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곡[晩穀] 늦 곡식.
만곡[萬斛] 斛(곡)은 10말(斗)에 해당하는 용량. 양이 대단히 많은 것을 가리킨다. 고대에는 ‘斛’이 ‘十斗’, 즉 열 말을 가리켰다.
만곡감생종[萬谷酣笙鐘] 소식(蘇軾)의 시 행경담간견여좌수몽중득구운천산동린갑만곡감생종각이우청풍급우희작차수구(行瓊儋間肩輿坐睡夢中得句云千山動鱗甲萬谷酣笙鐘覺而遇清風急雨戲作此數句)에 “일천 산에 비늘과 딱지가 진동하고, 일만 골에 생황과 종소리 울리네.[千山動鱗甲, 萬谷酣笙鐘.]”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그 시의 제목에 “깜박 졸다가 이 시구를 얻었는데, 깨고 보니 실제로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라는 해설이 붙어 있다. <蘇東坡詩集 卷41>
만곡선[萬斛船] 만곡선은 군량(軍糧) 만 곡을 적재할 만한 큰 배를 가리키는데, 진(晉)나라 때 용양장군(龍驤將軍) 왕준(王濬)이 일찍이 오(吳)나라를 치기 위해 아주 거대한 군함을 건조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출전해서 마침내 오(吳)나라를 멸망시켰다고 한다.
만곡용양[萬斛龍驤] 진(晉)나라의 용양장군(龍驤將軍) 왕준(王濬)이 촉(蜀)에서 건조한 거대한 전함을 이끌고 금릉(金陵)을 공격하여 오(吳)나라를 멸망시킨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晉書 卷42 王濬列傳>
만곡용양[萬斛龍驤] 진(晉)나라 때 용양장군(龍驤將軍) 왕준(王濬)이 오(吳)나라를 정벌하기 위하여 만든 큰 배로, 일반적으로 큰 배를 뜻한다. 송(宋)나라 한구(韓駒)의 제태을진인연엽도(題太乙眞人蓮葉圖)에 “강물 가운데 일렁이니 푸른 깁이 춤추는 듯하고 평온하기는 마치 만곡의 용양이 떠 있는 듯해라.[中流蕩漾翠綃舞, 穩如龍驤萬斛擧.]”라고 하였다. <古文眞寶 前集>
만곡원[萬斛源]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샘물.
만곡하[萬斛河] 후한(後漢) 유송(劉松)이 황하 이북지역인 하삭에서 원소(袁紹)의 자제들과 피서하며 음주를 즐겼다고 한다.
만골[萬骨] 수없이 많은 병졸의 목숨. 당나라 조송(曹松)의 시 기해세(己亥歲)에 “그대여 봉작되는 것에 대해 말을 마라, 한 장수가 공 이루면 만 해골이 말라 가니.[憑君莫話封侯事, 一將功成萬骨枯.]”라고 하였다. 이는 전쟁을 벌여 한 장수가 큰 공훈을 세우는 데는 엄청나게 많은 병졸들의 희생이 따른다는 뜻으로, 싸우다 죽은 병졸들의 뼈가 묻히지도 못한 채 전쟁터에서 말라 뒹군다는 것이다.
만공[滿公] 만공(滿公)이 백 소부(白少傅)와[] 만공(滿公)은 당 나라 중 여만선사(如滿禪師)이다. 백 소부(白少傅)가 회창(會昌) 초에 형부상서(刑部尙書)로서 치사하고 낙경(洛京) 불광사(佛光寺)에서 향산(香山)의 여만선사를 모시고 심법(心法) 및 대승금강보계(大乘金剛寶戒)를 얻었다 한다. 백 소부(白少傅)는 당 나라 때 사람인데, 이름은 거이(居易), 자는 낙천(樂天)이며, 소부는 그의 직함이다.
만공[萬公] 명(明)나라의 무인(武人) 만세덕(萬世德)을 이른다. 1597년(선조30)의 정유재침(丁酉再侵) 때, 명나라의 경리(經理)로 조선을 열성적으로 도와주었고 부산에 머무르면서 왜군을 격퇴하는 데 전력을 다하였다고 하여 그가 주둔한 부산에 사당과 비석을 세웠다.
만공세덕[萬公世德] 만세덕(萬世德)을 가리킨다. 중국 명(明)나라의 장수로, 자는 백수(伯修)이며 호는 진택(震澤)이다. 1568년(융경2)에 진사(進士)가 되고 이후 남양 지현(南陽知縣), 서녕병비첨사(西寧兵備僉事) 등에 올랐다. 1597년(선조30) 정유재란 때 경리(經理)로 조선에 왔으며, 해방순무(海防巡撫)의 설치를 건의하였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조선에 머물며 왜군을 격퇴하였다 하여 조선에서 생사당(生祠堂)을 지어 공훈을 기렸다. 이후 계료총독(薊遼總督)에 임명되었으며, 저작으로 해방주의(海防奏議)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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