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강궁[莫莫强弓] 아주 센 활. 아주 단단하고 센 활. 막강지궁.
막막강병[莫莫强兵] 다시없이 강한 군사. 더할 수 없이 강(强)한 군사(軍士). 다할 수 없이 강한 군사. 막강지병(莫强之兵).
막막궁산[莫莫窮山] 인적(人跡)이 없어 적막(寂寞)하도록 깊고 높은 산.
막막궁산[寞寞窮山] 적막하도록 깊고 깊은 산속. 적막강산(寂寞江山).
막막대해[漠漠大海] 끝없이 넓고 아득한 바다. 망망대해(茫茫大海).
막막음음[漠漠陰陰] 당(唐)나라 왕유(王維)의 시 적우망천장작(積雨輞川莊作)에 “아득한 무논에는 백로가 날고, 짙푸른 여름 나무엔 꾀꼬리 울어대네.[漠漠水田飛白鷺, 陰陰夏木囀黃鸝.]”라고 하였다.
막막휴휴[漠漠休休] 막막(漠漠)은 아무 소리도 없는 정적(靜寂)함을 뜻하고, 휴휴(休休)는 아무런 마음을 쓰지 않음으로써 아주 한가롭고 안락함을 이른 말이다.
막망[莫忘] 잊지 마라. 잊어서는 안 된다.
막매노룡새[莫賣盧龍塞] 진자앙(陳子昂)의 시 송저작좌랑최융등종양왕동정(送著作佐郞崔融等從梁王東征)에 “하늘에는 소슬한 가을바람 불고 있고, 이슬 내리기 시작할 때 토벌군이 먼 길 가네. 싸우는 걸 좋아 않는 조정에서 보낸 군대, 그대는 용병할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하시게. 차가운 바닷바람 빼앗긴 남쪽 땅 미칠 테고, 변경의 찬바람도 거란의 북쪽 땅 휩쓸 테니. 노룡새 전주처럼 공 세운 뒤 자랑 말고, 돌아와 기린각에 이름 올릴 생각 말게.[金天方肅殺, 白露始專征. 王師非樂戰, 之子愼佳兵. 海氣侵南部, 邊風掃北平. 莫賣盧龍塞, 歸邀麟閣名.]”라고 한 데서 보이는 구절이다. 전주(田疇)는 후한 말 유주(幽州) 우북평(右北平) 무종(無終) 사람으로, 조조(曹操)가 북정(北征)에 나서 오환(烏桓)을 칠 때, 노룡구(盧龍口)라는 알려지지 않은 길로 진군하라는 계책을 내놓았다. 조조가 그 계책을 따라 대승을 거둔 뒤 상을 주려 하자 전주가 ‘노룡새를 판 것으로 어찌 상을 받을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상 받기를 사양한 것을 가리킨다. 삼국지(三國志) 권11 위서(魏書) 전주전(田疇傳)에 의하면, 조조(曹操)가 북으로 오환(烏桓)을 칠 때 군사들이 무종현(無終縣)에 묵었는데 때마침 비가 와 해변으로 지저분하게 흘러내려 물굽이가 막혀 통하지 않았다. 조조가 그것을 근심하여 전주(田疇)에게 물으니 전주가 “북평(北平) 치소(治所)가 평강에 있고 길이 노룡으로 나서 유성(柳城)까지 닿았는데, 건무(建武: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의 연호) 이래로 허물어지고 단절되어 200년을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작은 길이 있어 갈 만합니다. 이제 오랑캐는 대군(大軍)을 몰고 분명 무종으로 오다가 전진하지 못하고 후퇴하느라 해이해져 무방비일 것이니, 만일 조용히 회군하여 노룡구(盧龍口)로부터 백단(白檀)의 험준함을 넘어 빈 땅으로 나가면 길도 가깝고 편리할 것입니다. 그들의 준비가 미흡한 곳을 불시에 공격하면, 답돈(蹋頓)의 우두머리를 싸우지 않고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北平郡治在平岡, 道出盧龍, 達于柳城;自建武以來, 陷壞斷絕, 垂二百載, 而尚有微徑可從. 今虜將以大軍當由無終, 不得進而退, 懈弛無備. 若嘿回軍, 從盧龍口越白檀之險, 出空虛之地, 路近而便, 掩其不備, 蹋頓之首可不戰而禽也.]”라고 하였다. 조조는 곧 군사를 이끌고 회군함에, 전주를 향도(嚮導)로 삼고 서무산(徐無山)에 올라 노룡으로 나와서 평강을 지나 백룡퇴(白龍堆)에 오르니, 이곳은 유성과 300여 리의 거리였다. 오랑캐가 이에 깜짝 놀랐다. 조조(曹操)가 그 계책을 따라 대승을 거둔 뒤 전주(田疇)를 봉하여 정후(亭侯)로 삼으니, 전주가 “나는 의리를 저버리고 도망하여 숨은 사람이다. 은혜를 입고서 온전히 목숨을 보전하였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그런데 어찌 노룡(盧龍)의 요새를 팔아서 상(賞)과 녹(祿)을 바꾸겠는가.[疇. 負義逃竄之人耳. 蒙恩全活. 爲幸多矣. 豈可賣盧龍之塞. 以易賞祿哉.]”라고 하며 극구 사양하였다. 전주는 자신의 고향에 오환이 침입하여 다수의 고관을 죽인 일 때문에 조조에 협조한 것이다. 나중에 오환에서 요동의 공손강(公孫康)으로 도망갔던 원소(袁紹)의 아들 원상(袁尙)이 효수되자 조조의 엄명에도 불구하고 곡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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