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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원초방[馬援招謗], 마원초장[馬援草葬], 마원확삭[馬援矍鑠], 마위전[馬位田]


마원초방[馬援招謗]  마원(馬援)이 일찍이 교지(交趾)에 주둔하고 있을 때 항상 의이(薏苡)의 열매를 복용하여 장기(瘴氣)를 이겨낸 경험이 있어, 돌아올 적에 종자(種子)로 삼기 위하여 한 수레 싣고 왔는데, 그가 죽은 뒤에 혹자가 이것을 남방의 명주(明珠)와 문서(文犀) 등 진괴(珍怪)한 보물들이라고 천자에게 참소함으로써 천자의 노염을 사서 끝내 신식후(新息侯)의 봉작이 추탈(追奪)되기까지 했던 데서 온 말이다.

마원초장[馬援草葬]  마원(馬援)은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명장(名將)이다. 마원이 교지(交趾)를 공략해 큰 전공(戰功)을 세웠는데, 그는 항상 율무의 열매를 먹었으므로 건강한 몸으로 회군(回軍)할 수 있었다. 그가 돌아올 때 이 열매를 가지고 왔는데, 그가 죽자 참소하는 자가 광무제에게 “마원이 전에 남방에서 돌아올 때 수레에 싣고 온 것은 모두 야광주(夜光珠)와 서각(犀角) 등의 보물이었다.”고 하여 광무제가 크게 노하니, 이에 마원의 처자 권속들은 두려워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조상의 무덤에서 옮겨서 초장(草葬)을 지냈다. 초장은 규모없이 대충 치르는 장례를 이른다.

마원취미위산[馬援聚米爲山]  후한 광무제(後漢光武帝)가 외효(隗囂)를 치기 위하여 친정(親征)했을 때, 마원(馬援)이 쌀을 쌓아 지형의 모형을 만들어 작전 형세를 설명하였다. <後漢書 卷24 馬援列傳>

마원토무도[馬援討武都]  마원(馬援)은 광무제(光武帝) 건무(建武) 13년에 무도(武都)의 참랑강(參狼羌)이 무도(武都) 변방의 여러 종족과 함께 침략하여 수령을 살해하자, 마원(馬援)이 4천여 병력을 거느리고 이들을 공격하였다. 마원(馬援)의 군대가 저도현(氐道縣)에 이르자 강족(羌族)들은 산 위에 주둔해 있었는데, 마원(馬援)은 편리한 곳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싸우지 않은 채, 적이 물과 풀을 구하는 길을 봉쇄하였다. 오랑캐는 마침내 곤궁하여 추장이 수십만 호를 거느리고 국경 밖으로 나가니, 여러 종족 만여 명이 모두 항복하였다. 이에 농우(隴右) 지방이 평정되었다. <後漢書 권24 馬援列傳>

마원확삭[馬援矍鑠]  마원(馬援)이 오계(五溪)의 만이(蠻夷)를 정벌하게 해 달라고 청하였을 때, 광무제(光武帝)가 마원이 늙은 것을 딱하게 여겨 허락하지 않았다. 이에 마원이 “신이 아직 갑옷을 입고 말에 오를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광무제가 한번 타보라고 하자, 마원이 말안장에 올라 사방을 돌아보며 건재함을 과시하였다. 그러자 광무제가 “씩씩하구나, 이 노인이여![矍鑠哉是翁也!]”라고 하며 마침내 내보냈다. 그러나 끝내 호두(壺頭)에서 횡액을 만났다. 호두(壺頭)는 산 이름으로, 마원이 이 산에 진을 쳤다가 패배하였고, 마침 무더위와 전염병까지 유행하는 바람에 병이 들어 대단히 곤욕을 치렀다.

마위[馬位]  추수(秋收)한 곡식을 역마의 먹이로 사용하는 밭. 역마(驛馬)의 사육에 필요한 경비를 충용하기 위하여 지급하는 마위전(馬位田)의 준말이다. 마전(馬田).

마위고[馬位庫]  역마(驛馬)의 사육을 위하여 설치한 마위전(馬位田)의 창고를 이른다.

마위전[馬位田]  역말을 먹여 기르도록 각역(各驛)에 떼어 준 전지(田地)로 역정(驛丁)이 직접 경작하게 하고 세금은 받지 않았다. 보통 대마(大馬)는 7결(結), 중마(中馬)는 5결 50부(負), 소마(小馬)는 4결을 받았는데, 줄여서 마전(馬田)이라고도 하였다.

마위전[馬位田]  마전(馬田). 역마(驛馬)를 기르기 위해 마련된 토지로 자경(自耕)하였지만 면세지(免稅地)였다. 역마를 먹여 기르기 위한 위전(位田). 위전은 기본 재산인 전토(田土)의 뜻으로, 그 수익으로 일정한 공적 목적의 비용에 충당하는 전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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