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남[馬征南] 마정남(馬征南)은 후한(後漢)의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을 가리킨다. 그가 정남장군(征南將軍)이 지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마원은 지금의 월남(越南)에 해당하는 교지국(交趾國)을 정벌하여 한(漢)나라의 국경을 넓혔는데, 이에 대해 후한서(後漢書) 권24 마원열전(馬援列傳) 주(注)에 “마원이 교지에 이르러 동주(銅柱)를 세워 한(漢)나라의 국경으로 삼았다.”라고 하였다.
마정란[馬廷鸞] 마정란(馬廷鸞)은 송(宋)나라 도종(度宗) 때 재상이다. 그가 재상직을 사임하려고 하자 도종은 만류하였다. 이에 마정란은 “신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다시는 주군을 뵙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나랏일은 많고 변방은 위급합니다. 천하의 안위를 군주가 알지 못하고, 국가의 이해를 여러 신하가 알지 못하며, 군대의 승부를 장수들이 알지 못합니다. 전하와 원로대신들은 오직 영구적인 계획만을 염두에 두신다면, 신은 죽어 눈을 감을 수 있겠습니다.[臣死亡無日, 恐不得再見君父. 然國事方殷, 疆圉孔棘. 天下安危, 人主不知 ; 國家利害, 群臣不知 ; 軍前勝負, 列閫不知. 陛下與元老大臣惟懷永圖, 臣死且瞑目.]”라 하고는 머리를 조아리고 눈물을 흘리며 물러났다[頓首涕泣而退]. <宋史 권41 馬廷鸞列傳>
마정방종[摩頂放踵] 정수리부터 갈아 닳아져서 발꿈치까지 이른다는 뜻으로, 자기를 돌보지 아니하고 남을 깊이 사랑함을 이르는 말. 온몸을 바쳐서 남을 위하여 희생함. 간난신고(艱難辛苦)를 마다하지 않고 자기 몸을 바쳐 일하는 것. 어떤 고난이 있다 해도 마다하지 않고 온몸을 바쳐 일함.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양자(楊子)는 위아를 취하였으니, 하나의 털을 뽑아서 천하가 이롭더라도 하지 않았다. 묵자(墨子)는 겸애를 취하였으니, 이마를 갈아 발꿈치에 이르더라도 천하에 이로우면 하였다.[楊子取爲我, 拔一毛而利天下, 不爲也. 墨子兼愛, 摩頂放踵, 利天下爲之.]”라고 한데서 보인다. 양자(楊子)와 묵자(墨子)는 전국(戰國) 시대의 학자들로, 양주는 이기(利己)를, 묵적(墨翟)은 박애(博愛)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 제9장제8절에 “양씨는 자신만을 위하니 이는 군주가 없는 것이고, 묵씨는 똑같이 사랑하니 이는 아버지가 없는 것이다. 아버지가 없고 군주가 없으면 이는 금수이다.[楊氏爲我, 是無君也; 墨氏兼愛, 是無父也. 無父無君, 是禽獸也.]”라고 하였다.
마정지선사[摩頂誌禪師] 보지선사(寶誌禪師)가 정수리를 어루만짐.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문인 서릉(徐陵)이 겨우 두어 살 되었을 적에, 집안사람이 고승(高僧) 보지(寶誌)에게 서릉을 데리고 가서 보였더니, 보지가 서릉의 정수리를 어루만지면서 말하기를 “천상의 석기린이로구나.[天上石麒麟]”라고 하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陳書 卷26 徐陵列傳> 전하여 천상의 기린아(麒麟兒)란 흔히 문재(文才)가 있는 남의 자제를 칭찬하는 말로 쓰인다. 서릉(徐陵)은 중국 남북조시대 양(梁) 나라의 문신이자 시인으로, 동궁(東宮)에서 관직을 함께 했던 아버지 서추(徐推), 유견오(庾肩吾)·유신(庾信) 부자와 함께 화려한 궁체시(宮體詩)를 즐겨 지어 서유체(徐庾體)라 칭해진다.
마정휴검돌[摩頂休黔堗]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묵자는 겸애를 실천하면서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닳더라도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행하였다.[墨子兼愛, 摩頂放踵, 利天下 爲之.]”라는 말이 있고, 동한(東漢) 반고(班固)의 답빈희(答賓戲)에 “공자가 앉은 자리는 따스해질 틈이 없었고, 묵자의 집 굴뚝은 검어질 틈이 없었다.[孔席不暖, 墨突不黔.]”는 말이 나온다. 묵돌(黔堗)은 묵자의 집 굴뚝을 말한다. 묵자가 집에서 밥을 먹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겸애의 실천을 위해 애썼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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