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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저[馬苴], 마저성침[磨杵成針], 마저작침[磨杵作針], 마적[馬吊], 마적[馬賊]


마저[馬苴]  춘추 시대 제(齊)나라 경공(景公)의 장수인 사마양저(司馬穰苴)를 가리킨다. 본명은 전양저(田穰苴)인데 대사마(大司馬)가 되었기 때문에 사마양저라 부른다. 그는 용병(用兵)이 매우 뛰어난 명장이었다. <史記 卷64 司馬穰苴列傳>

마저성침[磨杵成針]  부단한 노력을 하여야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이백(李白)이 젊었을 때 상이산(象耳山)에서 글을 읽다가 미처 학업을 성취하지 못한 채 그곳을 버리고 떠나는 도중에 한 노파를 만났는데, 그 노파가 한창 무쇠 절굿공이를 갈고 있으므로, 이백이 그 까닭을 묻자, 노파가 말하기를 “이것으로 바늘을 만들려고 한다.[欲作針耳]”고 하므로, 이백이 그의 말에 느낀 바가 있어 마침내 다시 되돌아가서 학업을 다 마쳤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蜀中廣記 卷12>

마저작침[磨杵作針]  남송(南宋)의 축목(祝穆)이 지은 방여승람(方輿勝覽) 미주(眉州) 마침계(磨針溪)에 “마침계는 미주의 상이산 아래에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백이 이 산에서 공부를 하다가 학업을 이루지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다. 돌아가는 길에 이 내를 건너다가 쇠공이를 갈고 있는 한 노파를 만났다. 이백이 묻기를 ‘할머니,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라고 하니, 노파가 말하기를 ‘바늘을 만들려고 한단다.’라고 하였다. 이백은 이 말에 크게 깨달은 바 있어 되돌아가 공부를 마쳤다. 그 노파는 자신의 성이 무(武)씨라고 했는데, 오늘날 그 내 옆에는 무씨바위가 있다.[磨針溪, 在眉州象耳山下. 世傳李白讀書山中, 學未成, 棄去. 過是溪, 逢老媪方磨鐵杵. 白問: ‘何爲.’ 媪曰: ‘欲作針耳.’ 白感其言, 還, 卒業. 媪自言姓武. 今溪旁有武氏巖.]”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마저작침[磨杵作針]  쇠공이를 갈아서 바늘을 만듦. 한번 일을 시작했으면 불요불굴(不撓不屈)의 정신으로 끝까지 노력해야 성공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송(宋)나라 축목(祝穆)의 방여승람(方輿勝覽) 마침계(磨針溪)에 의하면 “상이산 아래 있는데, 세상에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태백이 이 산중에서 글을 읽다가 미처 다 성취하기 전에 이곳을 버리고 떠나면서 이 시내를 지나다가, 한 노파가 한창 무쇠 절굿공이를 갈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 까닭을 묻자, 노파가 말하기를 ‘바늘을 만들기 위해 갈고 있다.’고 하므로, 이태백이 그 뜻에 감동을 받아 다시 되돌아가서 학업을 마쳤다고 한다.[在象耳山下 世傳李太白讀書山中 未成棄去 過是溪 逢老媼方磨鐵杵 問之 曰欲作針 太白感其意還 卒業]”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학문에 끝까지 정진하는 것을 비유한다. <촉중광기蜀中廣記 卷12> <잠학유서潛確類書>

마적[馬吊]  도박 이름. 도박에 쓰는 기구의 한 가지로 곧 골패(骨牌)를 가리킨다.

마적[馬吊]  투전 40장을 가지고 노는 중국의 놀음감. 명(明) 나라 천계(天啓) 때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마적[馬籍]  말을 기록한 장부이다.

마적[馬賊]  청(淸)나라 말부터 만주 지역에서 무장 활동을 전개한 기마(騎馬) 집단이다. 본래 일반 유민들이 지방 정부나 지주로부터 자신들을 방위하기 위해 조직한 데서 유래했으므로 촌락을 습격하여 약탈을 일삼은 비적(匪賊)이나 토비(土匪)와는 근본적인 성격이 다르다. 화북과 동북 지방을 근거지로 점차 세력을 확장하여 군벌(軍閥)로 성장하기도 했으나 만주사변 이후 일본군에 의해 토벌되었다.

마적산[馬跡山]  그 위치는 정확히 고증할 수 없다. 연암집(燕巖集) 권6 별집(別集) 서이방익사(書李邦翼事)에 “태호의 서북쪽에 있는 산은 14개인데, 그중에 마적산이 가장 크다.[湖之西北爲山十有四, 馬跡最大.]”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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