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들은
부자간을 교목과 재목에 비유하였고
형제간을 꽃과 꽃받침에 비유하였으며
친구간을 지초와 난초에 비유하였으니
인륜을 돈독히 하려는 사람은
의당 사물의 본질을 깊이 깨우쳐야 한다.
요즘 사람들은 제생을 수재라 칭하고
공생을 명경이라 칭하며
거인을 효렴이라 칭하니
관리가 되려는 자는 마땅히
이름을 돌아보고 그 뜻을 생각해야 한다.
古人比父子爲橋梓, 比兄弟爲花萼,
고인비부자위교재, 비형제위화악,
比朋友爲芝蘭, 敦倫者, 當即物窮理也.
비붕우위지란, 돈륜자, 당즉물궁리야.
今人稱諸生曰秀才, 稱貢生曰明經,
금인칭제생왈수재, 칭공생왈명경,
稱擧人曰孝廉, 爲士者, 當顧名思義也.
칭거인왈효렴, 위사자, 당고명사의야.
<圍爐夜話위로야화>
- 교목[喬木] 관목(灌木)에 대칭되는 말로 소나무, 잣나무, 버드나무처럼 줄기와 가지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키가 크고 곧게 자라는 나무를 가리킨다. 시경(詩經) 한광(漢廣)에 “남쪽에 교목이 있는데 쉴 수 없으며 한수에 노니는 여자가 있는데 갈 수 없구나. 한수가 넓어 헤엄쳐 갈 수 없으며 강수가 길어서 뗏목 탈 수 없구나.[南有喬木, 不可休息. 漢有游女, 不可求思. 漢之廣矣, 不可泳思. 江之永矣, 不可方思.]”라고 하였다.
- 교목[喬木] 하늘 높이 치솟은 큰 나무. 가지가 무성하게 뻗고 곧게 자란 큰 나무. 여러 대(代)에 걸쳐 중요한 자리에 있으면서 국가와 운명을 함께 한 집안이나 훈구(勳舊)의 신하 또는 국가의 세신(世臣)으로서 누대(累代)에 걸쳐 경상(卿相)을 배출한 명가(名家)를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교목세가(喬木世家). 교목세신(喬木世臣). 맹자(孟子) 양혜왕 하(梁惠王下)에, 맹자(孟子)가 제 선왕(齊宣王)에게 이르기를 “이른바 고국(故國)이란 교목(喬木)이 있음을 말한 것이 아니요, 세신(世臣)이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왕은 친한 신하도 없으십니다. 이전에 등용한 사람 가운데 오늘 도망간 자가 있음을 모르고 계십니다.[所謂故國者, 非謂有喬木之謂也, 有世臣之謂也, 王無親臣矣. 昔者所進, 今日不知其亡也.]”라고 하였는데, 주희(朱熹)의 주(注)에 “교목과 세신은 모두 고국(故國)에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지만, 고국이 되는 이유는 이 세신(世臣)에 있지 저 교목에 있지 않다.”라고 하였다.
- 재목[梓木] 가래나무. 재질이 훌륭한 낙엽수. 가래나무는 옛날 뽕나무와 함께 울타리 밑에 심어 자손에게 물려주었던 고사에서 기인하여, 고향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 되었다. <詩經 小雅 小弁 註>
- 교재[橋梓] 교목(橋木)과 재목(梓木). 교재(橋梓)는 부도(父道)를 나타내는 교목(橋木)과 자도(子道)를 나타내는 재목(梓木)으로, 즉 부자(父子) 또는 부도(父道)와 자도(子道)를 의미한다. 주(周)나라 백금(伯禽)이 아버지인 주공(周公)을 찾아갈 때마다 회초리를 맞고 돌아왔으나 그 이유를 알지 못하다가, 현인(賢人)인 상자(商子)의 가르침을 듣고서, 남산의 양지에 의젓하게 있는 교목을 보고서 부도를 깨닫고, 음지에서 겸손하게 고개 숙인 재목을 보고서 자도를 깨달았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世說新語 排調 注> <文選 任昉 王文憲集序 注> <說苑 建本> 교재(喬梓).
