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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馬珠], 마주[馬柱], 마주배[馬主輩], 마주소[馬周疏], 마주연견[馬周鳶肩]


마주[馬周]  마주(馬周)는 당(唐)나라 임평(荏平) 사람으로 자는 빈왕(賓王)인데, 학문을 좋아하여 시경(詩經)과 춘추(春秋)에 능통하였다. 그는 일찍이 중랑장(中郞將) 상하(常何)의 문객으로 있었다. 어느 날 당 태종(唐太宗)이 백관(百官)에게 조서(詔書)를 내려 각각 득실(得失)을 말하게 했을 때, 상하는 본디 무인(武人)이라 배운 것이 없는데도 20여 조(條)의 글을 올렸다. 태종이 괴이하게 여겨 상하에게 묻자, 상하가 대답하기를 “신의 집 문객 마주가 지은 것입니다.[家客馬周具草也]”라고 하므로, 태종이 마침내 마주를 불러 대화를 해 보고는 아주 기뻐하여 그를 감찰 어사(監察御史)로 등용하였다. <舊唐書 卷74 馬周列傳>

마주[馬周]  당(唐)나라 초기의 명신이다. 자(字)는 빈왕(賓王). 청하(淸河) 임평인(荏平人)이다. 어려서 고아가 되어 가난하게 살았으나, 학문을 좋아하여 시경(詩經) 및 춘추(春秋)에 조예가 깊었다. 정관(貞觀) 6년(632) 당 태종(唐太宗)이 관리들에게 국정의 득실에 관해 의견을 제시하라 명하였는데, 당시 마주는 상하(常何)의 문객으로 있다가 20여 가지의 대책을 올려 태종의 인정을 받아 문하성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태종은 “잠시라도 마주를 보지 않으면 생각이 난다.”라고 말할 정도로 마주를 아꼈으며, 일처리가 면밀하고 특히 언사에 뛰어나 당시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중서령이 되었다가,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에 나아갔다. 문집 10권이 있다. <新唐書 卷98 馬周列傳>

마주[馬周]  당나라 때 박주(博州) 임평(荏平) 사람으로 자는 빈왕(賓王)이다. 어릴 때 고아가 되고 가난했지만 배우기를 좋아했고, 시경(詩經)과 춘추(春秋)에 밝았다. 고조(高祖) 무덕(武德) 연간에 주조교(州助敎)를 지냈다. 나중에 장안(長安)에서 중랑장(中郞將) 상하(常何)의 가객(家客)으로 있었다. 태종 정관(貞觀) 3년(629), 상하를 대신하여 20여 가지 일에 대해 쓴 상서(上書)가 당시의 절실한 일들이었는데, 상하가 무인(武人)이라 학문을 익히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여겨 물어보았더니 상하가 ‘가객 마주가 쓴 것’이라고 하자 태종이 불러 이야기를 나눠보고 몹시 기뻐하며 문하성(門下省)에서 일하도록 했다. 나중에 감찰어사(監察御史)와 급사중(給事中), 중서시랑(中書侍郞), 중서령(中書令) 등을 지냈다. 명쾌하고 주도면밀한 변설로 간언(諫言)하여 태종의 총애를 받았다. 48세로 죽었다. 처음에 원천강(遠天綱)이 관상을 보고 “빨리 귀히 되나 오래 못갈 것이다.”라고 하였다.

마주[馬州]  대마도(對馬島).

마주[馬珠]  마원(馬援)의 명주(明珠)라는 뜻에서 곡류(穀類)의 한 가지인 의이(薏苡), 즉 율무를 지칭한 것이다. 후한(後漢)의 명장(名將) 마원이 일찍이 교지(交阯)에 주둔하고 있을 때 항상 율무를 복용하여 장기(瘴氣)를 이겨 낸 경험이 있어, 돌아올 적에 그곳의 율무를 종자(種子)로 삼기 위해 한 수레 싣고 왔는데, 그가 죽은 뒤에 혹자가 이것을 남방의 명주(明珠)와 문서(文犀) 등 진괴(珍怪)한 보물이라고 천자(天子)에게 참소함으로써 천자의 노염을 사서 끝내 신식후(新息侯)의 봉작이 추탈(追奪)되기까지 한 데서 온 말이다. <後漢書 卷24 馬援列傳>

마주[馬柱]  말을 매는 나무. 말을 매는 말뚝.

마주[馬主]  말을 몰고 다니는 사람. 마방군(馬房軍).

마주구성궁[馬周九成宮]  마주(馬周)는 당 태종(唐太宗)의 신하로, 태종이 구성궁(九成宮)으로 행차한다는 말을 듣고, “태상황(太上皇)의 춘추가 높으시니 폐하께서 조석으로 반찬도 살피고 잠자리도 봐드려야 하는데 지금 300리나 떨어진 행궁으로 가시면 열흘이 걸리는 일정이니, 태상황께서 갑자기 보고 싶어 하시면 어떻게 하시겠으며, 또 행궁으로 가는 것은 피서(避暑)하기 위함인데 태상황은 더운 곳에 남겨두고 폐하만 시원한 곳으로 가는 것은 온당치 않은 듯합니다.”라는 내용으로 간한 것을 말한다. <舊唐書 卷74 馬周列傳>

마주배[馬主輩]  말을 몰고 가는 마방군(馬房軍) 무리를 이른다.

마주소[馬周疏]  마주(馬周)의 상소. 태종이 재위에 있은 지 오래되어 밖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안으로 궁실을 지으려고 하자, 마주가 상소를 올려 “반드시 장구한 계책을 도모하고 싶으면 멀리 상고(上古)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다만 정관 초기와 같게만 하라.”라고 하였다. <貞觀政要 卷6 論奢縱>

마주연견[馬周鳶肩]  마주(馬周)는 당(唐) 나라 임평(荏平) 사람으로, 자(字)가 빈왕(賓王)이다. 어려서 고아가 되어 가난하게 살았으나, 학문을 좋아하여 시경(詩經) 및 춘추(春秋)에 조예가 깊었다. 상하(常何)를 대신하여 시무(時務) 20여 조목에 대해 황제에게 진술하였다가 발탁되어 감찰어사(監察御史)를 지냈다. 연견(鳶肩)은 어깨가 매의 양쪽 어깨처럼 위로 불쑥 솟은 것을 이른다. 마주(馬周)는 벼슬이 중서령(中書令)에 이르렀는데, 그는 천성이 광달하여 신중한 데가 없었으므로 사람들이 그것을 낮게 여겼던바, 일찍이 잠문본(岑文本)이 자기 친지에게 말하기를 “마군(馬君)은 솔개의 어깨에 얼굴에는 광채가 나니, 올라가는 데는 반드시 신속하지만 오래 지탱하지 못할 듯하다.[吾見馬君. 然鳶肩火色, 騰上必速, 恐不能久耳.]”고 하더니, 과연 48세의 나이로 죽었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唐書 卷九十八> <新唐書 卷98 馬周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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