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준[馬遵] 송(宋)나라 인종(仁宗) 때 사람으로 자는 중도(仲塗)이다. 낙평(樂平) 사람이다. 인종(仁宗) 때에 이부(吏部) 의 관직을 지냈고,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용도각직학사(龍圖閣直學士)를 지냈다. 성격이 낙천적이고 의론을 잘하였다. <宋史 卷302 呂景初列傳 馬遵>
마중석[馬中錫] 중국 명(明)나라의 문학가이다. 호는 동전(東田)이고, 자는 천록(天祿)이며, 고성(故成) 출신이다. 1475년에 진사가 되어 형과(刑科) 급사중(給事中)에 임명되었고, 1496년에는 우부도어사(右副都御史)가 되었으나 병 때문에 사양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이후 대동순무(大同巡撫)의 벼슬에 있을 때 산둥(山東)과 하북성(河北省)에서 유육(劉六)·유칠(劉七)이 봉기를 일으키자 병사를 통솔하여 진압할 것을 지시받았으나, ‘불러서 위로할 것(招撫)’을 건의하였다가 계책이 성공하지 못하여 적을 놓아주었다는 죄로 옥에 갇혀 죽었다. 문학가 이몽양, 강해 등의 스승이었고, 전칠자(前七子)와 교유하였다. 시문에 능하였고, 산문은 온화하고 막힘이 없으며 기세가 뛰어나고 웅장하였다. 주요작품에 동전만고(東田漫稿) 6권과 소설 중산랑전(中山狼傳)이 있는데, 중산랑전은 왕구사(王九思)의 원본(院本) 중산랑과 강해의 잡극 중산랑에 모두 영향을 주었다.
마중적[馬重績] 마중적(馬重績)의 자(字)는 동미(洞微)로 선조가 북적(北狄) 출신이다. 젊을 때 술수학(術數學)을 익혀 천문역법에 밝았다. 후당(後唐)과 후진(後晉)에서 벼슬하여 사천감(司天監)을 역임하였고 역대의 역법을 참조하고 개정하여 조원력(調元曆)이라는 새 역법을 제정하기도 하였다. 마중적의 열전은 구오대사(舊五代史) 권96, 진서(晉書) 제22 열전(列傳)11과 신오대사(新五代史) 권57 잡전(雜傳) 제45에 실려 있다. 특이한 점은 신오대사는 대개 구오대사의 기록을 축약하는 경우가 많은데, 마중적의 경우는 구오대사의 기록을 거의 그대로 수록하는 한편 앞부분에 구오대사에는 없는 내용을 더 첨가하였다는 것이다. 마중적이 후당 장종(莊宗)에게 앞일을 잘 예측하는 것으로 신임을 받은 점과 후진 고조(高祖)에게 점을 쳐주어 들어맞은 일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구양수(歐陽脩)가 신오대사 사천고에 서술한 사론(史論)에서, 천도(天道)는 다 알 수 없지만 사람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할 뿐 상위(象緯)에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 것을 따져보면, 구양수가 마중적의 이러한 능력을 높이 사서 첨가한 것이라기보다는 마중적이 역법의 추산에 뛰어났음을 드러내는 일화로서 부기한 것인 듯하다.
마중지봉[麻中之蓬] 마중봉(麻中蓬). 삼 가운데 자라는 쑥. 좋은 환경의 감화를 받아 자연히 품행이 바르고 곧게 된다는 비유. 땅위에 나서 옆으로 퍼지는 쑥도 꼿꼿한 삼밭에 나면 지주를 세우지 않아도 자연 곧게 자란다는 뜻으로, 사람에게도 환경이 중요하며, 악도 선으로 고쳐진다는 의미. 악한 사람도 좋은 환경에 있으면 선량해짐. 즉, 좋은 환경(環境)에 있거나 좋은 벗과 사귀면 자연(自然)히 주위(周圍)의 감화(感化)를 받아서 선인(善人)이 됨을 비유(比喩)해 이르는 말이다. 순자(荀子) 권학(勸學)에 “쑥대가 삼밭에서 자라면 붙잡아 주지 않아도 곧게 자란다.[蓬生麻中, 不扶而直.]”라고 한 데서 연유한 것이다.
마즉집륵[馬則執勒] 예기(禮記) 소의(少儀)에 “개는 목줄을 잡는다.[犬則執緤]”라는 말과 “말은 고삐를 잡는다.[馬則執勒]”라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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