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수호상자 이팽조위요[莫壽乎殤子 而彭祖爲夭] 일찍 죽은 아이보다 장수(長壽)한 사람이 없고 8백 년을 살았다고 하는 팽조(彭祖)는 가장 일찍 죽은 것임. 상자(殤子)는 미성년(未成年)으로 일찍 죽은 아이를 이르고, 팽조는 800세를 살았다는 전설상의 신선이다. 성현영(成玄英)은 “태어나 강보에 싸인 채로 죽은 아이를 상자(殤子)라고 한다.[人生在於襁褓而亡, 謂之殤子.]”고 하였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천하에는 털끝보다 더 큰 것이 없을 수 있는 반면에 태산이 작은 것이 될 수도 있고, 요절한 아이보다 더 장수한 이가 없을 수 있는 반면에 800세를 산 팽조를 요절했다고 할 수도 있다.[天下莫大於秋毫之末而大山爲小, 莫壽乎殤子而彭祖爲夭.]”라고 한 데서 보인다.
막시[莫是] 의문사이다. ~하는 것은 아니겠는가. ~아니다.
막신어천 막부어지 막대어제왕[莫神於天 莫富於地 莫大於帝王] 하늘보다 신묘한 것이 없고 땅보다 풍부한 것이 없고 제왕보다 위대한 것이 없음. 장자(莊子) 제13편 천도(天道)에서 보인다. 노자(老子) 제25장의 “도(道)가 크고 하늘이 크고 땅이 크고 왕 또한 크다. 이 세상에 큰 것이 네 가지 있는데 그중에 왕이 하나를 차지한다[道大 天大 地大 王亦大 域中有四大 而王居其一焉].”라고 한 말과 유사한 맥락이다.
막심수[莫深愁] 너무 근심하지 말라. 두보(杜甫)의 시 강상치수여해세요단술(江上値水如海勢聊短述)에 “나는 성질이 아름다운 시구를 지나치게 좋아해, 남을 놀래키지 못하면 죽어도 마지않는데, 늘그막의 시편은 다 부질없는 흥취일 뿐이니, 봄이 오매 꽃과 새들은 너무 시름하지 말거라.[爲人性癖耽佳句 語不驚人死不休 老去詩篇渾謾興 春來花鳥莫深愁]”라고 한 데서 보인다.
막야[莫邪] 막야(莫邪)는 보검 이름으로, 옛날에 오(吳) 나라의 무고(武庫) 안에 두 마리의 토끼가 있어서 무기의 쇠를 모두 먹어치웠는데, 이를 잡아 배를 가르니 쇠로 된 쓸개가 나왔다. 이에 오왕이 검공(劍工)에게 명해서 이 쓸개로 검 두 개를 만들게 하였는데, 하나는 간장(干將)이고, 하나는 막야(莫邪)이다. <拾遺記 卷10>
막야[莫邪] 옛날 칼 이름. 춘추 시대 오(吳) 나라 간장(干將)이란 사람이 칼을 만들 때 철즙(鐵汁)이 흘러내리지 않자, 그의 아내 막야가 노신(爐神)을 불러 철즙이 흐르도록 한 후에 칼 두 개를 만들어서 한 개는 간장검(干將劍), 한 개는 막야검(莫邪劍)이라고 했다는 고사가 있다. 이것이 소위 자웅검(雌雄劍)이라는 것이다.
막야[莫邪] 인명 또는 보검의 이름. 오월춘추(吳越春秋) 권4 함려내전(闔閭內傳)에서 “오왕 합려가 간장을 시켜 검을 주조하게 했는데 철물이 내리지 않자 그의 아내 막야가 가마에 몸을 던진 뒤 철물이 내려와 검 두 개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자웅 두 개의 검에 각각 간장과 막야라는 이름을 붙였다.[吳王闔閭使干將鑄劍, 鐵汁不下, 其妻莫邪自投爐中, 鐵汁乃出, 鑄成二劍. 雄劍名干將, 雌劍名莫邪.]”라고 하였다.