- 교재[喬梓] 교재는 부자(父子)를 뜻하는 말이다. 주(周)나라 때 백금(伯禽)이 숙부인 강숙(康叔)과 함께 아버지 주공(周公)을 세 번 찾아뵈었는데 세 번 모두 주공에게 매를 맞았다. 강숙이 놀라서 백금에게 말하기를 “상자(商子)라는 사람이 있는데 현인(賢人)이다. 가서 만나 보자.”고 하였다. 상자를 만나 그 까닭을 물으니, 상자가 말하기를 “남산(南山) 남쪽에 나무가 있으니, 그 이름이 교(喬)이다. 그대들은 가서 보라.”고 하였다. 이에 두 사람이 가서 보니 과연 교라는 나무가 높이 서 있었다. 이에 돌아와 상자에게 말하니, 상자가 말하기를 “교(喬)는 부도(父道)이다. 남산의 북쪽에 재(梓)라는 나무가 있으니, 그대들은 다시 가서 보라.”고 하였다. 두 사람이 가서 보니 과연 재라는 나무는 낮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에 돌아와 상자에게 말하니, 상자가 말하기를 “재(梓)는 자도(子道)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두 사람이 다음 날 주공을 찾아뵙고 공경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앉으니, 주공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위로하고 음식을 주며 말하기를 “네가 어디서 군자(君子)를 만났느냐?”라고 하였다. <尙書大全 卷4>
- 화악[華萼] 꽃과 꽃받침. 화악(華鄂)과 같은 말이다. 화악(花萼)의 악(萼)은 곧 꽃을 받치고 있는 꽃받침을 말하는데, 꽃과 꽃받침은 본디 한 가지에서 나왔다 해서 형제간의 우애(友愛)를 뜻한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상체(常棣)에 “아가위 꽃이여, 그 꽃받침이 어찌 빛나지 않으리. 무릇 세상 사람은 형제보다 좋은 것이 없네.[常棣之華 鄂不韚韚 凡今之人 莫如兄弟]”라고 하였다. 그래서 세상에서 형제를 말하게 되면 매양 화악(華鄂)을 들어 비유한다. 상체(常棣)는 중국 주(周)나라 때에 주공(周公)이 지은 것이라 하는데,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 화악[花萼] 화악(花萼)의 악(萼)은 곧 꽃을 받치고 있는 꽃받침을 말하는데, 꽃과 꽃받침은 본디 한 가지에서 나왔다 해서 형제간의 우애(友愛)와 화합을 뜻한다. 시경(詩經) 상체(常棣)에 “아가위의 꽃은 꽃받침이 화사하지 않은가? 무릇 지금 사람들은 형제 같은 사람이 없네.[常棣之華, 鄂不韡韡? 凡今之人, 莫如兄弟.]”라고 하였다. 당 현종(唐玄宗)이 일찍이 이 뜻을 취하여 흥경궁(興慶宮) 서남쪽에 화악상휘지루(花萼相輝之樓)를 세우고 여러 아우들과 이 누각에 올라 함께 즐기며 우애를 돈독히 하였다고 한다. <舊唐書 睿宗諸子 讓皇帝憲列傳> 萼(악)은 卾(악)과 통용한다.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 원회사제영관등(遠懷舍弟穎觀等)에 형제의 이별을 슬퍼하는 뜻을 표현하여 “구름 낀 하늘은 여전히 흐릿하고 꽃봉오리는 쓸쓸히 성글어라.[雲天猶錯莫, 花萼尙蕭踈.]”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두시언해(杜詩諺解)에 ‘운천(雲天), 즉 구름 낀 하늘은 안항(雁行)으로 일컬어지는 기러기를 사용하여 형제에 비겼고, 화악(花萼), 즉 꽃봉오리는 시경(詩經) 소아(小雅) 상체(棠棣)를 사용하여 역시 형제를 비유하였다.’고 하였다.
