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철저[磨鐵杵] 쇠로 만든 다듬이 방망이를 갈아서 침을 만들려 한다[磨鐵杵欲作針]는 뜻으로, 노력(努力)하면 아무리 힘든 목표(目標)라도 달성(達成)할 수 있음을 뜻한다. 송(宋)나라 축목(祝穆)의 방여승람(方輿勝覽) 마침계(磨針溪)에 “마침계는 상이산 아래 있는데, 세상에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태백이 이 산중에서 글을 읽다가 미처 다 성취하기 전에 이곳을 버리고 떠나면서 이 시내를 지나다가, 한 노파가 한창 무쇠 절굿공이를 갈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 까닭을 묻자, 노파가 말하기를 ‘바늘을 만들기 위해 갈고 있다.’고 하므로, 이태백이 그 뜻에 감동을 받아 다시 되돌아가서 학업을 마쳤다고 한다.[在象耳山下 世傳李太白讀書山中 未成棄去 過是溪 逢老媼方磨鐵杵 問之 曰欲作針 太白感其意還 卒業]”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학문에 끝까지 정진하는 것을 비유한다.
마첩[馬帖] 공무(公務)로 여행하는 관리는 각 역에 배치되어 있는 말을 이용할 수 있는데, 이 역마를 이용할 수 있는 증명서를 이른다. 말의 등록 문서. 댓가 또는 상사(賞賜)로 주는 말 대신으로 주는 증서.
마첩[馬䩞] 말안장 장식. 안장이나 길마 밑에 깔아 그 등을 덮어 주는 방석이나 담요 같은 것이다.
마초[馬超] 삼국(三國) 촉(蜀) 무릉(茂陵)사람으로, 자는 맹기(孟起)이다. 후한(後漢) 말기의 명장으로 서량태수(西涼太守) 마등(馬騰)의 아들이다. 아버지를 따라 군사를 일으켜 편장군(偏將軍)이 되었다. 헌제(獻帝) 건안(建安) 16년(211) 한수(韓遂) 등과 연합하여 조조(曹操)를 공격하였으나, 군대가 패하여 양주로 돌아왔다. 뒤에 촉한(蜀漢)의 유비(劉備)에게 귀순하여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에 봉해졌는바, 특히 말을 잘 달렸다. 촉한(蜀漢)이 세워진 이후 표기장군(驃騎將軍)으로 옮겼고 양주를 다스렸다. 태향후(斄鄕侯)에 봉해졌다.
마초[麻草] 마지(麻紙)에 조서(詔書)를 초(草)하는 일을 가리킨다.
마총[馬摠] 당(唐)나라 덕종(德宗) 때의 문신으로 부풍(扶風) 사람이다. 자는 회원(會元), 시호는 의(懿)이다. 벼슬은 안남 도호(安南都護), 회서 절도사(淮西節度使), 호부 상서(戶部尙書)를 역임하였다. 특히 안남에서 벼슬할 때, 안남의 풍속을 유술(儒術)로 교화시킨 공적이 있었다. <舊唐書 卷157 馬摠列傳>
마총[馬總] 당(唐)나라 목종(穆宗) 때 사람이다. 의림(意林) 5권을 지었다.
마최[麻衰] 평상복을 만드는 삼베로 최복(衰服)을 만든 것이다. 최복은 부모나 조부모의 상에 입는 옷이다.
마추[馬鞦] 마소의 안장이나 길마에 딸린 기구로, 마소의 꼬리 밑에 거는 혁대를 가리킨다.
마추[麻秋] 후조(後趙) 태원(太原)의 호인(胡人)으로 석호(石虎)에게 벼슬하여 동정장군(東征將軍)이 되고, 뒤에 진 세자(秦世子) 건(健)에게 피살되었다. <晉書 卷86 張重華列傳>
마축미산[馬畜彌山] 가축이 산에 가득함. 소무(蘇武)가 흉노에 갔을 때 위율(衛律)이 소무를 회유하며 “내가 예전에 한(漢)나라를 저버리고 흉노(匈奴)에 귀순하였는데, 다행히 큰 은혜를 입어서 높은 칭호를 하사받아 왕(王)이라 불리고 수만 명의 병력을 보유하였으며, 말과 가축이 산에 가득하여 부귀함이 이와 같으니, 소군이 오늘 항복하면 내일 다시 나와 같게 될 것입니다.[律前負漢歸匈奴, 幸蒙大恩, 賜號稱王. 擁衆數萬, 馬畜彌山, 富貴如此, 蘇君今日降, 明日復然.]”라고 한 데서 보인다. <漢書 卷54 蘇武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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