막야[莫邪] 천하의 명검(名劍)이다. 순자(荀子) 성악(性惡)에, 오(吳)나라에 간장(干將)이란 대장간의 명장(名匠)이 있었는데 그가 만든 검(劍)은 야물고 잘 들기로 소문이 파다했다. 오나라 왕(王) 합려(闔閭)는 그에게 값이나 시간을 따지지 말고 두 자루의 명검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간장은 정선(精選)한 청동(靑銅)과 선철(銑鐵)을 구하여 고로(敲爐)에 넣고 3년간 열을 가했으나 쇳물이 되지 않았다. 고심하던 중에 그의 아내 막야(莫耶)가 꿈에서 얻은 비법으로 자기의 머리털과 손톱을 깎아서 용광로에다 넣고 300명의 어린 소녀들로 하여금 풍구를 불게 하였더니 며칠 만에 쇳물로 녹아내렸고 간장은 두 자루의 검을 빚었다. 한 자루에는 간장(干將)이라고 검의 이름을 새겨 넣고 또 한 자루에는 막야(莫耶)라고 새겼는데 천하의 명검의 반열(班列)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막야[鏌鎁] 명검(名劍)의 이름이다. 수신기(搜神記)에 “초(楚)나라의 간장(干將)·막야(莫耶: 鏌鎁) 부부가 왕을 위하여 자웅(雌雄) 두 검을 만들었는데, 3년 만에야 완성하니 왕이 노하여 죽이려 하였다. 왕에게 가기에 앞서 지아비가 아내에게 왕이 노하여 나를 죽일 것이라고 하며 웅검(雄劍)을 감추어 두고 감춘 곳을 가르쳐 주고서 자검만을 가지고 가니, 왕이 노하여 그를 죽였다. 막야의 유복자 적비(赤比)가 커서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일을 물어 알고서 막야검을 찾아 얻고 밤낮으로 복수할 것을 생각하였는데, 왕이 한 아이가 왕에게 복수하려 한다고 말하는 꿈을 꾸고서 천금을 걸고 찾으니, 적비가 도망하여 산에 들어갔다. 산에서 만난 길손의 물음에 지난 얘기를 하니, 길손이 네 머리와 검을 가지고 가서 복수해 주겠다고 하므로 응낙하고 자진하였다. 길손이 그 머리를 가지고 왕에게 가니 왕이 매우 기뻐하였는데, 길손이 말하기를 ‘이것은 용사(勇士)의 머리이니 솥에 삶아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그대로 하였는데, 사흘이 지나도 삭지 않고 탕(湯)에서 머리가 솟아나와 눈을 부릅뜨고 크게 노하였다. 길손이 ‘그 아이의 머리가 삭지 않는데, 왕께서 가서 보시면 삭을 것입니다.’라고 하므로 왕이 가까이 갔는데, 길손이 검을 왕의 목에 댔더니 왕의 머리가 탕 안으로 떨어졌다. 길손도 제 목에 검을 대어 머리가 또 탕 안으로 떨어지니, 머리 셋이 함께 삭아서 식별할 수 없으므로 탕육(湯肉)을 나누어서 장사지냈다.”라고 하였다.
막야[鏌鋣] 명검(名劍)의 이름. 莫邪(막야)로 표기된 문헌도 있다. 순자(荀子) 성악(性惡)편에는 ‘오왕(吳王) 합려(闔閭)가 가지고 있었던 보물[闔閭之干將莫邪]’이라는 기록만 보이고, 오월춘추(吳越春秋)와 세설신어(世說新語) 등에는 “오나라 사람 간장(干將)이 오왕 합려의 부탁으로 검 두 자루를 만들었는데 그 아내 이름이 막야(莫邪)였기 때문에 양검(陽劍)을 간장(干將)이라 하고 음검(陰劍)을 막야(莫邪)라고 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참고로, 장자(莊子) 경상초(庚桑楚)에 이르기를 “무기로는 뜻을 손상시키는 것보다 예리한 것이 없다. 막야 같은 명검도 뜻을 손상시키는 것보다 무딘 것이다.[兵莫憯於志, 鏌鎁爲下.]”라고 하였다.
막야[莫耶] 춘추(春秋) 시대 오(吳)나라 간장(干將)의 아내이다. 오왕(吳王) 합려(闔廬)가 간장으로 하여금 칼을 만들게 하였는데, 철즙(鐵汁)이 흐르지 아니하였다. 그래서 그 아내 막야(莫耶)는 “철즙이 흐르지 않는 것은 웬 일인가.”라고 하니, 간장은 말하기를 “우리 스승 구야자의 말씀이 ‘칼이 녹지 않을 경우에는 여자를 풀무 속에 넣으면 된다.’고 하였다.”라고 하니, 막야는 그 말을 듣고 풀무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래서 철즙이 흘러서 칼 두자를 만들었는데, 하나는 이름을 간장이라 했고, 하나는 이름을 막야라 했다 한다. <吳地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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