- 지란[芝蘭] 지란(芝蘭)은 두 향초(香草)인 백지(白芝)와 난초(蘭草)를 합칭한 것으로, 높고 훌륭하며 맑고 깨끗한 인품 또는 현사(賢士)의 처소나 훌륭한 친구를 비유할 때 주로 쓰는 말이다. 공자가어(孔子家語) 권4 육본(六本)에 “착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치 지초와 난초의 방에 들어간 것 같아서 오래되면 그 향기는 맡지 못하더라도 곧 동화되고, 불선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치 절인 어물 가게에 들어간 것 같아서 오래되면 그 냄새는 맡지 못하더라도 또한 동화하게 된다.[與善人居, 如入芝蘭之室, 久而不聞其香, 卽與之化矣, 與不善人居, 如入鮑魚之肆, 久而不聞其臭, 亦與之化矣.]”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 지란[芝蘭] 지초(芝草)와 난초(蘭草). 남의 집안의 훌륭한 자제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진(晉)나라 때 큰 문벌을 이루었던 사안(謝安)이 자질(子姪)들에게 “어찌하여 사람들은 자기 자제가 출중하기를 바라는가?”라고 묻자, 조카 사현(謝玄)이 “비유하자면 마치 지란과 옥수가 자기 집 뜰에 자라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譬如芝蘭玉樹, 欲使其生於階庭耳.]”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晉書 卷79 謝安列傳 謝玄> <世說新語 言語> 참고로, 송(宋)나라 소옹(邵雍)의 시 감사음[感事吟]에 “지란은 심어도 잘 자라지 않고, 형극은 베어도 사라지지 않네. 두 가지 일 모두 어찌할 수 없어, 배회하노라니 해가 저물려 하네.[芝蘭種不榮, 荊棘剪不去. 二者無奈何, 徘徊歲將暮.]”라고 하였다.
- 돈륜[敦倫] 돈목인륜(敦睦人倫). 정의(情誼)를 두텁게 하다. 부부 생활을 하다.
- 궁리[窮理] 사물의 이치를 깊이 연구함. 좋은 도리를 발견하려고 이모저모 생각함. 일을 처리하거나 개선하기 위하여 마음속으로 이리저리 따져 깊이 생각함. 일이나 물건을 처리하거나 밝히기 위하여 따져 헤아리며 이치를 깊이 연구함. 정주학(程朱學)에서 사물의 도리·원칙을 연구하여 일관된 이치를 찾는 것. 모든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연구해 아는 것. 격물치지(格物致知). 대학혹문(大學或問)의 격물조(格物條)에 “지식을 지극히 하는 도리는 일에 나아가 이치를 살펴서 대저 사물의 이치를 궁구함에 있다.[致知之道, 在乎卽事觀理, 以格夫物.]”라고 하였다.
- 궁리[窮理] 궁리(窮理)는 외적 수양 방법을 가리키는 말이다. 인간에게 품부된 천명으로서의 선성이 이미 욕심의 영향을 받아 굴절되려고 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순수하고 곧게 발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적극 노력하는 수양법으로, 격물(格物)을 통해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것을 말한다. 주역(周易) 설괘전(說卦傳)에 “물리(物理)를 궁구하고 인성(人性)을 극진히 하여 모든 근원인 천명(天命)에 이른다.[窮理盡性, 以至於命.]”라고 하여, 궁리(窮理)라는 말이 여기에 유일하게 나온다.
