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도자[麻衣道者] 마의도자는 북송의 도사로 이름이 이화(李和)라고 한다. 전약수(錢若水)는 북송의 현대부로 자가 담성(淡成)이다. 송(宋)나라 때 어떤 도승(道僧)이 진단(陳摶)에게 전약수(錢若水)의 사람됨을 말하기를 “그는 급류 속에서 용감히 물러날 수 있는 사람이다.[是急流中勇退人也.]”라고 하였는데, 뒤에 과연 전약수가 벼슬이 추밀 부사(樞密副使)에 이르렀을 때 40세도 채 안 된 나이로 용감하게 관직에서 물러났다고 한다. <宋史 卷266 錢若水列傳> 이 고사는 고금사문유취(古今事文類聚) 전집 권39 기예부(技藝部) 급류용퇴(急流勇退)에도 실려 있다.
마의서[麻衣書] 마의(麻衣)의 상서. 마의서(麻衣書)는 송나라 때 상법(相法)에 뛰어난 마의도자(麻衣道者)가 지었다고 전하는 마의상서(麻衣相書)를 가리킨다.
마의여설[麻衣如雪] 삼베옷이 눈처럼 깨끗함. 시경(詩經) 조풍(曹風) 부유(蜉蝣)에 “하루살이가 처음 나오니, 삼베옷이 눈처럼 깨끗하도다. 마음에 근심하노니, 나에게 돌아와 머물지어다.[蜉蝣掘閱, 麻衣如雪. 心之憂矣, 於我歸說.]”라고 하였다. 이 시는 놀음에만 빠져 장원한 생각이 없는 조(曹)나라의 사람들을 기롱한 것이다.
마의우조[馬醫牛皁] 마의우조(馬醫牛皁)는 말을 치료하는 사람이나 소를 돌보는 하인처럼 험한 일에 종사하는 하찮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마의(馬醫)는 예전에, 말의 질병을 진찰하거나 치료하는 수의사(獸醫師)를 이르던 말이다.
마의의양[馬蟻蟻蛘] 개미 종류 가운데 왕개미를 비부(蚍蜉)라고 하는데 이를 속칭 ‘말[馬]’이라고 하고, 개미 중에 작은 것을 의(螘)라고 하는데 이를 속칭 ‘바구미[蛘]’라고 한다. 그래서 왕개미를 의마(蟻馬), 작은 개미를 의양(蟻蛘)이라고 하기도 하는 것이다. <爾雅注疏 卷9 釋蟲>
마의천향[麻衣天香] 마의(麻衣)는 과거에 응시하는 거자(擧子)가 착용했던 의복이다. 천향(天香)은 대궐 향로의 향기를 말한다. 송(宋)나라 왕우칭(王禹偁)이 황제가 직접 시험하는 것을 읊은 응제황제친시공사가(應制皇帝親試貢士歌) 시에 “궁궐의 버들은 삼월의 안개 속에 낮게 드리우고, 향로의 향기는 천 사람의 벼루에 날아 들어가네. 마의는 깨끗하여 흰 눈처럼 빛나는데, 일일이 성상께서 친히 감별하신다네.[宮柳低垂三月烟 爐香飛入千人硯 麻衣皎皎光如雪 一一重瞳親鑑別]”라는 말이 나온다. <小畜集 卷12>
마의태자[麻衣太子] 신라 제56대 경순왕(敬順王)의 첫째 아들인 김일(金鎰)을 이른다. 신라가 후백제 견훤(甄萱)과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세력에 대항할 길이 없어 경순왕이 항복하고자 하자 이를 반대하였으나, 결국 고려에 귀부(歸附)를 청하는 국서(國書)가 전달되자 개골산(皆骨山)에 들어가 마의(麻衣)를 입고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여생을 마쳤다고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이에 대해 “왕자는 통곡하며 왕과 하직하고 곧장 개골산으로 들어가 바위를 의지하여 집을 만들고 마의를 입고 풀을 먹으며 일생을 마쳤다.[王子哭泣辭王 徑歸皆骨山 倚巖爲屋 麻衣草食 以終其身]”라고 하여, 왕자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다. <三國史記 卷12 新羅本紀 敬順王>
마의하휴[馬毉夏畦] 마의(馬醫)와 하휴(夏畦)는 모두 미천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마의(馬醫)는 말의 병을 살피는 수의(獸醫)를 이르고, 하휴(夏畦)는 여름에 밭에서 일하는 사람을 이른다. 유종원(柳宗元)의 기허경조맹용서(寄許京兆孟容書)에 “노비와 일꾼들도 모두 부모의 무덤에 올라 절을 하니, 마의와 하휴의 귀신들도 자손들의 추모를 받지 못하는 이가 없었다.[皂隷傭丐, 皆得上父母丘墓, 馬醫夏畦之鬼, 无不受子孫追養者.]”라고 하였고, 맹자(孟子) 6권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어깨를 으쓱이면서 아첨하여 웃는 것은 뜨거운 여름날에 밭 매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다.[脅肩諂笑 病于夏畦]”라는 증자(曾子)의 말이 나온다. 또, 황정견(黃庭堅)의 시 사양리도송은가(謝楊履道送銀茄)에 “융주의 여름 밭둑엔 먹을 채소도 귀하거니, 집에 있는 중에게 반찬거리 보낸 그대가 고맙네.[戎州夏畦少蔬供, 感君來飯在家僧.]”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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