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馬耳] 마이산(馬耳山). 전라북도 진안군(鎭安郡)에 있는 산으로 말의 귀처럼 두 봉우리가 쫑긋 솟았는데 높이 685m이다.
마이[馬耳] 마이산(馬耳山). 중국 산동(山東) 제성현(諸城縣) 서남쪽에 있는 산 이름이다. 소식(蘇軾)의 시 설후서북대벽(雪後書北臺壁)에 “북대에서 비질하다 마이산을 보았더니, 눈 쌓이지 않은 곳은 봉우리 두 개뿐이었네.[試掃北臺看馬耳, 未隨埋沒有雙尖.]”라고 하였다.
마이동풍[馬耳東風] 말 귀에 스쳐 가는 봄바람.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아니하고 지나쳐 흘려버림. 곧 봄바람이 말의 귀에 스쳐도 아무 감각이 없듯이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충고 등을 전혀 상대하지 않거나 이쪽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상대에게 아무런 반응도 주지 못하는 것을 형용한 말이다. 이백(李白)의 시 답왕십이한야독작유회(答王十二寒夜獨酌有懷)에 “북쪽 창 아래서 시를 읊고 부를 지어 보았자, 만언의 문장이 한 잔 술 가치도 안 되고말고. 세상 사람은 이 말 들으면 모두 머리를 내저어, 흡사 동풍이 말의 귀를 스쳐가는 것 같으리.[吟詩作賦北窓裏, 萬言不直一杯水. 世人聞此皆掉頭, 有如東風射馬耳.]”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서로 전혀 관계없는 것 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우이송경(牛耳誦經). 우이독경(牛耳讀經)
마이불린 열이불치[磨而不磷 涅而不緇] 견고한 물체는 갈아도 닳지 않고 아주 흰 물건은 검은 물을 들여도 물들지 않는다는 말로 군자는 외계(外界)의 여하한 변동에도 마음의 중심을 변치 아니함. 심지(心志)가 지극히 견고하고 결백해서 결코 주위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필힐(佛肹)이 모반을 일으킨 다음 공자를 부르자 공자가 그에게 가려고 하였다. 자로는 스승이 불선(不善)한 사람에게 가려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때 공자가 자로를 안심시키며 “갈아도 얇아지지 않으니, 견고하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으니, 결백하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不曰堅乎 磨而不磷 不曰白乎 涅而不緇]”라고 하였다. <論語 陽貨>
마이산[馬耳山] 전라도 진안(鎭安)에 있는 산 이름이다. 국역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9 전라도(全羅道) 진안현(鎭安縣) 기사에 “현(縣)의 남쪽 7리에 돌산이 하나 있는데 봉우리 두 개가 높이 솟아 있기 때문에 용출봉(湧出峯)이라 이름하였다. 높이 솟은 봉우리 중에서 동쪽을 아버지, 서쪽을 어머니라 하는데, 서로 마주 대하고 있는 것이 마치 깎아서 만든 것 같다. 그 높이는 천 길쯤 되고 꼭대기에는 수목이 울창하고 사면이 준절(峻絶)하여 사람들이 오를 수 없고 오직 모봉(母峯)의 북쪽 언덕으로만 오를 수가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동봉(東峯) 위에는 작은 못이 있고, 서봉(西峯)의 정상은 평평하고, 샘이 있어서 적병을 피할 수 있고, 날이 가물어 비를 빌면 감응이 있다고 한다. 신라 시대에는 서다산(西多山)이라고 불렀는데 소사(小祀)에 올렸다. 본조 태종(太宗)이 남행(南幸)하여 산 아래에 이르러서 관원을 보내어 제사를 드리고 그 모양이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마이산(馬耳山)이라는 이름을 내려 주었다.”라고 하였다.
마이산[馬耳山] 중국 산동성(山東省) 제성시(諸城市) 서남쪽에 있는 산이다. 소식(蘇軾)의 시 설후서북대벽(雪後西北臺壁)에 “북대를 쓸고 마이산을 보니, 매몰되지 않는 두 봉우리가 뾰쪽하네.[試掃北臺看馬耳, 未隨埋沒有雙尖.]”라고 하였다.
마이산[馬耳山] 의주(義州)의 객관(客館) 북쪽 압록강 가의 통군정(統軍亭)에서 바라다 보이는 산 이름이다.
마이상산[馬耳常山] 모두 산(山)의 이름으로 밀주(密州: 중국 산동성山東省 제성시諸城市)의 남쪽에 있다. 소식(蘇軾)의 밀주(密州) 초연대기(超然臺記)에 “남쪽으로 마이산(馬耳山)과 상산(常山)을 바라보면 산의 모습이 나왔다 없어졌다 숨었다 나타났다 해서 가까운 듯하다가 다시 먼 듯하니, 어쩌면 여기에 은군자(隱君子)가 있는가 보다. 그 동쪽은 노산(盧山)이니 진(秦)나라 사람 노오(盧敖)가 따라 은둔한 곳이요, 서쪽으로 목릉(穆陵)을 바라보니 우뚝하여 성곽과 같은데, 스승 상보(尙父)와 제 환공(齊桓公)의 유렬(遺烈)이 아직도 남아 있으며, 북쪽으로 유수(濰水)를 굽어보고 서글피 탄식하면서 회음후(淮陰侯) 한신(韓信)의 공(功)을 생각하고 제대로 끝마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였다.[南望馬耳·常山, 出沒隱見, 若近若遠, 庶幾有隱君子乎! 而其東則廬山, 秦人盧敖之所從遁也. 西望穆陵, 隱然如城郭, 師尚父·齊桓公之遺烈, 猶有存者. 北俯濰水, 慨然太息, 思淮陰之功, 而吊其不終.]”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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