- 즉물궁리[卽物窮理] 사물에 나아가 그 이치를 궁구함[卽物而窮其理]. 주자(朱子)가 대학장구(大學章句) 보망장(補亡章)에서 격물(格物) 두 자를 해석하면서 “근자에 정자(程子)의 뜻을 가져다가 빠진 부분을 다음과 같이 보충하였다. 이른바 ‘지식을 지극하게 하는 일은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는 데 있다.’라는 말은 나의 지식을 지극하게 하고자 한다면 사물에 나아가 그 이치를 궁구하는 데 달려 있다는 말이다. 사람 마음의 영특함은 무엇이든 알지 못함이 없고, 천하의 사물은 이치가 있지 않음이 없건마는 다만 이치에 대해 궁구하지 않는 데가 있기 때문에 그 지식이 다하지 못함이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학에서 처음 가르칠 때에 배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천하의 사물에 나아가서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이치를 통해서 더욱 궁구함으로써 그 궁극에 이르도록 노력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래 힘을 써서 하루아침에 확 트이듯 관통함에 이르게 되면, 모든 사물의 밖과 속, 정밀함과 거침이 다 이르지 않음이 없을 것이요, 내 마음의 전체와 대용이 다 밝아질 것이니, 이것을 ‘물격’이라고 하고, ‘지식이 지극하다.’고 말하는 것이다.[間嘗竊取程子之意以補之曰. 所謂致知在格物者, 言欲致吾之知, 在卽物而窮其理也. 蓋人心之靈, 莫不有知, 而天下之物, 莫不有理, 惟於理, 有未窮, 故其知有不盡也. 是以大學始敎, 必使學者, 卽凡天下之物, 莫不因其已知之理而益窮之, 以求至乎其極, 至於用力之久而一旦豁然貫通焉, 則衆物之表裏精粗, 無不到, 而吾心之全體大用, 無不明矣, 此謂物格, 此謂知之至也.]”라고 한 데서 보인다.
- 육과[六科] 당송(唐宋) 시대에 과거를 실시하여 인재를 선발하는 여섯 가지 과목으로, 명경(明經)·진사(進士)·수재(秀才)·명법(明法)·명서(明書)·명산(明算)을 이른다.
- 제생[諸生] 명(明)·청(淸) 시대에 성(省)에서 실시하는 각종 고시(考試)에 합격한 다음 중앙을 비롯하여 지방의 부(府)·주(州)·현(縣)의 학교에 소속되었던 생원(生員)이다. 증생(增生)·부생(附生)·늠생(廪生)·예생(例生) 등의 구분이 있었다.
- 제생[諸生] 여러 학생(學生). 여러 유생(儒生). 동년배(同年輩) 문인(文人)들. 제생(諸生)은 공부하는 유생(儒生)으로 아직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을 때에 부르는 호칭. 온갖 생물.
- 수재[秀才] 학문과 재능이 매우 뛰어난 사람. 머리가 좋고 재주가 뛰어난 사람. 예전에 미혼(未婚) 남자를 높여 이르던 말. 서생(書生)의 통칭. 관리를 채용할 때 시험하던 과목(科目), 또는 그 과목에 합격한 사람. 뛰어난 재능이 있는 자로서 천거된 사람으로 관리 등용의 한 과목(科目). 한(漢)나라 때 효렴(孝廉)과 함께 과거과목의 이름이었으며, 당(唐)·송(宋) 때는 과거(科擧)에 응시하는 사람을 수재(秀才)라 일컬었고, 명(明)·청(淸) 시대에는 현학(縣學)에 들어가는 생원(生員)을 일컫던 말이다. 청국행정법범론(淸國行政法汎論)에 의하면, 생원에는 부생(附生), 늠생(廪生), 공생(貢生)의 구별이 있으나, 세간에서 통틀어 수재라 부른다고 하였다. 본래 수재는 재능이 빼어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후대에는 과거에 응시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명청(明淸) 시대에는 원시(院試: 지방에서 시행하는 과거시험의 일종)에 합격하여 공식적으로 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사람들, 즉 생원(生員)의 속칭으로 사용되었다. 수재가 되어야만 비로소 사대부 계층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
- 공생[貢生] 중국에서 과거를 시행하던 시대에 부(府)·주(州)·현(縣) 등 지방에 있는 학교의 생원(生員) 중에서 학문과 행실이 뛰어난 사람을 뽑아 경사(京師)에 보내 태학(太學)에 입학시켰는데, 이에 선발된 사람을 공생이라 한다. 이에는 부공(副貢)·발공(拔貢)·우공(優貢)·세공(歲貢)·은공(恩貢) 등의 구별이 있다. <淸會典 禮部>
- 공생[貢生] 중국의 과거제도에서 각 부(府), 주(州), 현(縣)에서 뽑힌 생원(生員), 즉 수재(秀才)로 국자감(國子監)에 들어가 과업을 이어가는 사람을 말한다. 중앙에서 치르는 과거를 볼 수 있는 자격을 가진다.
