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루[萬景樓] 전라남도 강진에 소재한 백련사(白蓮寺)의 누각으로, 안여해가 이 현판의 글씨를 썼다.
만경루[萬景樓] 청간역(淸澗驛)에서 동쪽으로 수 리 떨어진 곳에 있다. 돌로 된 봉우리가 우뚝 솟고 층층이 쌓여 대(臺) 같은데, 높이가 수십 길은 되며 위에 구부러진 노송 몇 그루가 있다. 대의 동쪽에 작은 누각을 지었고, 대 아래는 모두 돌이 어지러이 널려 뾰족뾰족 바닷가에 박혀 있다. <국역 신증동국여지승람 제45권 강원도 간성군>
만경리[萬經理] 만세덕(萬世德). 명(明)나라 사람으로, 경리(經理)는 벼슬이고 이름은 세덕(世德)이다. 정유재란 때 와서 열렬히 도와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만세덕(萬世德)이 임진왜란 때 2년 동안 종군하였는데, 일찍이 신종(神宗)이 은자(銀子) 4000냥을 주어서 관왕묘(關王廟)를 건립하게 하여 조선에 대한 관왕의 음덕(陰德)에 보답하게 한 적이 있다.
만경망연[萬頃茫然] 소식(蘇軾)의 전적벽부(前赤壁賦)에 “일엽편주가 가는 대로 만경창파를 타고 가니 호연한 기상은 마치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타고 가는 듯하여 그칠 바를 모르겠고 표연한 마음은 속세를 버리고 홀로 서서 학이 되어 신선이 되는 듯하였다.[縱一葦之所如 凌萬頃之茫然 浩浩乎如憑虛御風而不知其所止 飄飄乎如遺世獨立 羽化而登仙]”라고 한 데서 보인다.
만경소음[曼卿巢飮] 만경(曼卿)은 송대(宋代)의 시인 석연년(石延年)의 자이다. 그가 시로는 소순흠(蘇舜欽), 매요신(梅堯臣) 등과 명성을 나란히 하여 구양수(歐陽脩)로부터 많은 찬사를 입었고, 특히 술을 매우 즐기어 통음(痛飮)을 자주 하였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그를 주선(酒仙)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그는 매양 손들과 통음을 하고 나서는 관(冠)을 벗고 맨발을 벗은 채 형틀을 채우고 앉아서 스스로 이를 수음(囚飮)이라 하고, 혹 나무에 올라가서 스스로 이를 소음(巢飮)이라고 했다는 고사가 있다. <宋史 卷442 文苑列傳 石延年> <夢溪筆談 人事1>
만경창파[萬頃蒼波] 만 이랑의 푸른 물결이라는 뜻으로, 한없이 넓고 푸른 바다를 이른다. 만경(萬頃)은 만이랑, 창파(蒼波)는 푸른 파도라는 뜻이다. 한없이 넓은(萬頃) 바다나 호수의 푸른 물결을 이르는 말이다.
만경출사[萬頃出師] 포교(捕校)가 정처 없이 돌아다니면서 죄인(罪人)을 잡음. 지난날 포교(捕校)가 일정한 목적지 없이 다니면서 죄인을 잡던 일을 이른다.
만경타령[萬頃打令] 요긴(要緊)한 일을 등한히 함을 이르는 말이다.
만경풍[慢驚風] 어린아이의 경풍(驚風) 중 하나로 대개 큰 병이나 오랜 병 후에 발생한다. 아이가 허약하면 작은 병으로도 발생한다. 임상에서는 발병이 완만하고 열이 없으며, 추휵(推搐)이 있다가 없다가 하고 늘어져 무력(無力)한 것이 특징이다.
만경피수[萬頃陂水] 만경피수는 만 이랑의 드넓은 물이란 뜻이다.
만계[蠻溪] 호남성(湖南省)과 귀주성(貴州省) 사이에 위치한 만지(蠻地)에 있는 오계(五溪)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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