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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제[禡祭], 마제[馬祭], 마제[麻制], 마제[馬蹄], 마제배[馬蹄盃]


마제[禡祭]  마제(禡祭)는 군대가 행군을 하다가 머무르는 곳에서 신(神)에게 지내는 제사를 이르는데, 그 신은 황제(黃帝)라고 하기도 하고 치우(蚩尤)라고 하기도 한다. 시경(詩經) 대아 황의(皇矣)에 “이에 유제(類祭)를 지내고 이에 마제(禡祭)를 지내어 이에 오게 하며 따르게 하시니, 사방에서 업신여기는 자가 없다.[是類是禡, 是致是附. 四方以無侮.]”라고 하였는데, 공영달(孔穎達)의 소에 “처음 출병할 때에 유제를 지내고 정벌할 곳에 이르러 마제를 지낸다.”라고 하였고, 집주(集註)에 “마(禡)는 정벌하는 지역에 이르러 처음 군법을 만든 자에게 제사하는 것이다.[禡, 至所征之地, 而祭始造軍法者.]”라고 하였다. 황제(黃帝) 헌원(軒轅)은 오제(五帝)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일찍이 판천(阪泉)에서 염제(炎帝)를 싸워 이기고 탁록(涿鹿)의 들에서 치우(蚩尤)를 죽여 천하를 평정하였기 때문에 황제에게 마제를 지내 복을 기원한 것이다.

마제[馬祭]  군사를 움직일 때 그 군사가 머무르는 곳에서 군법을 창시한 군신(軍神)에게 지내는 제사. 혹은 마조신(馬祖神)을 제사지낸다고도 하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 시대 서울 동대문 밖에 마조단(馬祖壇)을 설치하고 말의 조상이라는 천사성(天駟星)을 제사지냈었다. <周禮 春官 注> <經國大典>

마제[麻制]  중국 당(唐)나라 때 중서성(中書省)에서 윤명(綸命)을 받아 삼[麻]으로 만든 황백(黃白) 두 가지 종이에 써서 주던 고신장(告身狀)이다.

마제[麻制]  당(唐)·송(宋)나라 때에 집정대신(執政大臣)을 임명할 때 내리는 조명(詔命)을 이르는데, 그 내용을 백마지(白麻紙)에 썼기 때문에 그렇게 호칭한 것이다. 당나라 강병(康騈)의 극담록(劇談錄) 하권 유상국댁(劉相國宅)에 “이때 승도(昇道) 정 상국(鄭相國)이 밤에 내정(內庭)에서 마제(麻制)를 초안하였다.”라고 하였다.

마제[麻制]  삼으로 만든 마지(麻紙)에 쓴 황제의 조칙(詔勅)을 가리킨다. 양성(陽城)은 당 나라 덕종(德宗) 때의 명신으로 간쟁을 잘하기로 유명하였다. 양성은 간의대부(諫議大夫)로 7년 동안 재임하였는데, 덕종이 육지(陸贄)를 파면하고 간신인 배연령(裵延齡)을 재상으로 임명하자, 이에 반대하여 마지에 쓴 황제의 조칙을 찢으려 하다가 덕종의 노여움을 사 좌천되었다.

마제[馬蹄]  말굽. 말편자. 마제(馬蹄)는 장자(莊子)의 편명으로 마제편(馬蹏篇)을 이르는데, 그 내용은 바로 백락(伯樂)은 말[馬]을 잘 다룸으로써 말의 진성(眞性)을 잔해(殘害)한 것이니, 인위(人爲)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연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것으로, 곧 천성(天性)대로 유유자적하여 몸을 잘 보전하라는 것이다. 참고로, 맹교(孟郊)의 시 등과후(登科後)에 “봄바람 속에 뜻을 얻어 말발굽도 부리나케, 하루에 장안의 꽃들을 모조리 구경했다나요.[春風得意馬蹄疾, 一日看盡長安花.]”라는 구절이 있고, 두보(杜甫)의 시 과소수서작사북과림(課小豎鋤斫舍北果林)에 “야박한 풍속은 사람 만나길 회피하나니, 몸 보전하려면 마제를 배워야 하리.[薄俗防人面 全身學馬蹄]”라고 하였다. 이 시는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권20에 실려 있는데 전체 제목은 ‘어린 종에게 시켜서 집 북쪽 과수원의 김을 매게 하고 가지가 뻗어 거칠고 어지러운 것이 깨끗하게 된 후에 평상을 옮기다 3수[課小豎鋤斫舍北果林 枝蔓荒穢淨訖移牀 三首]’이다.

마제[馬蹄] 향초인 두형(杜衡) 또는 순채[蓴]를 달리 이른 말이다.

마제단[禡祭壇]  마제(禡祭)는 출병할 때 군대가 주둔하는 곳에서 처음 병법을 만든 자에게 지내는 제사이다. 전쟁이 황제(黃帝)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전승(戰勝)을 기원하여 헌원(軒轅)에게 마제를 지냈다고 한다.

마제배[馬蹄盃]  말발굽 잔. 한유(韓愈)의 시 영설(詠雪)에 “수레바퀴 자국은 흰 띠를 번득이고, 말발굽 흔적은 은잔을 흩은 듯하네.[隨車翻縞帶 逐馬散銀盃]”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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