- 공생[貢生] 향교(鄕校)의 교생(校生). 향교의 유생(儒生). 조선 시대 향교(鄕校)에 다니던 생도(生徒). 원래 상민(常民)으로 향교(鄕校)에서 오래 공부하면 유생(儒生)의 대우를 받았으며, 우수한 자는 생원(生員) 초시(初試)와 생원(生員) 복시(覆試)에 응할 자격을 얻었다. 나중에는 향교의 심부름꾼으로 변하였다.
- 명경[明經] 경학(經學)에 밝다. 한(漢)나라 때는 경학에 밝은 사람들을 박사(博士)로 등용했다. 과거 시험의 한 분과로 경전에 밝은 사람을 강경(講經)을 통해 선발하는 것이다. 문장을 짓는 능력으로 선발하는 것은 제술(製述)이라 한다. 조선 시대에는 통상 생원시를 명경, 진사시를 제술이라 불렀는데, 진사를 더 우대하는 경향이 있었다.
- 명경[明經] 명경과(明經科)를 이르는데, 명경과(明經科)는 여러 경서(經書)로 시험하였다. 본래는 진사과(進士科)가 중용되었으나, 왕안석(王安石)이 집권한 이래 경세치용(經世致用)을 중시하여 명경과(明經科)에서 주로 선비를 선발하였다. 수대(隋代)에 처음 시작되었는데 송대(宋代)에도 그대로 인습하였다. 조선조(朝鮮朝)의 생원시(生員試)와 문과(文科)의 사서의(四書疑)나 삼경의(三經義)가 여기에 해당된다 하겠다. 사서의(四書疑)는 사서(四書) 가운데 한 구(句)를 들어 문제를 내면 이에 답하는 형식이고, 삼경의(三經義)는 삼경(三經) 가운데에서 뜻을 물어 답안을 취하는 형식이다. 조선 전기에는 명경과(明經科)가 문과(文科)의 일종으로, 경학(經學)에 밝은 인재를 뽑는 시험이었다. 그러나 영조 22년(1746) 이후에는 이를 따로 시행하지 않고 식년(式年) 문과 속으로 통합시켰다.
- 명경[明經] 경술(經術)을 밝힌 것으로, 한(漢)나라 때 인재를 선발하던 과거의 하나이다. 일지록(日知錄) 16에 “당(唐)나라 제도로는 육과(六科)가 있어 각각 수재(秀才), 명경(明經), 진사(進士), 명법(明法), 서(書), 산(算)이 있었으니, 그 당시에 시부(詩賦)로 뽑힌 이를 진사(進士)라 하였으며, 경의(經義)로 뽑힌 이를 명경(明經)이라 하였다.”고 하였다. 또 “당(唐)나라 때 벼슬길에 나아가는 수로서는 명경(明經)이 가장 많았는데 시험을 치르는 방식은 응시자에게 주(注)·소(疏)까지 모두 쓰게 하였으니, 이를 첩괄(帖括)이라고 하였다.”고도 하였다. 한(漢)나라 때의 옛 의례로서는 “자사(刺史)가 천거하는 평민으로 무재(茂材)가 있는데 그 이름을 승상(丞相)에게 보내면 승상(丞相)이 시험을 치르게 하고 선발하였는데, 취명경(取明經)의 일과(一科)와 명률령(明律令)의 일과(一科)와 능치극(能治劇)의 일과(一科)에서 각각 한 사람씩이었다.”고 하였으니, 명경(明經)으로 선비를 뽑은 것은 한(漢)나라 때부터 이미 그러했다. 문선(文選) 영명구년책수재문(永明九年策秀才文)의 이주한(李周翰)의 주석에 “고제명경(高第明經)이란 덕행이 몹시 뛰어나고 경국지도(經國之道)에 밝음이 제일간다는 뜻이다.”라고 하였으므로, 육조(六朝)시대의 명경(明經)은 당(唐)나라 때와는 구별되는 바가 있다.
