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마혁과시[馬革裹屍], 마혁귀시[馬革歸尸], 마혁서심[馬革誓心], 마혁지과[馬革之裹]


마혁[馬革]  마혁(馬革)은 말가죽이라는 말이다. 후한(後漢)의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사나이는 변방의 들판에서 쓰러져 죽어 말가죽에 시체를 싸 가지고 돌아와 땅에 묻히는 것이 마땅하다. 어찌 침상 위에 누워 아녀자의 손에 맡겨서야 되겠는가.[男兒要當死于邊野, 以馬革裹屍還葬耳, 何能臥牀上在兒女子手中耶.]”라고 말한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卷24 馬援列傳>

마혁과시[馬革裹屍]  말의 가죽으로 시체(屍體)를 싼다는 뜻으로, 옛날에는 전사(戰死)한 장수(將帥)의 시체(屍體)는 말가죽으로 쌌으므로 전쟁(戰爭)에 나가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후한(後漢)의 명장(名將)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일찍이 말하기를 “방금 흉노족과 오환족이 아직도 북쪽 변방에 소요를 일으키고 있으니, 내가 자청하여 격퇴시키고 싶다. 남아는 의당 변방에서 죽어 말가죽에다 시체를 싸서 반장하면 그만이지, 어찌 와상에 누워 아녀자의 수중에서 죽을 수 있겠는가.[方今匈奴烏桓尙擾北邊, 欲自請擊之. 男兒要當死於邊野, 以馬革裹屍還葬耳, 何能臥牀上在兒女子手中耶.]”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즉 남아가 뛰어난 충용(忠勇)으로 전장에서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을 말한다. <後漢書 卷24 馬援列傳>

마혁귀[馬革歸]  후한(後漢)의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사나이는 변방의 들판에서 쓰러져 죽어 말가죽에 시체가 실려서 돌아와 땅에 묻히는 것이 마땅하다.[男兒要當死于邊野 以馬革裏尸還葬耳]”고 하였는데, 이후 나라를 위해 변방에 나가 목숨을 바치는 비유로 이 말이 쓰이게 되었다. <後漢書 卷24 馬援傳>

마혁귀시[馬革歸尸]  장수의 죽음을 말한다. 후한(後漢) 때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 이 임금에게 흉노를 정벌할 것을 청하면서 말하기를 “남아는 의당 변방에서 싸우다 죽어 시신이 말가죽에 싸여서 귀장(歸葬) 되어야 합니다.”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後漢書 馬援傳>

마혁서심[馬革誓心]  마혁(馬革)의 맹세. 전쟁터에서 죽어서 돌아올 각오를 말한다. 후한(後漢)의 마원(馬援)이 “사나이는 변방의 들판에서 죽는 것이 마땅이니, 말 가죽 포대 속에 시체를 싸 가지고 돌아와 장사지내면 그뿐이다. 어찌 침상에 누워 아녀자의 손에서 죽을 수가 있겠는가.[男兒要當死於邊野 以馬革囊屍還葬耳 何能臥上在兒女子手中耶]”라고 한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後漢書 馬援傳>

마혁성시[馬革盛尸]  후한(後漢)의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지금 흉노(匈奴)와 오환(烏桓)이 아직도 북쪽 변경을 소란하게 하고 있으니, 자청하여 그를 공격하고자 한다. 남아(男兒)는 마땅히 변경의 들에서 죽어 말가죽으로 시신을 싸서 돌아와 장례해야 하니, 어찌 침상 위에 누워 아녀자의 손안에서 죽겠는가.[方今匈奴, 烏桓尙擾北邊, 欲自請擊之. 男兒要當死於邊野, 以馬革裹尸還葬耳, 何能臥床上在兒女子手中耶.]”고 말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무장(武將)이 전쟁터에서 싸우다가 죽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김을 이른다. <後漢書 卷24 馬援列傳>

마혁지과[馬革之裹]  후한(後漢)의 명장 마원(馬援)이 흉노와 오환(烏桓)을 격퇴하기를 자청하며 “남아는 변방 들판에서 죽어 말가죽으로 시체를 싸서 반장(返葬)해야지, 어찌 침상 위에 누워 아녀자의 손에 죽을 수 있는가.[男兒要當死於邊野, 以馬革裹屍還葬耳.]”라는 말을 남겼다. 마원(馬援)은 무릉(茂陵) 태생으로 자는 광무제의 창업을 도와 복파장군(伏波將軍)으로서 교지(交趾)를 정벌하고 만족(蠻族)의 반란을 평정하였으며 나이 팔십이 넘어서도 군대를 거느렸다. <後漢書 卷24 馬援列傳>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