없으니, 취교와 금작과 옥소두도 함께 버려졌다오.[六軍不發無奈何, 宛轉蛾眉馬前死. 花鈿委地無人收, 翠翹金雀玉搔頭.]”라고 하였고, “마외파(馬嵬坡) 아래 진흙 속에, 옥안(玉顔)은 볼 수 없고 부질없이 죽은 곳만 남았다오. 군주와 신하 서로 돌아보고 눈물 흘려 모두 옷 적시니, 동쪽으로 도성문 바라보고 말 가는 대로 돌아왔네.[馬嵬坡下泥土中, 不見玉顔空死處. 君臣相顧盡霑衣, 東望都門信馬歸.]”라고 하였다. <古文眞寶 前集 卷9 長恨歌> <新唐書 玄宗皇帝本紀>

마외[馬嵬]  지금의 중국 섬서성(陝西省) 흥평현(興平縣)의 경내에 있던 역명(驛名)이다. 당 현종(唐玄宗)이 안록산(安祿山)의 반란으로 수도 장안을 버리고 촉(蜀)으로 몽진(蒙塵) 길에 올라 마외역(馬嵬驛)에 당도하였을 때, 수행하던 군신들의 강요로 양 귀비(楊貴妃)를 내주어 죽게 한 고사가 있다. 훗날 그곳의 노파가 양귀비의 비단 버선 한 짝을 얻었다고 한다. <楊太眞外傳> 양귀비(楊貴妃)는 어렸을 때의 이름은 옥환(玉環)이다. 양국충(楊國忠)의 사촌 누이로 재색이 뛰어나서 당 현종의 총애를 독차지했다가, 안녹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당 현종과 함께 피란하여 마외역(馬嵬驛)에 이르러 관군으로부터 책망을 당하고 목매어 죽었다. 참고로, 당나라 백거이(白居易)가 당 현종과 양 귀비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시로 읊은 장한가(長恨歌)에서, 당 현종이 환도한 뒤 죽은 양 귀비를 몹시도 그리워하다가 방사(方士)를 시켜 양 귀비의 영혼을 찾게 하는데, 천지사방 구석구석 다 뒤져도 찾지 못하다가 결국 신선이 사는 봉래산(蓬萊山)에서 양 귀비를 찾는 대목에 “문득 들으니 해상에 신선이 사는 산 있는데, 이 산은 허무하고 아득한 사이에 있다 하네. 누각과 궁전 영롱하고 오색 구름 일어나니, 그 속에 아름다운 선녀들 많다네. 그 가운데 자가 옥진이란 사람이 있으니, 백설피부에 꽃 같은 모습 거의 비슷했다오.[忽聞海上有仙山, 山在虛無縹緲間. 樓殿玲瓏五雲起, 其中綽約多仙子. 中有一人字玉眞, 雪膚花貌參差是.]”라고 하였다. 이 시로 인하여 양 귀비의 별호를 또 옥진(玉眞)이라 하게 되었다. 양 귀비의 별호는 태진(太眞)이다.

마외금말[馬嵬錦襪]  송(宋)나라 악사(樂史)의 양태진외전(楊太眞外傳)에 “양 귀비가 죽던 날에 마외의 한 노파가 양 귀비의 비단 버선 한 짝을 얻었는데, 전하는 말에 따르면, 그 버선을 이용해 지나는 길손에게 한 번 구경하는 데 백 전씩을 받아서 전후로 무수한 돈을 벌었다.[妃子死日 馬嵬媼得錦袎襪一隻 相傳過客一玩百錢 前後獲錢無數]”라고 하였다.

마외비진홍[馬嵬飛塵紅]  안녹산의 난 때 당 현종이 서촉(西蜀)으로 몽진(蒙塵)하던 도중 마외역(馬嵬驛)에 당도하여 민심(民心)을 수습하기 위해 부득이 이곳에서 양 귀비를 죽였던 일을 의미한다.

마외산[馬嵬山]  통칭 마외파(馬嵬坡)로 산이 아닌 땅이름이다.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흥평현(興平縣) 서쪽 25리 마외진(馬嵬鎭)이다. 안녹산의 반란 때 당 현종이 서행(西幸)하다가 여기에 와서 부득이 양귀비를 관군에게 내어 주어 목매어 죽이게 하였다.

마외선골[馬嵬仙骨]  선골(仙骨)은 양 귀비(楊貴妃)를 가리킨 것이다. 그는 곧 양국충(楊國忠)의 사촌 누이로 재색이 뛰어나서 명황의 총애를 독차지했다가, 안녹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명황과 함께 피란하여 마외역(馬嵬驛)에 이르러 관군으로부터 책망을 당하고 목매어 죽었다.

마외실말[馬嵬失襪]  마외역(馬嵬驛)에서 버선을 잃음. 양귀비의 죽음을 의미한다. 현종이 안녹산의 난을 피해 몽진하다가 마외역에 이르러 군사들의 요구로 부득이 양귀비를 사사하였다. 훗날 그곳의 노파가 양귀비의 비단 버선 한 짝을 얻었다고 한다. <楊太眞外傳> 마외금말(馬嵬錦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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