- 거인[舉人] 거인(擧人). 수(隋)·당(唐)·송(宋) 시대에는 각 지방에서 추천하여 수도로 가서 과거에 응시하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었다. 명청(明淸) 시대에는 향시(鄕試)에 합격하여 중앙에서 실시하는 회시(會試)에 응시(應試)할 자격을 가진 자를 이른다. 향시(鄕試)에 합격한 사람에게 수여되었던 자격으로 명(明) 나라 때에는 고정된 지위가 되어 몇 번의 회시(會試)를 볼 수 있었고 회시 후에 낙방자를 모아 특별시험을 치르게 하여 성적이 상위인 자를 관리로 임명하는 제도도 있었다.
- 거인[擧人] 성시(省試)에 참가하는 응시생을 말한다. 당(唐)나라 때에는 과거 응시생에 두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조정에 설치한 국자감·홍문관·숭문관과 주(州)·현(縣)의 학관(學館)의 학생들이다. 이 학생들이 학교에서 보는 시험에 합격한 뒤 상서성(尙書省)에서 보는 과거 시험을 성시(省試)라고 한다. 다른 하나는 학관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향공(鄕貢)이라 부르는 일반 독서인(讀書人)이다. 이들은 자신이 사는 주·현에서 시행하는 시험에 합격한 뒤에 장안(長安)으로 가서 상서성에서 실시하는 성시에 참가하였다.
- 거인[擧人] 시취(試取)에는 뽑혔으나 아직 보직되지 않고 있는 사람. 천거를 받아 과시(科試)에 응하는 선비. 한(漢) 때에 수령의 천거를 받아 과시(科試)에 응하는 선비를 말한 것인데, 후세에 와서는 과거보는 사람을 일반적으로 거인이라고 하였다. 한대에는 일정한 고시법(考試法)이 없고 모두 군국(郡國)의 수재(守宰)들로 하여금 서로 천거하게 하였다.
- 효렴[孝廉] 향시(鄕試)를 마친 거인(擧人). 본래 한대(漢代)에 관리를 선발하는 두 가지 과목(科目)으로, 효(孝)는 효자(孝子)를 가리키고 염(廉)은 염결(廉潔)한 선비를 가리킨다. 한 무제(漢武帝) 원광(元光) 원년(元年)에 군국(郡國)에 영(令)을 내려 효(孝)와 렴(廉) 각각 1인을 천거하게 하였다가 뒤에는 효렴(孝廉)이라고 합칭하였는데, 역대로 습용(襲用)하여 주(州)에서는 수재(秀才)를 천거하고 군(郡)에서는 효렴(孝廉)을 천거하게 되었다. 명(明)·청(淸) 때에는 천거된 사람을 이렇게 불렀다.
- 효렴[孝廉] 효(孝)는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고, 염(廉)은 청렴한 선비를 이르는데, 옛날에 인재를 선발하는 과목(科目)이었다. 이는 한(漢)나라 때에 비롯되었고, 동한(東漢) 때에 와서는 벼슬을 구하는 자가 반드시 거처야 할 길이 되었는데, 후세에 왕왕 이를 합하여 일과(一科)로 삼았다. 또한 이를 통해 선발된 사람을 지칭하기도 한다. 한서(漢書) 6권 무제본기(武帝本紀)에 “원광(元光) 원년 겨울 11월에 처음으로 군국(郡國)으로 하여금 효렴(孝廉) 각 1인씩 천거하도록 하였다.[元光元年冬十一月, 初令郡國舉孝廉各一人.]”라고 하였다. 안사고(顏師古)의 주에는 “효(孝)는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이고, 염(廉)은 깨끗하고 염치가 있는 자를 말한다.”라고 하였다.
- 효렴[孝廉] 효행(孝行)과 염직(廉直). 효성스럽고 청렴(淸廉)한 사람. 인재를 천거하는 과목(科目). 효렴(孝廉)은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에 처음 거행된 인재 선발 제도로, 효행이 있고 청렴결백한 자들을 전국 각지로부터 추천받아 책문(策問) 시험을 보여 선발하였다. 혹은 거기에 선발된 사람을 뜻한다. 서한(西漢)에서 처음 시작할 때에는 효와 염을 구분하여 천거하였는데, 동한(東漢) 때에 와서는 왕왕 그 둘을 합쳐서 1과(科)로 시행하곤 하였다. 양한(兩漢) 시대뿐만 아니라, 당(唐)·송(宋) 이후에도 가끔 시행되었는데, 청대에는 효렴방정과(孝廉方正科)라 하였다.
- 사의[思義] 정의(正義)의 길을 그려 생각함. 논어(論語) 계씨(季氏)에 “볼 때는 밝게 보기를 생각하고, 들을 때는 밝게 듣기를 생각하고, 얼굴빛은 온화하기를 생각하고, 용모는 공손하기를 생각하고, 말할 때는 충성되기를 생각하고, 일할 때는 조심하기를 생각하고, 의심날 때는 묻기를 생각하고, 분노할 때는 어려움을 생각하고, 얻을 것을 보고서는 마땅히 가질 것인가를 생각하라.[視思明, 聽思聰, 色思溫, 貌思恭, 言思忠, 事思敬, 疑思問, 忿思難, 見得思義.]”라고 한 데서 보이고, 논어(論語) 헌문(憲問)에, 자로(子路)가 성인(成人)을 물으니, 공자가 말하기를 “지금의 완성된 사람은 어찌 굳이 그러할 것이 있겠는가? 이(利)를 보고 의(義)를 생각하며, 위태로움을 보고 목숨을 바치며, 오랜 약속에 평소의 말을 잊지 않는다면 또한 완성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今之成人者, 何必然. 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不忘平生之言, 亦可以爲成人矣.]”라고 한 데서 이고, 논어(論語) 자장(子張)에 “선비가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며, 얻을 것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며, 제사에는 공경을 생각하고, 상사에는 슬픔을 생각한다면 괜찮을 것이다.[士見危致命, 見得思義, 祭思敬, 喪思哀, 其可已矣.]”라고 한 데서 보인다. 여기에 주희(朱熹)가 주를 내면서 ‘다한 것이다.[已矣]’라는 구절을 ‘거의 괜찮다.[庶乎其可矣]’라고 풀이하였다. 또, 삼국지 위지(三國志魏志) 권27 왕창전(王昶傳)에, 왕창(王昶)이 자신의 아들과 조카의 이름을 지어주며 당부하기를 “내 너희들이 입신하고 처신함에 유가의 가르침을 따르고 도가의 말을 실천하게 하고자 하였으므로 현·묵·충·허로 이름을 지었으니, 너희들로 하여금 이름을 돌아보고서 그 뜻을 생각하여 감히 어기지 못하게 하고자 함이다.[欲使汝曹立身行己, 遵儒家之教, 履道家之言, 故以玄默沖虛爲名, 欲使汝曹顧名思義, 不敢違越也.]”라고 한 데서 보인다.
- 고명사의[顧名思義] 명예(名譽)를 돌아보고 의(義)를 생각함(어떤 일을 당하여 그것이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 아닌지 또는 의리에 어긋나는 일이 아닌지 돌이켜 봄). 이름을 보고 그 뜻을 생각함(사람의 이름을 지을 때에는 글자 하나하나에 좋은 뜻을 담아서 짓는데, 이름의 주인이 자신의 이름을 돌아보고 그 뜻을 생각하며 살아감). 삼국시대 위(魏)나라 사람인 왕창(王昶)은 근후(謹厚)한 사람으로, 정직하였으며, 명예과 절조(節操)를 중시하였다. 왕창은 형의 아들과 자기 아들에게 이름과 자(字)를 지어 주었는데, 형의 아들의 이름은 묵(默)이고 자는 허정(處靜)이며, 또 한 명의 이름은 심(沈)이고 자는 허도(處道)이고, 그의 아들은 이름이 혼(渾)이고 자가 현충(玄沖)이며, 또 한 명의 이름은 심(深)이고, 자는 도충(道沖)이다. 왕창은 또 문장을 써서 그들에게 경계시키기를 “내가 유가의 가르침과 도가의 말에 따라 너희들에게 이름을 현묵충허(玄默冲虛)로 지어준 것은 너희들이 이름을 돌아보고 뜻을 생각하며 감히 어기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옛사람은 세숫대야에 다짐하는 말을 새기고 지팡이에 경계하는 말을 써놓고 항상 보았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하물며 자기 이름의 의미를 주의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무릇 모든 사물은 속성질망(速成疾亡: 빨리 성공하면 빨리 망함)하고 만취선종(晩就善終: 늦게 성취해야 끝이 좋음)하기 마련이다. 아침에 피는 꽃은 저녁이면 시들고 무성한 송백은 혹한에도 쇠하지 않는 법이다. 그러므로 고상한 군자는 빨리 완성되는 것을 싫어한다.[欲使汝曹立身行己, 遵儒者之教, 履道家之言, 故以玄默冲虛爲名, 欲使汝曹顧名思義, 不敢違越也. 古者盤杅有銘, 几杖有誡, 俯仰察焉, 用無過行. 況在己名, 可不戒之哉. 夫物速成則疾亡, 晩就則善終, 朝華之草, 夕而零落. 松柏之茂, 隆寒不衰. 是以大雅君子, 惡速成.]”라고 하였다.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왕창전王昶傳>
- 고명사의[顧名思義] 자신의 이름을 돌아보고 그 뜻을 생각하며 살아감. 어떤 일을 당하여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 아닌지 돌이켜 보고[顧名], 또한 의리에 어긋나는 일이 아닌지 생각[思義]한다. 왕창(王昶)은 삼국시대(三國時代) 위(魏)나라 태원(太原) 진양(晉陽) 사람으로 자는 문서(文舒)이다. 태자문학(太子文學)으로 벼슬을 시작했다. 조조(曹操)의 아들 조비(曹丕)의 스승으로 있었다. 왕창은 명예와 절조를 중시하여 자기의 아들이나 조카들에게 이름을 지어줄 때에도 그 의미를 생각하였다. 형의 아들 왕묵(王默)은 자(字)가 처정(處靜), 왕침(王沈)은 처도(處道)이었고, 아들 왕혼(王渾)의 자(字)는 현충(玄沖), 왕심(王深)의 자는 도충(道沖)이었다. 그가 아들과 조카들에게 편지를 써 경계하기를 “내가 유가의 가르침과 도가의 말에 따라 너희들에게 이름을 현묵충허(玄默冲虛)로 지어준 것은 너희들이 이름을 돌아보고 뜻을 생각하며 감히 어기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옛사람은 세숫대야에 다짐하는 말을 새기고 지팡이에 경계하는 말을 써놓고 항상 보았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하물며 자기 이름의 의미를 주의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欲使汝曹立身行己, 遵儒者之教, 履道家之言, 故以玄默冲虛爲名, 欲使汝曹顧名思義, 不敢違越也. 古者盤杅有銘, 几杖有誡, 俯仰察焉. 用無過行, 況在己名, 可不戒之哉.]”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三國志 魏志 卷27 王昶傳>
【譯文】 橋梓花萼, 以物喻理. 秀才孝廉, 求名副實.
古時候的人, 把“父子”比喻為喬和梓木, 把“兄弟”比喻為花與萼, 將“朋友”比為芝蘭香草, 因此, 有心想敦睦人倫的人, 由萬物的事理便可推見人倫之理. 現在的人稱讀書人為“秀才”, 稱被舉薦入太學的生員為“明經”, 又叫舉人為“孝廉”, 因此讀書人可以就這些名稱, 明白自己應有的內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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